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수상한 삼형제>의 태실장이 얄미운 캐릭터 부동의 1위였다. 그녀만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주먹에 힘이 들어갔었다. 그랬던 것이 최근 들어 좀 누그러졌다. 선인의 가면을 쓰고 현찰 부부를 교묘하게 이간질하면서 가식적으로 현찰에게 접근할 때는 미치도록 얄미웠었는데, 대놓고 악행을 저지른 다음부터는 그냥 미운 악당 정도로 느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엔 현찰 부부가 부부사기단의 수법으로 태실장에게 복수를 꾀하면서, 태실장 캐릭터의 성격이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되려 하기 때문에도 더욱 그렇다. 현찰이 태실장의 순정을 이용해 복수를 하고 있고, 현찰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마음이 흔들리는 태실장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그녀가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틈을 타 최악의 얄미운 캐릭터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바로 <개인의 취향>에서 김인희 역할을 맡고 있는 왕지혜다. 그녀는 손예진의 애인을 뺏은 악역으로 등장했었다. 그러다 자신이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손예진에게 더욱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얄미운 성격을 만들어나갔다. 그다음엔 손예진의 새로운 애인인 이민호를 교묘히 유혹하는 모습을 보여 그 얄미움을 증폭시켰다.

그녀는 자신이 연이어 손예진에게 해를 끼치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손예진에게 분개한다. 마치 손예진에게 부당하게 자신의 것들을 많이 뺏긴 것처럼 느낀다. 이런 아무 이유 없는 피해의식으로 남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캐릭터는 정말 얄밉다.

미술관의 관장이 손예진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보이는 것조차 그녀에겐 분노할 일이다. 한 마디로 손예진이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성격인 것이다. 그렇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성격인 데다가, 그것을 당당하게 표출하지 않고 음흉하게 음모를 꾸미기 때문에 얄미움이 더욱 증폭된다.

이번 주에 방영된 13회에서 그녀의 얄미움은 극에 달했다. 우연히 손예진의 생일을 알게 된 왕지혜는 그것을 김지석에게 알려준다. 손예진과 김지석 사이에 계속해서 ‘썸씽’을 만들려는 교묘한 술책이다.

그러더니 이민호의 어머니 앞에 천사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나서는 손예진이 김지석과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다고 일러바쳤다. 마치 진정으로 사심 없이 이민호를 걱정해주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이 대목에서 얼마나 가증스럽던지 울컥하며 주먹에 힘이 들어갔을 정도다.

그녀는 이민호의 어머니에게, 이민호가 손예진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는 김지석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고 일러바쳤다. 그런데 김지석이 이민호를 곤경에 빠뜨리도록 조종한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자기가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면서 흉계를 꾸미고 다니는 것이다.

이렇게 천사의 얼굴을 한 음모녀는 얄밉다. 바로 이것이 <수상한 삼형제>에서 태실장이 그렇게 얄미웠던 이유였는데, 그 성격이 <수상한 삼형제>에서 약화되자 <개인의 취향>이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개인의 취향>에서 왕지혜는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세련됐으면서, 이기적이고, 음모적인 최악의 가증스러운 캐릭터 그 자체로 보인다. <개인의 취향>을 보고 있으면 얄미운 왕지혜 이외의 왕지혜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얄미운 왕지혜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작년 여름에 ‘저주 받은 걸작’인 <친구, 우리들의 전설>에 나왔었는데 거기에선 성격이 정반대였다.

그 드라마에서 그녀는 희생적이고,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나왔다. 그녀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정조는 아픔 혹은 슬픔이었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에서 왕지혜가 맡은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서,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역할을 잘 소화하느냐에 세 친구의 감정선이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는 구도였었다.

왕지혜는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파지는 여주인공 캐릭터를 절절하게 표현해서 현빈과 함께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에 영화와 다른 개성을 입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에 그 드라마를 통해 재발견된 두 배우로 왕지혜와 현빈을 꼽았었는데 이렇게 변신할 줄은 몰랐다.

순백의 이미지였던 그녀가 <개인의 취향>에서 농염한 악녀로 나타난 것이다. 순수하고 아픈 왕지혜도 잘 어울리고, 가증스럽고 얄미운 왕지혜도 잘 어울린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을 볼 때는 지켜주고 싶었는데, <개인의 취향>을 보면 때려주고 싶어진다. 앞날이 궁금해지는 배우다.

<개인의 취향>에 이렇게 가증스러운 캐릭터가 굳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파스타>에는 이렇게까지 얄미운 캐릭터가 없었다. 그래도 알콩달콩한 느낌으로 찬사를 받았었다. <개인의 취향>은 이런 캐릭터 때문에 얘기가 질척질척해지면서 ‘쿨’한 로맨스의 느낌에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닐까?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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