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으로 인해 남극여행이 무산되어 궁여지책으로 짜낸 곱빼기 1박2일인 코리안루트 3박4일 여정이 끝났다. 엔딩에는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세계적인 자유여행가 춤추는 매트 하딩 패러디를 깜짝영상으로 내보냈는데 매트 하딩을 알거나 혹시 모르더라도 새로운 1박2일의 엔딩으로 삼아도 좋겠다 싶었다. 코리안루트를 설혹 띄엄띄엄 봤다고 하더라도 이 엔딩이면 끊어진 부분도 어렴풋이 이어붙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록 코리안루트가 성사되었다면 예능사상 최대 블록버스터였을 남극행 대신 꾸며진 것이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위화감 없는 1박2일을 지켰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코리안루트가 들른 모든 곳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든 마음만 먹는다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남극이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여행지(?)이며 게다가 한국인 거의 대부분이 돈 때문에라도 갈 수 없는 곳이다.

이슈를 만들고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는 데에 남극이란 소재만한 것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1박2일이 거두는 시청률과 관심이라면 굳이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일밤 단비의 경우는 봉사라는 동기에서 먼 나라를 찾아다니지만 1박2일은 근본 동기가 봉사 차원은 아닌 탓에 남극기지대원들에 대한 선행은 사실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남극에 갔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주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1박2일은 여전히 예능의 핵이다.

남극 풍경 속 강호동을 보면서 감탄과 부러움에 술 한 잔 생각이 났을 것이지만 코리안 루트를 보면서는 그들이 정말 짜증날 정도로 맛있게 먹어보였던 지역 음식에 반주 생각이 간절했다. 가정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코리안 루트는 연초에 폭발적 관심을 보였던 시청자 투어에서 확인되었던 1박2일과 평범한 시청자와의 결코 멀지 않은 거리감을 지켜줬다는 점에서 남극여행보다 다행스러웠다.

그렇지만 이미 김C의 하차소식을 접한 후라 그런 지 감기에 걸려 계속 코를 푸는 모습도 안쓰러웠으며 은지원이랑 단 둘이 자유여행을 떠나서도 이렇다 할 인상적인 장면 하나 남기지 못한 김종민의 미래가 걱정됐다. 코리안 루트 마지막 편을 본 한 시청자는 강호동, 이승기가 하룻밤을 신세진 이장님보다 못한 예능감이라고 크게 힐난하기도 했다. 자유여행 세 팀으로 나눠진 마지막 일정을 통해서 1박2일 일곱 명의 멤버들은 마치 중간고사라도 치르는 듯했다.

1등팀인 은지원, 김종민은 서로 전혀 맞지 않다는 티격태격 콘셉트를 잡은 듯싶었지만 정말 둘이 맞지 않은 탓에 가장 싱거운 장면을 남겼다. 2등팀인 김C, 이수근, 엠씨몽은 인원도 많거니와 이들의 넘치는 활동력으로 장터를 휘어잡고 1박2일다운 여행모습을 담았다. 특히 이 셋이 장흥에서 유명하다는 삼합을 먹을 때에는 화면 안으로 들어가 피디를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식욕을 자극했다. 성미 급한 사람은 1박2일 엔딩과 함께 차 시동을 걸지 않았을까 싶었다.

2등팀이 1등이 될 뻔한 자유여행의 백미는 강호동과 이승기 꼴찌팀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것은 강호동, 이승기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연이 만들어준 행운이었다. 그 행운 덕에 무전여행 팀인 강호동과 이승기는 하루 종일 굶은 배를 채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방송분량을 임팩트 있게 가져갈 수 있었다. 이들이 우연히 들른 곡성군 하한리 이장님을 만난 것은 여러모로 강호동의 행운이었다. 1박2일을 통해 아직 우리나라 시골인심이 여전함을 확인하는 일이 참 다행스럽다.

여행 버라이어티가 기대할 수 있는 횡재 중 하나가 이렇듯 전국도처에 숨겨진 예능인보다 더 예능을 잘 하는 일반인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만나 연예인이고 뭐고 그들과 똑같음을 애써 보여줌으로 해서 확보한 친밀감이 1박2일의 성공비결 중 큰 비중을 차지 할 것이다. 그것이 또한 자유여행을 기획한 제작진의 의도였을 것이다. 일곱 명보다 두 명, 세 명이 좀 더 사람들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마음대로 붙인 코리안 루트의 별칭은 곱빼기 1박2일이다. 일정이 평소의 두 배이기도 하지만 그 늘어난 여정만큼이나 곱빼기로 재미와 가슴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을 마치고 서로 격하게 안아주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1박2일은 굶기도 하고, 추위에 벌벌 떨기도 하지만 아직도 못가 본 곳 많은 우리 산하를 다니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여행은 그 넉넉한 시간 속에서 우연히 만나 이내 헤어지더라도 기억 속에서 놓지 못할 사람을 얻는 일이라는 것은 코리안 루트는 말해주고 있다. 보령의 석양을 뒤로 하고 김C가 남긴 "일몰에서 내일의 일출을 기다리는 것이 기다림이다"라는 한 마디는 그 여행의 속 깊은 설레임을 기다림이란 말로 바꾸었다. 이런 사색이 없이는 여행이랄 수도 없기도 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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