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나타났다. 바로 <전체관람가> 8번째 감독인 오멸이 그 주인공이다. 단편영화 활성화의 취지를 내세운 영화와 예능의 콜라보레이션 <전체관람가>.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던 이명세, 정윤철, 박광현 등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흥행한 작품이 떠오르는 상업 영화계의 내로라하는 9명의 감독들은 단지 현재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인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이름'이 있는 이들 상업 영화감독이 단돈 3000만원으로 단편영화를 만든다는 그 예능적 도전이 매주 화제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 9회, 애초 이들 9명의 감독들 외에 의문의 인물로 비워두었던 한 자리에, 그간 진짜 저예산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던 '오멸' 감독이 등장했다.

진짜 독립영화 감독, 오멸의 등장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

오멸 감독은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을 통해 선댄스영화제 그랑프리 대상 및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그의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드러낸 사람이다. 아니, 그런 숱한 영화제 수상이라는 수식어보다, 사실 더 센세이셔널한 건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제주도에서 활동한 로컬 영화인인 그가, 자신의 땅 제주의 아픈 역사 4.3을 전면에 드러낸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알쓸신잡>의 유시민은 4.3을 한 마을에서 벌어진 '사상'을 배경으로 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정의 내렸다. 그러나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속 사람들은 '제주도 해안 5km밖 사람들을 폭도로 여긴다'는 소문을 듣고 피난길에 오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산속으로 몸을 숨긴다. 집으로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마음으로 일상의 실랑이를 벌이던 그들은 우리가 아는 그 4.3의 희생자가 되었다. 박광현 감독이 표현한 바, 폭력을 다루는 그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통해 역사의 비극성을 극적으로 드러낸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우리 역사의 뒤페이지에 숨죽여 웅크리고 있던 '빨갱이들의 일'을 비극적 민중사의 한 장면으로 복원했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포스터

하지만 오멸 감독의 '행군'은 과거에 그치지 않는다. <지슬- 끝나지 않는 세월2>에 앞서 그의 영화 데뷔작이었던 <어이그, 저 귓것(Nstalgia)>통해 '귀신이 데려가야 할 바보 같은 녀석들(귓것) 네 사람을 통해 과거 제주도의 민속 노동요와 포크 음악의 협연을 시도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보였었다. 또한 개봉되지 못한 2015년 작 <눈꺼풀>은 '세월호'에 대해 발 빠르게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 누구보다 앞서 시대를 영화에 담고자 하였다. 또한 다루고자 하는 주제만이 아니라 비전문 영화인, 배우와 스텝이 구분되지 않는 '공동체'로서의 작업 과정을 통해 '독립'의 의미를 과정으로서 담보해낸 영화인으로 <전체관람가>의 취지에 가장 부합한 인물로서 이제 8번째 감독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독립영화의 상징적 인물이란 거창한 수식어만으로 그가 <전체관람가>의 한 자리를 맡은 건 아니었다. '신라리' 프로덕션의 문소리가 삼고초려를 했다지만, 그보다는 지난 촛불 정국에서 모두가 지겹다 했던 그 순간에도 꿋꿋하게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치며 촛불을 켜냈던 JTBC에 대한 동지의식이 오멸 감독을 그 자리에 불러왔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

또한 그런 사명감만도 아니다. 정작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4.3을 새롭게 조명하도록 만든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그에게도 '블랙리스트'의 족쇄를 채웠다. 제 아무리 독립영화라 해도 투자를 받지 못하면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그의 지난 시간은 버거웠고, 그 고난의 끝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전체관람가>의 출연 요청을 받고 대번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또한 말이 좋아 공동체지, 오멸 감독 자신이야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그 과정을 함께하는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독립영화'의 척박한 현실, 과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계속 독립영화를 만드는 것이 맞는가라는 회의, 거기에 그 누구보다 먼저 말문을 열었던 <눈꺼풀>이 상영조차 되지 못하는 처지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미뤄두어야 했던 상황이 기꺼이 <전체관람가>의 기회를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눈꺼풀>에 이어 몇 년 전부터 하고자 했던 세월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독립영화 <파미르>가 말하는 세월호

3000만원의 예산, 그 퍽퍽한 한계 속에서 3회차의 촬영조차 허덕이던 다른 감독들과 달리, 오멸 감독은 <전체관람가> 최초로 해외 로케에 36일간의 대장정의 작품을 빚어낸다. 아니 그 짧은 시간보다 더한, 지난 3년 묵은 그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더 '진짜'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파미르’ 편

세월호를 물속에서 꺼내기 전부터 '지겹다'했던 사람들은 이제 어느새 '세월호'를 잊어간다. 가족들도 더는 '죄송스러워서' 잊으시라며 물러섰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의 가슴 속에는 잊는다 해도 남겨진 부채, 바로 그 시간이 흐른 뒤의 '세월호' 이야기를 오멸 감독은 다룬다.

아웅다웅하며 함께 수학여행을 떠난 두 친구, 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온 한 친구의 삶도 온전하지 못한다. 친구가 타던 자전거의 안장이 시간 속에 너덜거려진 즈음, 비로소 남겨진 친구는 친구의 자전거를 찾아온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친구가 가려고 했던 '파미르 고원'을 그의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원. 9명의 스탭들, 누가 배우고 스탭인지 구분이 안 가는 상황을 거쳐 만들어낸 영화는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고원을 헤매는 한 청년를 따른다. 굴러 떨어져 주저앉은 그에게 느닷없이 던져진 고원의 어린아이가 던진 돌팔매, 자신보다 먼저 왔던 청년과의 이별에 상처로, 몽니로 던져진 돌멩이들. 비로소 청년이 된 친구는 그 아이의 돌팔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포기하려는 순간에 친구가 가고자 했던 고원이 다가오고, 비로소 청년은 그곳에 친구를 두고 ‘다시 오마’하고 웃으며 길을 떠난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파미르’ 편

우리 시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부채의식, 어떻게 해도 시대가 만들어낸 이별 앞에서 현명해질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오멸 감독은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파미르 고원을 찾아 떠난 청년을 통해 보듬어 준다. 우리들의 자화상이자, '씻김굿'이 된 영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안에 남겨진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목청 높은 선언이 닳아버린 시간 속에 세월호에 대한 담론에서 한 발 더 나선다.

그렇게 오멸 감독의 영화는,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독립영화'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감독 말대로, 상업 영화를 못해서 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과정부터 다른, 자본의 투자를 못 받은이 아닌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독립영화의 가치를 설득해냈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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