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일정이 끝났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방중 기간 동안에 드러난 중국의 태도, 대중 외교의 성과, 기자 폭행 사건을 둘러싼 국내 여론 등이 주요 소재다. 국내 언론과 일부 인터넷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 모든 사안에서 여러 기준을 뒤섞어 각종 논평을 쏟아내고 있는데, 논점을 정리해서 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기자 폭행 사건 이야기부터 풀어보자.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중국에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 무엇이냐는 거다. 둘째는 중국인들이 한국 기자를 폭행한 사건에 대해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편협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거다.

인터넷 상의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행위에 대해선 여러 자리에서 논한 바 있다. 이들의 행위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이들의 행위가 인터넷 공간에서 일반화된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는 일종의 보편성을 드러낸다는 거다. “맞을 짓을 했다”는 극단적 언사(좀 더 나아가자면 이는 냉소주의적 현실인식이 반영된 논리이다)를 동원하는 게 그렇다. 두 번째는 그러한 보편성이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과 참여정부 시기 좌우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던 특수성을 배경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비난의 초점을 ‘기자’에 맞추고 있다는 게 그렇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행위가 만들어낸 문제의 해법은 양면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전자에 대해선 ‘인터넷 공간에서 일반화된 문법’이 형성된 배경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사고해야 한다. 후자에 대해선 일종의 정치적 대응이 필요하다. 여기서 정치적 대응이란 이들의 행태를 피상적인 방식으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연동시키거나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자제 호소를 요구하는 등의 미봉적인 것과는 달라야 한다. 따라서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우리가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대안적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행위와는 별개로 중국인들이 왜 기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는지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당시 행사장의 경호 인력 배치는 중국 공안이 일방적으로 지정한 대로 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측이 계약을 한 결과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중국인들의 과잉 대응은 어떤 ‘방침’이라는 특수성이거나 중국의 보편적 문제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 공안 차원의 어떤 방침이었다는 추측은 이 상황에선 합리적이지 않다. 한국의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하는 도중에 이런 식의 잡음이 일어나는 것은 중국 공산당 정부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다.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국 정부가 한국을 무시해서 기자를 폭행하도록 조장했다는 것은 유아적인 현실인식이다. 중국이 문재인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한 것은 결국 혼내주려고 불렀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을 원하지 않았다면 국빈 방문이 아예 성사될 일이 없었다.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전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김자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등 후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의 태도에 다소 간의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 이 점을 보여준다. 시진핑 주석은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외국과의 관계에서 체면을 다소 중시해야 한다. 반면 리커창 총리는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는 것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 겉보기에 다소 문재인 대통령을 하대하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조성을 경계하려 한 듯한 시진핑 주석보다는, 어쨌든 오찬 일정을 두고 뒷말이 나오긴 했지만 봄날은 간다고도 하고 다 들을 테니 얼마든지 얘기해보라고 말했다는 리커창 총리 쪽이 우호적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 양자의 태도가 보여주는 게 바로 양국 간 사드 문제의 이중적 성격이다.

중국 정부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이중적 차원의 문제로 만들었다. 첫째는 국제정치적 지정학적 차원이다. 이 내용은 중국 정부가 한국에 강요하다시피 한 ‘3불입장’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사드 한반도 배치는 동아시아 패권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도전이며 그 실체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와 한미일 군사동맹을 통한 영향력 확대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일종의 긴급한 대응으로서 경제적 측면에서 대중의존도가 큰 한국에 경제보복으로 타격을 입혔는데, 이게 사드 문제의 두 번째 쟁점이다. 경제라는 것은 언제나 양면적이어서 보복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중국 경제도 피해를 보게 되어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이 지난 19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적어도 경제적 차원에서 사드 보복 국면을 해소하려는 모색을 할 거라는 예상을 해왔다. 그게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전환점으로 해서 이뤄진 형국인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보면 중국 경호 인력의 기자 폭행은 일종의 우발적 사건으로 중국인의 보편적 정서 그 자체가 표출된 것으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일 듯하다. 이 대목에서도 역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중국 특유의 권위주의 체제에선 사실상 언론의 역할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언론은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정부의 지도를 따르는 경향이 짙다. 서구의 자유주의적 언론관이 아니라 현실사회주의 선전매체 문법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는 기자가 지도를 따르지 않고 질서를 해치면 곧바로 주먹으로 다스리는 해결법에 익숙할 것이다. 중국 경호 인력의 과잉 대응은 이 연장선에 있지 않나 싶다.

둘째는 중국 특유의 민족주의 정서가 발현됐을 가능성이다.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과 천안문사태를 겪은 이후 만성화된 통치의 위기를 민족주의에 편승하거나 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시도를 반복해왔다. 사드 문제를 민족주의와 결부시켜 실제로 ‘보복’이 가능토록 조장한 것도 중국 공산당 정부이다. 이들의 시각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를 허용하는 걸 넘어 적극적으로 요청한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앞잡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간 국내 언론은 현지의 일반인들 사이에 이런 정서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보도를 계속해왔다. 중국의 경호 인력이 이런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하면 한국 기자들에 대한 과잉대응이 왜 가능했는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중국 경호 인력의 행태에 대한 비판은 결국 중국 체제에 대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려가 되는 것은 국내 언론 일각의 태도가 민족주의에 민족주의로 대응하는 악순환을 조장하는 것에 가깝다는 거다. 한국인이 중국인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며 우리를 우습게 아는 중국을 혼내주자는 식으로 몰아가는 게 그렇다. 이런 구도 속에서 진짜로 해결을 모색해야 할 문제는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한국인과 중국인의 멱살잡이만 남는다.

좀 더 고약한 대목은 여기에 일종의 ‘정파성’이 가미된다는 것이다. 보수세력이 상정하는 도식은 간명하다. 중국은 한국전쟁 때 ‘인해전술’을 앞세워 참전해 분단을 고착화한 공산주의 세력이고 실제 북한에 어떤 의미로든 급변사태가 벌어질 경우 우리와 군사적 대치를 해야 할 잠재적 적국인데, 이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친중사대주의 외교는 결국 북한에 굴복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은 운동권이며 종북이라는 것이다.

우스워 보이지만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의 자장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미치는 대중적 위력이 없는 논리가 아니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문재인 정권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게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혼밥’ 얘기를 콕 집어 해명하고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특히 열심히 언론을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에선가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와 언론이 자기 역할을 다시 제대로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든 간에 사건에 총체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고 사안의 핵심에 문제의식이 도달해야 한다. 피상적인 해석과 대응을 반복해서는 지금까지의 일이 다시 똑같이 반복될 뿐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조차도 너무나 힘든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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