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자, 혹은 메인MC에게 필요한 덕목은 특출난 개인기나 자기만의 캐릭터가 아닙니다. 출연 프로그램의 성격에 적합하게 그날 게스트와 패널의 능력과 이야기 줄거리를 뽑아내는 집요함, 전체의 흐름을 움직이며 각자의 분량을 조율할 수 있는 진행 능력, 그리고 소화해야 할 정보를 정확히 맺고 끊으며 강약을 조절하는 전달능력이죠. 순발력과 웃음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진 유능한 개그맨이 곧바로 훌륭한 MC가 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이 두 역할이 필요로 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MC에게 그만의 개성, 특별한 웃음 포인트가 없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개인기가 아니라 해도 프로그램 전체의 맥이 끊긴다거나 분위기가 하나로 모아지지 않거나, 게스트나 패널의 활약이 미미할 때처럼 흐름의 위기가 찾아올 때, 확실하게 자신의 분량을 책임지며 제일 먼저 몸을 던지면서 웃음의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은 바로 1인자의 것이니까요. 언제나 웃길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웃길 수 있는 그 무언가. 1인자의 개인기, 혹은 웃음 폭탄을 위한 무기란 이렇게도 책임감이 무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여러 가지 다양한 장기들을 구비하는 것이 안전하겠죠. 어떤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 마가 뜰지 아슬아슬한 곡예 같은 리얼의 어려움은 1인자에 대한 비중을 점점 더 높이고 있고, 프로그램의 성패가 곧 메인MC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편중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유재석과 강호동, 이 두 사람의 전성시대가 이토록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고, 남자의 자격을 타고 이경규의 부활시대가 열린 이유도 그만큼 프로그램 전체에 미치는 1인자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구요.

강호동의 색다른 변신, 혹은 새로운 무기 장착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강력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는 그이고, 이런 활력이 강호동을 다른 MC들과 구분하는 가장 큰 장점이기는 하지만 이런 에너지 외에도 강호동을 최고의 자리로 올려놓은 것은 정말로 다양한 웃음 포인트를 적절히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번 주 스타킹과 1박2일에서 보여준 두 번의 퍼포먼스는 바로 이런 여러 가지 무기에 새로운 것이 장착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구요.

예전에도 개인 퍼포먼스를 요구했던 X맨 같은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이나 각종 가상연애 프로그램에서도 선보인바가 있지만, 강호동은 은근히 음악과 관련된 퍼포먼스에 강점을 가진 진행자입니다. 화려한 춤사위나 세련된 완성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강호동이라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를 그대로 이식한 그만의 무대는 패러디가 되었든 독립 무대가 되었든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 냅니다. 이미 1박2일의 두 번째 시청자 투어에서 활용했던 ‘내 귀에 캔디’ 패러디를 스타킹에서 변형해서 보여준 것이나, 심신의 추억의 노래 욕심쟁이를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강호동만이 보여 수 있는 웃음과 재미였어요.

오랜 콩트 생활로 다져진 능숙한 상황극 놀이, 조금은 아쉬운 순발력과 현재 연예계의 핵심 코드인 아이돌과의 거리감을 패널들을 활용하며 그만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조율 능력이라는 그만의 장점을 가진 강호동은 이제 과거에 사용했던, 음악과 관련된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무기를 재발견해서 장착했습니다. 1인자에게 필요한, 자신의 웃음 분량을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게 해주는 끝내주는 무기인 셈이죠. 이미 최고이지만 탐욕스럽게 새로운 것을 찾아내며 그 생명력을 계속해서 연장시키는, 시청자들의 웃음을 향한 진짜 욕심쟁이의 모습. 강호동의 시대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주말이었습니다. 그는 역시 대단한 승부사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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