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가 또 폭발했다. 문빠는 미쳤고, 그래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도 내렸다. 그러나 글을 통해 본 서민 교수는 문빠의 실체에 대해 무지하다. 사실 그 점은 이해가 된다. 문빠의 실체는 없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그 실체를 알 수도 없는 많은 시민에 대해서 이래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피할 수 없다.

대부분의 문빠들은 평소에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다. 그러다가 편파적이거나 왜곡된 기사가 눈에 띄면 서민 교수가 말하는 그 ‘문빠’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것조차도 일부일 뿐 전부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편의상 문빠로 불렀을 뿐인데, 이를 또 오해한다면 난독부터 의심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지지자 중에는 분명 거칠어 보이는 부류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들을 극렬지지자로 부를 수는 있어도 문빠 전체로 확대하는 것은 의도적이든 무지 때문이든 잘못이다. 그런 부조리한 단정 속에서 심지어 정신병자라고까지 한 것은 너무도 지나치다. 불특정다수에 대한 묻지마 폭력과 무엇이 다른가.

중국 측 경호 관계자에게 폭행 당하는 한국 사진기자 Ⓒ연합뉴스

그런 서민 교수가 과학자라는 사실에 더욱 실망과 우려를 금치 못하게 된다. 과학자인 서민 교수가 이토록 그릇된 판단에 휩싸이게 된 것은 그릇된 분노와 혐오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그의 문빠포비아에 가까운 감정의 타당한 이유가 그의 글 속에서 쉽게 찾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운 내 새끼라 해도 남에게 맞으면 화가 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문빠들은 도대체 왜 우리나라 기자의 폭행에 즐거워하는 것일까” 정도가 그렇게 누군가를 증오하고 혐오할 수준의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저 문빠가 싫은 것뿐이라는 의심을 갖게 된다.

서민 교수가 매일 밤 접한다는 문빠들이 누군지부터가 궁금하다. 서민 교수는 밤마다 ‘문빠 사이트’를 본다고 하는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문빠들은 그곳이 어딘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빠들은 모르는 문빠 사이트에서 도대체 어떤 문빠가 ‘땡문뉴스’ 따위를 바란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오유나 엠팍 등의 사이트에도 서민 교수가 주장하는 현상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누가 그에게 이토록 왜곡된 단면을 보였고, 그로 인해 피해망상에 가까운 오판에 집착하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그런 존재가 아예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서민 교수의 분노에 찬 글에는 거친 주장은 가득하지만 소위 문빠가 봐서 뜨끔하고 찔릴 만한 대목이 없다.

또한 서민 교수가 결정적으로 한 실수는, 이번 문 대통령 방중 기간에 문빠 아니 시민들을 분노케 한 원인에 대한 외면이었다. 혹시 몰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서민 교수는 문빠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대답은 시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서민 교수가 애써 만들려는 문빠 프레임에 동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중국방문 언론보도에 대한 국민인식 그래프 (출처=리얼미터 보도자료)

이번 기자 폭행은 여러모로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 불행을 시민들이 공감하고 편들어주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고, 그 분노를 질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21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방중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서 응답자 67.9%가 불공정했다고 인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심지어 자유한국당 지지층에서조차 불공정했다는 응답이 67.3%로 전체 결과와 차이가 없다. 또한 이것이 방중 보도에 국한된 현상이라고 믿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서민 교수는 국민 70%가 모두 정신에 병이 들고 만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 여론조사는 기자 폭행에 ‘내 자식 감싸기’가 아닌 비판이 쏟아진 배경을 말해주고 있다. 두 눈 모두로 사회를 바라본다면 할 수 없는 말을 서민 교수가 한 것이다. 심지어 언론조차도 일부 반성의 기미를 보이는데도 말이다.

“문빠는 미쳤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서민 교수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국민 67.9%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언론 환경에서, 촛불로 세운 정부가 흔들린다면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환경에서 누군가 제정신이라면 오히려 그것이 더 심각한 것 아닐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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