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직전 이 지면에 쓴 글에 반론이 실렸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잘 아는 이의 이런저런 훈수까지 듣습니다. 팩트가 뭐고, 저널리즘은 무엇이며, 나아가 비평은 이런 거라는 일침입니다. 언론학자, 저널리스트, 비평가로서 착잡한 생각을 피하기 힘듭니다. 일개 활동가로서, 단체 대표로서 복잡한 심경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 북국의 숲길을 내달립니다. 분노와 유감을 떨쳐냅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동지들의 근황을, ‘동무’라는 따사한 단어를 떠올립니다.

그렇습니다. 엠비씨의 이용마,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엠비씨에서 해고된 이용마 기자의 이야기입니다. 쉰이 채 안 된, 초등학교를 다니는 쌍둥이 아들과 자신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진 부인을 둔 한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이 평범한 사내에게, 오직 정의의 길을 택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 아빠와 함께 삶을 꾸린 저 가족들에게 날벼락 같은 병고가 들이닥친 겁니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박사 아들, 애틋하고 애처로운 해고자 자식을 매일 같이 눈물로 떠올렸을 어머니의 또 다시 찢어지는 심경이 느껴집니다. 어찌 이를 ‘불운’, ‘애틋한 사정’, ‘안타까운 심정’ 따위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에, 저 또한 차마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일 년도 넘었습니다. 작년 9월입니다. 이용마 당신이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공영방송, 미디어운동의 미래를 두고 토론장에서 격하게 싸움질할 때, 그때의 건강했던 모습이 당장 떠올랐습니다. 슬퍼집니다. 당연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래서 내가 쓰던 공무원노동조합신문 지면에 이런 걸 조심스레 써봤습니다. ‘투병 중인 해직기자에게 보내는 응원’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길지만 다시 꺼내 읽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생각을 덧대어 봅니다.
2012년 파업 당시 해직됐다 복직된 MBC 이용마 기자가 11일 오전 최승호 신임 사장(오른쪽)과 함께 서울 상암동 본사로 다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용마. 우리와 함께 공영방송, 공정언론을 위해 투쟁한 동지입니다.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언론인으로서 부정한 권력에 맞선 그를 회사는 무참한 해고로 대응했습니다. 끝이 아닙니다. 동료들과 함께 온갖 지루한 소송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꿋꿋이 복직을 위한 법정투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4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다행히도, 법원은 해고가 부당하다, 방송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당하다고 연달아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허나 저 무덕한 사측은 까딱도 하지 않습니다. 집요하게 이들의 복직을 거부합니다. 악착같이 대법원으로 끌고 갑니다. 사람을 정말로 질리게 합니다.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들려는 모양입니다. 아, 진짜로 사람을 죽일 심산인 걸까요?

많이 화나 나 있었지요? 그 후 일 년 좀 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런 감격스러운 시간을 맞았습니다. 같이 해직되었던, 오랜 시간 투쟁현장에서 고통을 나눈 동무들과 함께. 해직자 동료가 사장이 된, 정상화의 기틀을 빠르게 잡아가기 시작한 옛 직장으로 당신이 돌아왔습니다. 식구들의 뜨거운 환대를 맞으며, 많은 사람들의 진심어린 축하를 받으면서, 이용마 당신은 공영방송 재건의 현장 MBC에 다시 저널리스트로 섭니다. 말 그대로, 눈물 나는, 벅찬 순간입니다.

노동자들을 무단으로 해고하고 그래서 가정의 안전을 무참히 파괴해 버리며 결국은 인간의 목숨마저 박탈하는 이 땅의 비정하고 잔혹한 자본, 국가입니다. 우직 무늬만 공영방송인, 실상은 국정방송에 불과한 MBC가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건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용마는 그 정확한 사례, 희생자 케이스일 뿐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부정한 시대에 대한 분노가, 부당한 권력에 대한 환멸이 그의 몸속에 암 덩어리를 싹틔운 게 틀림없습니다. 저 사내와 같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또 저 인간처럼 비통한 심경을 가졌을 어느 누구의 몸속에라도 무서운 암세포는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피와 살을 가진 약한 존재라면 다 그러하지 않을까요?

