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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고용센터 탐방기[2주에 한번, 이주이야기] 석 달째 일 없어도, 일단 가서 사장님 서명 받아오라?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 승인 2017.12.22 14:54

얼마 전 이주노동조합에 방글라데시 노동자 두 명이 찾아왔다. 상담을 해보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주 주야 맞교대를 하면서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9월 초까지만 일을 하고 석 달이 넘도록 전혀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업주에게 연락해보니 공장에 일이 없다고 하면서도 다른 사업장으로 보내줄 마음도 일을 시킬 마음도 없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3개월째 기숙사에서 있으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는 사업주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으로만 계산하더라도 각각 450만 원이 넘는 임금이 체불되어 있어서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한 달 만에 잡힌 노동청 출석조사에 사업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근로감독관은 사업주 조사를 하지 않으면 체불금품확인원(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임금체불이 있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노동청 문서)을 발급해줄 수 없다며 무조건 기다리라고 했다. 이미 3개월째 일을 못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주도 기다리라고 하고 근로감독관도 기다리라고 하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이대로 기다려서 체불금품확인원을 받게 되면 노동부 직권으로 사업장변경을 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사업주가 출석하지 않으면 한 달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외국인 고용 관리시스템 (www.eps.go.kr)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상황이 정리된 문서를 들고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일하던 사업장의 관할 고용센터를 방문했다. 번호표를 뽑고 30분을 기다린 후에야 외국인력담당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미 3개월째 일을 못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고려해서라도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사업장을 조사한 뒤에 빠르게 사업장변경조치를 해줄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딱하다는 듯이 듣던 고용센터 직원의 첫 말은 다음과 같았다

“아 그래서 혹시 체불금품확인원은 발급해오셨나요?”

속으로 내가 그걸 발급해왔으면 여기 와서 이렇게 번호표 뽑고 상담하고 있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일단 현재 사업주가 출석하지 않고 있어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수 있다, 고용허가제 업무편람에 따르면 이럴 경우에 선 사업장 변경, 후 관련서류 수령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등등 그동안 고용센터를 다니며 수없이 했던 대화를 다시 반복했다. 그 말은 다 들은 고용센터 직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데 외국인근로자분들 상황도 딱하긴 한데요. 사실 저희도 사업주한테는 을이에요. 저희가 뭐라 한다고 사업주 분들이 사업장 변경해주고 그렇지는 않아요.”

여기서도 갑과 을이 나오다니, 그것도 노동청 산하 고용센터에서 사업주에게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걸 스스로 고백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이후 한동안 입씨름을 하다가 이주노조 명함과 사건 진정서를 제출하고 다음 주내로 고용센터에서 어떻게 문제해결할지 계획을 짜서 알려달라고 했다. 

그 다음날에는 네팔 노동자가 이주노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남양주시에 위치한 농장에서 올해 2월부터 일을 시작한 이주노동자였는데, 11월부터 경남 김해시에 위치한 미나리농장에서 일을 하라고 시킨 것이었다. 이른바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불법파견이었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는 이주노동자가 계약한 사업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은 100%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고용센터 직권으로 사업장변경을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가 직접 찍은 영상과 사진, 진술서 등을 가지고 고용센터를 방문했는데 고용센터 직원이 난처한 얼굴을 하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 경우에 조사가 좀 필요하긴 한데요. 저희가 아시다시피 연말이라 업무가 너무 바쁘고 1월초부터는 신규인력 배정에 들어가야 해서요. 뭐라 확답을 드리기가 어렵네요.”

지난 8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고용허가제 폐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 폐지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센터에서 확답을 줄 수 없으면 이 노동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가서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을까? 경험상 활동가가 노동조합 공문을 들고 이주노동자와 함께 고용센터를 방문을 해도 상담은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다. 이주노동자들이 단독으로 고용센터를 찾아가서 사업장변경 상담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다음과 같다.

“일단 회사 가서 사장님 서명 받아오세요. 서명 안 받으면 회사 못 바꿔요.”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고 3년 동안 3번, 추가로 1년 10개월 동안 2번밖에 바꿀 수가 없다. 이마저도 사업주가 사업장변경서류에 서명을 해주거나 임금체불, 폭행, 산재 등을 입증하지 않는 이상 사업장 변경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주노동자가 몸이 아파도, 회사에서 일을 안 시켜도, 기숙사가 도저히 살 수 없는 비닐하우스라 하더라도 고용센터에서는 무조건 사업주의 서명만 받아오라는 말을 주문마냥 반복해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주노조에서는 2018년 사업계획의 일환으로 매달 수도권지역의 고용센터를 한 곳 선정해서 모니터링 사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특히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 문제제기가 많은 곳을 우선적으로 방문하여 평상시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떤 태도로 상담을 진행하는지, 사업주만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충분히 조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서명만 받아오라고 하지는 않는지 등을 조합원과 함께 조사할 예정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고용센터인 만큼, 최소한 이주노동자에게 반말로 대하거나 무조건 사업장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없을 때까지 이주노조의 고용센터 탐방기는 계속될 것이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pjww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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