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새로운 원내대표로 돌고 돌아 김성태 의원이 선출됐다. 애초 김성태 원내대표의 탄생이 유력하다고들 봤지만 자유한국당 내 반-홍준표 정서가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당선을 장담할 수 없었다. 자칭 중도파 후보들이 단일화를 이루고 친박이 따로 뭉치면서 2차투표로 갈 경우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고도 했다. 자칭 중도파 후보조가 결선에 진출하면 친박계가 이들을 밀어줘서 김성태 후보조가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2일 치러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의 득표를 보면 최종적으로 표심이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드러난다. 108명이 투표했는데 김성태-함진규 후보조는 55표를 얻었고 한선교-이주영 후보조는 17표를, 홍문종-이채익 후보조는 35표를 얻어 1차투표만으로 당선자가 확정됐다. 애초 친박계 단일후보의 표가 30표 이상일 것으로 예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중도파 후보로 갈 가능성이 컸던 표가 김성태 의원 쪽으로 몰린 것이다.

중도파 단일후보인 한선교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로 부르는, 사실상 친박계나 다름이 없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김성태 의원이 현장에서 나름대로 호소력 있는 연설을 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러닝메이트로 친박계인 함진규 의원이 선택됐다는 것도 중도파들에게 안도감을 줬을 것이다. 원내대표 선거 기간 동안 ‘자제’한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의 역할 등을 고리로 중도파 의원들을 각개격파 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이유였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김성태 원내대표를 탄생시킴으로써 홍준표 체제의 연장과 강화를 선택한 셈이 되었다. 사실상 원내로부터 고립·방치돼있던 홍준표 대표는 김성태 원내대표와 김무성 의원을 필두로 한 바른정당 복당파와 정치적 동맹관계를 맺어 정치적 교두보를 마련했다. 홍준표-김무성 동맹의 오월동주는 최소한 지방선거까지는 유지될 것이다. 친박계는 조직적 저항을 이어가겠지만 명확한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와해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김성태 의원이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후 홍준표 대표와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자유한국당은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게 될까? 그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건 분명하다. 김성태 신임 원내대표의 ‘캐릭터’에 주목하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김성태 의원은 한국노총 출신(일각에서 그를 SD계로 분류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상득 전 의원과 한국노총 출신 사이의 연결고리는 이상득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이명박 전 정권 시절 ‘왕차관’으로 행세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다)이고 지난해 국정농단 청문회 때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앞에 앉혀놓고 호통을 치는 모습으로 많은 대중의 기억에 남아있다. 최근까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고정출연하며 입담을 뽐내 여당 성향 지지자들에게도 친숙하다. 비록 다시 돌아오긴 했으나 어쨌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바른정당으로 옮겼던 이력도 있으니 친박 일색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쉽지 않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야당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문재인 정권에 맞서겠다고 했다. 물론 정권을 견제하는 것은 제1야당의 임무이다. 또 김성태 원내대표는 워낙 ‘와일드’한 캐릭터의 소유자이다. 2013년 말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이던 시절 당협위원장 임명 문제를 두고 지도부와 갈등을 겪던 중 중앙당에 난입해 활극을 벌인 일 등을 보면 그렇다. 당시 김성태 원내대표가 당직자에게 “네가 뭔데 국회의원인 나를 대기하라 마라 하느냐”는 등의 폭언을 한 것에 대해 새누리당 사무처 노조는 “폭력의원 김성태는 모든 당직에서 즉각 사퇴하고 공개 사과하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국회에 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김성태 의원이 문재인 정권과의 ‘투쟁’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단지 이런 차원의 문제에서 그치는 게 아닌 것 같다. 앞서 서술했듯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도 높은 내부 갈등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언론은 김성태 원내대표의 탄생으로 ‘친홍’이 주류가 됐다고들 쓰고 있지만 홍준표 체제의 운명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대표의 권한을 활용해 얼마나 기득권을 확장하는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내부 갈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이 명확한 게 좋다.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야권’ 프레임을 던지면서 문재인 정권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모으는 그림이 유효할 것이다. 그러려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거리를 두어야 하고 문재인 정권에 대해선 강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보수대통합을 위한 대문을 활짝 열겠다면서 국민의당에 야당이 맞는지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한 것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걸로 보인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보면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과 국민의당보다 극단적인 위치에 서있다. 야권의 공동행보를 모색하기 위해선 자유한국당은 계속 이 극단적 포지션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등의 ‘적폐청산’ 관련 입법이나 개헌 및 선거제도 개혁 등의 문제에서 자유한국당이 어떤 태도를 취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과 싸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부 갈등을 일정 수위 아래서 ‘관리’하는 일이다.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국면이 김성태 원내대표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되리라고 볼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친박계 입장에선 원내지도부가 나서서 부결을 추진해보길 바라겠지만 더 이상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와 엮이고 싶지 않을 김성태 원내대표 입장에선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국민의 바람(?)대로 시원하게 체포동의안 가결에 힘을 보태자니 박근혜 전 대통령에 아직도 온정적 태도를 갖고 있으며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보는 자유한국당 핵심 지지층의 반발이 눈에 밟힐 것이다. 그래서 본회의 개최 의사일정엔 동의해주되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는 실리적(?) 해법이 주목을 받는 거다.

문제는 이 상황이 임시국회 본회의가 예정된 22일까지 유지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이나 원유철 의원 등 혐의에 대해 검찰이 추가 구속영장을 신청하면 어떻게 될까. 국회 입장에서 보면 검찰이 끝나고 해도 될 일을 굳이 회기 중에 구속영장을 자꾸 신청해 체포동의안 숫자를 늘리는 게 마냥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 주인공들이 전부 자유한국당 소속이라고 하면 ‘정치보복’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꼭 찬성이냐 반대냐를 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거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정말 자유한국당을 새로운 보수로 다시 세우고 싶다면 이런 구도 자체를 깨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방선거 패배를 무릅쓰고 박근혜 전 대통령 일파들과의 명확한 단절을 택하는 게 장기적으로 남는 장사다. 물론 정치는 장사가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엔 유불리의 문제가 아닌 명분을 기준으로 봐도 답은 명확하다. 그런데 김성태 원내대표는 앞에서도 서술한 이유들 때문에 그런 과감한 선택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정치로는 외면당하고 도태될 뿐이라는 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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