귀환하는 당신과 친구들은 겸허히 촛불혁명을 상기했습니다. 우리의 투쟁이 아닌, 촛불시민들의 결전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준 거라며 감사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맞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촛불혁명이 저주의 시간, 죽음의 시절을 거둬냈습니다. 촛불시민들이 한국사회와 대중시민, 민주주의의 희망을 겨우 되살려냈습니다. 공영방송 복구, 적폐 퇴출, 기레기 청산의 가능성까지도 말이죠. 그에 감사해 하며, 그걸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역사의 명령에 승복해, 당신들은 그리던 저널리즘 실천의 자기 자리로 이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나라 국가권력이 정상이고, 민주주의가 정상이며, 공영방송이 정상이고, 또한 MBC가 정상이었다면, 그래서 정상의 저널리즘이 가능했고, 언론인 이용마가 정상적으로 출근해 저널리즘을 실천하고 있었더라면, 그러면서 가족들과는 행복하고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었더라면, 자신의 건강을 알아서 잘 챙길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이 무서운 질병은 분명 이용마 기자를 슬쩍 피해갔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라도 국가권력이 비정상이고 민주주의가 비정상이며 그래서 비정상이라 외치다 해직되어 생활이 파괴되고 가정이 불안해진다면 당연히 제 몸과 마음까지 따라서 비정상적으로 피폐해질 게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암 발병은 결코 그의 탓이 아닙니다. 대체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2012년 파업 당시 해직됐다 복직된 MBC 이용마 기자가 11일 오전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지웅, 박성제, 박성호, 정영하 그리고 최승호, 저 동지들이 이런저런 직역에서 공영방송 저널리즘의 중창을 위해 다시 진력하겠지요.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우리도 그들이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성원할 겁니다. 아,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신은 아직 일어설 수 없습니다. TV 카메라 앞에 선 저널리스트 이용마를 우리는 아직 만나볼 수가 없습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꼭 그래야 하는데, 아직은 모두가 당신의 복귀를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거죠? 언제 기력을 회복해 다시 마이크를 쥘 수 있을까요? 저널리즘을 행할 수 있을까요?

문을 열며 누군가 들어옵니다. 아, 아침마다 건물을, 연구실을 깨끗이 해주시는 청소노동자 아주머니이십니다. 돌아보니, 창밖은 이제 무척 밝습니다. 가을 햇살이 짙은 녹색의 숲 위로 비스듬히 깔렸습니다. 오늘 하루도 일상은 바쁘게 돌아가겠죠. 여러분도 그러하시죠? 그러시더라도 부디 병상에 있는 우리의 동지, 이용마라는 인간을 한번 기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힘내라, 힘내자 따뜻한 감사와 용기의 말씀을 주변 동료들과 뜨겁게 주고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실 이용마 기자를 많이는 알지 못합니다. 함께 미디어운동장에 있으며 가끔 만나고, 한번은 토론장에서 아주 세게 맞붙어 언성을 높인 적이 있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끝맺고 싶습니다. 이용마, 사랑해. 힘냅시다.

MBC로 복귀하는 날 당신이 한 말을 읽습니다. 지금까지 저널리즘은 권력의 비판, 권력에 맞선 진실의 발굴에만 집중한 측면이 있다. 복원되는 공영방송의 저널리스트들은 이 세상 소외된 자의 고통, 약자의 목소리, 고통 받는 소수자들의 삶에 더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 세상이 더 따뜻하게. 정의로워지도록. 뭉클해집니다. 멋집니다. 참된 저널리스트는 저런 저널리즘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아, 세상 지혜를 아는 그는 벌써 저널리즘 현장에 돌아와 있었구나. 동지여, 세상의 진정한 저널리스트 이용마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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