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대해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은 민간 사이의 선물, 식사, 경조사비를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공직자에 대한 선물, 식사, 경조사비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 법의 근본취지는 1원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사실상 애초 ‘3·5·10 규칙’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허용하는 선물비의 상한액을 농축수산물에 한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고, 경조사비는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추는 개정안이 11일 가결됐다. 선물비의 경우 상한액을 5만원으로 유지하되, 농축수산물 및 원료·재료의 50% 이상이 농축수산물인 가공품에 한해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경조사비 상한액을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췄다고는 하지만 결혼식과 장례식에서는 결과적으로는 10만원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실질적으로는 선물비만 올렸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청탁금지법 '3ㆍ5ㆍ10' 규정 개정안 (PG) Ⓒ연합뉴스

일단 과일·화훼 농가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후퇴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당장 외식업계부터 반발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예컨대, 고기 식사를 하게 되면 1인분에 3만원이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1인분에 끝내는 경우도 거의 없다. 똑같이 농축산물을 재료로 사용하는데 음식물은 3만원에 묶는다는 것에 납득하기를 바란다면 착각이다. 또한 전복, 대게 등을 사용하는 식사는 또 어떤가.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요식업계의 식사비 개정요구와 기타 타업종의 압박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한편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킨 국민권익위는 부대의견으로 "부정청탁금지법의 본질적인 취지 및 내용을 완화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부정청탁금지법의 안정적 정착 시까지는 금품 등 수수금지에 대한 예외인 음식물, 경조사비, 선물 등 가액의 추가적인 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를 밝혔으나 농축수산물 외에 어려운 업종은 많다. 그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 있는 결과라고는 볼 수 없다.

청탁금지법의 본질적인 취지는 농축수산물의 유통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공직자들이 청탁과 뇌물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당장 농가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청탁금지법을 손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타당치 못하다. 애초에 5만원까지 선물을 허용했던 것은 거기까지는 뇌물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오랜 관행을 당장 없애기 어려우니 일종의 유예를 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청탁금지법은 점점 더 강화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1년 여 만에 후퇴 결정에 실망과 분노가 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월 13일 JTBC 뉴스룸 [팩트체크] 적폐 수사가 경제에 악영향 준다? (보도영상 갈무리)

거대한 댐도 작은 구멍 하나로 인해 붕괴가 되는 것처럼 청탁금지법은 절대 건들지 말아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전 정권의 끝 모를 부정과 부패로 인해 시민들을 절망케 했고, 그 절망에서 들었던 촛불로 인해 탄생한 권력이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의 임무를 안고 태어났다. 적폐란 온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온갖 청탁들로부터 발전된 결과 아닌가. 문재인 정부라면 청탁금지법을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거기서 후퇴한다는 것은 너무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진 청탁금지법이 1년 만에, 그것도 문재인 정부에서 수정된다는 것이 주는 실망감이 더욱 크다. 모든 것을 잘해온 문재인 정부였기에 더욱 당황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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