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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빌리 엘리어트’- 발레란 사다리와 부성애, 영국판 개천에서 용 나기[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7.12.10 11:40

‘빌리 엘리어트’는 1980년대 영국의 탄광촌에서 자라난 소년 빌리가 로열발레단의 발레리노로 입단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한 마디로 압축하면 영국 버전 ‘개천에서 용 나기’다.

빌리의 아버지가 빌리에게 가르치려는 스포츠는 발레가 아니었다. ‘권투’다. 여기서 권투와 발레는 일종의 ‘계급’을 표상한다. 빌리의 아버지는 빌리가 권투보다는 발레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발레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조차 하길 싫어한다. 이는 빌리의 아버지가 몸담고 있는 탄광 노동자가 생각하는 최상의 스포츠는 권투이지, 절대로 발레가 아님을 보여준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신시컴퍼니

권투는 ‘헝그리 정신’이 아니고서는 성취하기 힘든 스포츠다. 상대에게 펀치를 가해야 하지만 그 전에 맞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맞는 데 이골이 나야 성취가 가능한 스포츠다. 권투는 가진 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악바리가 근성 하나만으로 성취 가능한 스포츠다. 

올림픽에서 한국의 스포츠, 그 가운데서 권투와 레슬링이 금메달 효자 종목이던 때는 90년대 이전이다. 국민 소득이 올라가기 시작하던 90년대부터 레슬링과 권투 등 격투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빈도수가 점점 낮아지기 시작한다. 빌리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가르치려 하는 권투는 영국 상류층의 스포츠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이 쉽게 관심을 가질 만한 종목이다.

이 뮤지컬에서 비속어가 차고 넘치는 이유는 빌리와 빌리의 아버지가 포함된 계층이 상류층이나 중산층이 아닌 영국의 노동자 계급임을 대사로 들려주기 위함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신시컴퍼니

더불어 다른 뮤지컬과 달리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심화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격하게 표현된다. 빌리는 아버지에게 욕을 하고, 빌리의 형은 아버지의 얼굴을 때린다. 어머니가 없이 남성만으로 구성된 빌리의 가정이 얼마나 불안정한가를 보여주는 묘사이자, 동시에 말로 불만을 표출해도 될 것을 과격한 언어, 물리적 폭력으로 해결하기 쉬운 노동자 계급임을 상기시키는 언어적인 연출이다. 

빌리가 재능을 보이는 발레는 노동자 계급에게 친숙하지도 않고 발레 교습 비용도 만만치 않다. 돈이 있는 유한계급만이 어릴 때부터 발레에 친숙할 수 있고 발레 교습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뮤지컬 대사에 등장하는 (루돌프) 누레예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라는 이름은 평소 발레에 관심이 없는 관객이라면 무심하게 흘려버릴 수 있는 발레 거장의 이름이다. 

2막에서 빌리가 로열발레단 오디션을 볼 때 다른 지원자의 부모들이 빌리의 아버지를 멀리하는 장면은, 어떻게 광부의 아들이 발레를 배울 수 있는가 하는 영국 상류층의 편견어린 시선을 보여준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신시컴퍼니

빌리가 로열발레단 오디션을 치르기 전에 빌리의 차비와 오디션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는가를 2막에서 살펴보라. 빌리의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광산 파업에 동참한 빌리의 동료가 가진 돈만으로는 빌리의 상경 비용과 오디션 비용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빌리가 오디션을 볼 수 있는 비용은, 광산 파업에 가담한 조합원들이 배신자라고 낙인찍은 파업 철회 근로자가 빌리에게 내놓은 수백 파운드의 돈이 있기에 가능했다.

빌리의 발레단 입성에 빌리 아버지의 동료들, 심지어는 파업 철회 근로자마저 지갑을 연 이유는 빌리라도 노동자 계급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런 영국 광부들의 심경이 뮤지컬의 2막에 구구절절 배어있다. 석탄 가루를 마시는 탄광 노동자의 삶을 빌리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빌리 아버지의 마음이 파업 철회 근로자의 마음까지 움직인 덕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빌리가 영국의 명문 발레단인 로열발레단에 발레리노로 입단하는 성공기 ‘개천에서 용 나기’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빌리의 로열발레단 입성기를 빌리의 형과 아버지에게까지 대입하면 이 뮤지컬은 빌리의 아버지가 포함된 탄광 노동자가 노동자라는 계급을 대물림하고 싶어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와도 연관되는 뮤지컬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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