영화가 끝났다. 아무도 일어서질 않았다. ‘그날이 오면’ ‘가리워진 길’ 두 곡의 노래가 다 끝나도록 대부분 그렇게 객석에 남아있었다. 관객이 모두 그럴 것을 알았던 것처럼 엔딩크레딧과 함께 영상도 흘렀다. 각자의 이유는 달랐을 것이다. 얼핏 추려본 관객 분포도 다양했다. 딱 6월항쟁을 몸소 겪었을 만한 연령대부터 이제 막 수능을 끝냈을 것 같은 학생까지. 당연히 이 영화를 보는 감상도 그 나이의 스펙트럼만큼 다양했을 것이다.

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처럼 엔딩크레딧에 관객이 요지부동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모두를 꼼짝 못 하게 했을지 종일 생각게 했다. 그러나 결론이라고는 아마도 지난해 겨울에 뜨겁게 경험했던 촛불의 추억이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더욱 몰입하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했을 뿐이었다.

영화 <1987> 포스터

영화 <1987>은 제목처럼 그해 1월부터 6월까지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벌어진 상황을 그려냈다. 6월항쟁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조차 다 알지 못했던 그해의 일들을 미시적으로 추적해 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는 주인공이라는 개념이 무척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분량으로 재면 김윤석이 가장 많이 등장하기는 하고, 그의 역량과 존재감을 생각하면 또 실제로 주연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하기는 주저하게 된다. 어쩌면 관객의 입장에 따라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달라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하정우가, 또 누군가에게는 특별출연이었던 강동원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오히려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6월항쟁은, 또한 지난해의 촛불처럼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들은 존재하지만, 누구도 홀로 영웅이지 않은 시민행동이기 때문이다. 영화 <1987>은 주로 경찰대공분실과 기자들 그리고 시국을 뚫으려는 재야인사들과 학생들의 움직임을 따라갔지만, 결국엔 엔딩신을 장식했던 서울시청 광장을 보여주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6월항쟁을 다루는 영화 제작문법이 시대에 부합된다는 평가와 더불어 결국 이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주조연을 가릴 것 없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들을 갈치살 발라먹듯이 섬세하게 파고든다면 매우 흥미로운 콜렉션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격동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인 만큼 드라마틱한 것은 물론이고, 배우들의 명연기가 더해져 한번 보고 말기에는 아까울 지경이라는 것이다.

영화 <1987> 포스터

여담이지만 그 마지막 장면에서 대단히 인상적인 상황이 숨어있다. 화면에 나타나지도 않고, 영화 출연진 정보에도 없지만, 그 장면을 청각적으로 확 일깨우는 효과를 주는 외침이 있다. 마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내를 돌며 시민들을 독려했던 가두방송을 떠올리게도 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짧지만 너무도 강렬해서 마치 <레 미제라블>의 기나긴 군중신이 떠오를 정도였는데, 그 주인공을 알려면 엔딩크레딧을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화 <1987>은 6월항쟁의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것은 또한 언젠가 만들어진 2016년 촛불의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30년이라는 시차가 전혀 낯설지 않아, 그 시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라도 영화를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영화를 잘 만든 것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지난해 촛불의 경험이 이 영화와 관객 사이의 시간조차 뛰어넘게 한 덕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30년 전 6월항쟁을 추억하기 위해, 혹은 경험해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겠지만 마치 조금 먼 곳의 맛집처럼 또 생각나게 하는 영화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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