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작가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드라마 작가로서 그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은 그 자체가 거대하고 강렬한 유산처럼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그래서 먹먹하다.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감동스러운 것은 그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가치, 가족과 사랑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1996년 MBC에서 방송되었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이후 소설, 연극과 영화 등으로 만들어지는 등 말 그대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전형으로서 가치를 보였다. 기본적으로 탄탄한 이야기는 어떤 장르에서도 충분히 욕심을 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 셈이다.

무려 2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노희경 작가의 역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이 tvN을 통해 리메이크되었다. 과거 이야기가 현재에도 통할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이들이 결론까지 알고 있는데 3% 후반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경계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높은 시청률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tvN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왜 많은 이들은 이미 결론까지 알고 있는 이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일까? 소설책을 여러 번 반복해 읽는 것과 유사할 듯하다. 다시 들여다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인물들을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역시 비슷한 감성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의사 남편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큰딸은 유부남을 좋아하고 아들은 의대를 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남동생은 노름에 빠졌고, 사는 게 뭔지 참 쉽지 않다. 인희(양미경)는 이렇게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의사인 남편 정철(유동근)은 무뚝뚝하고 원리 원칙에 집착하는 남자다. 돈도 좀 많이 벌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병원장과 대립하며 일해 온 의사 정철은 은퇴를 앞두고 있다. 딸 연수(최지우)은 좋은 대학을 나와 유명 백화점 VMD로 살아가고 있다. 결혼보다는 일이 우선인 그녀에게 결혼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

언제나 순종적이었던 엄마. 그런 엄마가 답답하기만 했던 연수는 결혼보다는 일이 더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게 하필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문제지만 말이다. 절대 변할 수 없는 벽 앞에서 자신만 사랑이라 생각하는 그 현실에 대한 감각은 그래서 더 무딜 수밖에 없었다.

정수(최민호)는 은연중 압박 아닌 압박을 받아 삼수생이 되었다. 의대를 가고 싶기는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원한다고 다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니 말이다. 의사 아들을 두고 위세가 등등 했던 시어머니(김영옥)는 치매가 걸렸다. 남동생 근덕(유재명)은 택시 운전을 하며 노름에 빠져있다.

악착 같이 살고 있는 양순(염혜란)은 그래도 남편 근덕이 싫지 않다. 배운 게 많지 않지만 인희를 너무 좋아하는 양순에게 그녀는 친언니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갑작스럽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좀처럼 왕래가 없던 정철이 직접 양순을 찾아 수술 이야기를 하고 돌봐 달라는 부탁까지 할 정도다.

여행은 고사하고 의사 사모님이라고 편하게 살아본 적도 없던 인희에게 마지막 희망과 같은 존재는 남편과 함께 살 전원주택이었다. 새집을 짓고 함께 노후를 살 생각에 행복한 그녀에게는 작은 불편이 있을 뿐이었다. 남편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싶다고 하지만, 무뚝뚝한 남편은 다른 병원을 가라고 할 뿐 관심이 없다.

자신을 그렇게 무시하고 힘들게 했던 시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자신을 엄마라고 부른다. 인희는 그런 시어머니마저 소중하다. 비록 자신을 너무 힘들게 했던 존재지만, 그녀에게 그런 시어머니마저 소중하게 느낄 정도로 가족적인 인물이다. 아들이 의사라는 사실이 벼슬일 수 있었던 시어머니에게 가난하고 볼품없는 집안의 인희는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tvN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한 번도 풍족하게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던 인희는 그저 가족들이 잘되기를 바랄 뿐인 그런 엄마였다. 그 흔한 해외여행 한 번 다녀본 적 없는 인희는 친구들과 계를 통해 얻는 목돈을 모두 가족을 위해 쓸 뿐이다. 그녀에게 자신을 위한 선택은 그저 사치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정철은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의사라는 직책을 과시를 위한 도구가 아닌 진짜 의술을 펼치는 의사로 살고 싶었던 정철에게 사업이 우선인 병원은 항상 충돌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처럼 되고 싶은 아들 정수는 스스로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술에 빠진 채 살아가고 있다.

가족 누구도 엄마 인희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자기 살기에 바쁘고 자신에게 던져진 문제를 풀어내기에 급급할 뿐 가장 가까운 사이인 아내이자 엄마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왔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을 것이라는 막연함은 그렇게 서글픔으로 남겨질 뿐이었다.

아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정철은 뒤늦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왔던 그는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도 자존심이 중요했다.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지 못했던 그는 아내의 상태를 알고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왜 너희 엄마가 이렇게 병들어 가고 있는데 알지 못하냐고, 왜 평생 착하게 가족을 위해서 만 살아온 자신의 아내를 구박해왔느냐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하는 정철은 그렇게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할 생각에 행복해 하는 아내가 불치병이라는 사실은 원망스러웠다.

암이라는 말을 듣고도 애써 담담해 하는 인희. 그런 아내가 그런 엄마가 애처롭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평생 자신의 삶 없이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왔던 인희는 그렇게 무너져가고 있었다. 수술을 앞두고 입원하기 전에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먼저 챙기는 인희는 자신을 붙잡고 서럽게 우는 그녀에게서 어쩌면 자신을 봤을지도 모른다.

tvN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비록 완치하지 못하더라도 아프지 않게 하고 싶다는 정철은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수술을 시작했다. 하지만 개복한 인희의 몸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암이 모두 퍼진 상태였다. 이미 늦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늦었다.

개복한 후 "닫자"라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정철에게 이 모든 것은 재앙이었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돕던 아내는 그저 당연하게 여겼다. 최소한 아내에게만큼은 그런 존재로 인정받으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 아내가 평생 고생만 하다 지독한 고통으로 삶을 마감해야 하는 처지다. 이 지독한 상황은 재앙이다.

결론을 알면서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노희경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이 드라마를 썼다. 그래서 더욱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우리시대 어머니, 그 어머니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자식들과 남겨진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는 영원한 가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통해 가족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이자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삶과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고찰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쉽지 않지만, 결국 그게 우리의 존재 가치이기도 하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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