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다가 국어 읽기시험 보는듯한 기훈의 맥 빠진 대사처리가 번번이 흐름을 차단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은혜를 입었던 구대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보기에는 너무 깔끔한 코디의 실력이 부담스럽기도 한데 그의 대사 어디에도 번뇌의 감정이 묻어나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전히 문근영, 이미숙의 연기는 변함없이 펄펄 날지만 연기 콩쿠르가 아닌 이상 두 배우의 연기에만 매달려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데렐라 언니가 지금껏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효선과 은조의 관계에 얽힌 비밀과 호기심이다. 구대성의 죽음 이후 작가는 느닷없을 정도로 홍주가 쪽 이야기를 삽입하려고 하는데 그쪽으로 관심을 유도하기에는 전개의 얼개가 너무 미약하다. 결국 기훈과의 통화 후에 아버지가 쓰러지는 상황은 이미 구대성의 죽음에서 본 것으로 아이디어마저 고갈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문근영의 연기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 장씨와의 일화는 강숙의 변화를 위한 복선을 제공하고 있고 동시에 효선을 책임지기로 은조와 약속 아니 고백했던 기훈은 난데없이 거절하겠다고 한다. 그것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아무리 술김이라고는 해도 은조는 기훈에 대한 마음을 정우에게 털어놓고 만다. 지금까지 마음을 철옹성처럼 꼭꼭 닫아두었던 은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은조의 마음이 약해지는 계기가 고작 테스트 삼아 마신 막걸리 몇 잔이라는 점은 너무도 허무하다. 물론 대성의 죽음으로 인해 은조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어도 자신을 감추는 것은 은조의 오래된 습성이다. 꿀물을 타온 은조에게 정우가 "술 좀 꼴았다고 꿀물 타다 바치나?"라고 윽박지른 정우의 말이 정말 공감됐다. 그렇다. 은조는 술 몇 잔에 무너질 허무한 케릭터가 아닌 탓이다.
그렇지만 이정도도 대단한 성과이다. 시청자의 통속적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작가주의라고 부를 만한 뚝심에 충분히 박수쳐줄 수 있지만 시청률 20%정도가 신데렐라 언니의 한계점이 아닐까 싶다. 많은 시청자가 구대성의 죽음 앞에 통곡하는 은조를 통해서 이미 통속성을 포기할 정도로 작품성에 합의한 상태에서 13회에서 보인 방황은 이러다가 명작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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