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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볼거리만큼은 확실하지만, '아는 만큼' 고개가 갸웃해지는[블로그와]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7.12.07 14:00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세계적 추리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80여 편 작품 중 그가 뽑은 10개의 작품에 들어가는 수작이다. 장편으로는 14번째, 포와로 탐정 시리즈로 8번째인 이 작품은 1932년에 실제로 있었던 찰스 린드버그 아들의 유괴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으로, 크리스티 스스로 '새로운 플롯의 아이디어'를 선택의 이유로 삼았을 만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함께 충격적인 반전의 결말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이런 신선한 플롯 덕분에 작품이 출간된 이후 대중에게 사랑을 받아왔고, 일찍이 1974년 시드니 루멧 감독이 영화화한 이래 1989년부터 2013년까지 방영한 영국 드라마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와로> 시리즈 중 한 편으로 2010년 방영되었으며, 2015년 후지TV 개국기념으로 만들어진 바 있다. 안타깝게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 작품을 함께하진 못했지만 1978년 <나일 살인 사건> 등 5편의 장편 영화, 그리고 다수의 TV 시리즈에서 포와로로 활약하여 '포와로' 전문 배우로 기억되는 피터 유스티노프도 있다. 그리고 이제 2017년 케네스 브래너 감독, 주연의 신작이 찾아왔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소설을 읽은 독자를 비롯하여 전작의 영화와 TV 시리즈를 본 사람, 그리고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아니지만 포와로를 연기했던 배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2017년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보며 '비교' 대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포와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 이미지

TV 시리즈를 통해 피터 유스티노프의 익살스런 포와로에 익숙해 있었기에, <덩케르크>에서 신념의 해군 제독으로 각인되어있던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하는 에르큘 포와로는 좀 낯설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살인 사건>을 통해 처음 등장하는 포와로는 벨기에의 전직 경찰로 은퇴 뒤 영국으로 건너와 탐정 일을 하는 사람이다. 주로 그를 본 사람들이 '프랑스인'인가 헷갈릴 때마다 벨기에인이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 노신사는, 그의 친구 헤이스팅스 대위에 따르면 5피트 4인치가 되지 않는 왜소한 체구에 콧수염을 뻣뻣하게 잘 관리하며 달걀 모양의 머리를 한 외양을 지녔다고 묘사된다. 

그래서 영화마다 포와로 역의 배우들은 하나같이 그 뻣뻣한 수염을 내세우며 등장하는데, 아마 풍성함과 예술성에 있어서는 2017년판 포와로가 압도적인 듯하다(물론 풍성하고 예술적인 것이 가장 포와로답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포와로를 뻣뻣한 수염만으로 '특정'하는 건 일면적이다. 오히려 '약간의(?) 결벽증과 노골적인 자기애로 포장된 그의 예리한 '회색 뇌세포'야말로 셜록 홈즈 못지않은 마니아층을 형성한 매력의 정점이다. 2017년판 포와로 역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달걀을 등장하여 예의 포와로의 결벽증을 알렸고, 예루살렘 통곡의 벽을 배경으로 통쾌한 사건 해결로 이 '회색 뇌세포'의 등장을 열었다. 

익살스러웠던 피터 유스티노프와 날카로운 눈매의 예리하면서도 통찰력 깊은 데이빗 서쳇에 비하면 케네스 브래너의 포와로는 영화 중 등장하는 '에르큘'과 '헤라클레스'의 언어적 착각처럼, 꽃중년의 풍모는 한결 우월했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스러운 '포와로'였는가에 대해서는 '넥타이'에 대한 집착 이상의 개성이 아쉽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 이미지

어쩌면 포와로 탐정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과연 2017년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아가사 크리스티다웠는가라는 그 기본으로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2017년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무엇보다 이스라엘 통곡의 벽부터 시작하여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유럽을 횡단하는 오리엔트 특급, 그 열차와 행로의 볼거리로 시선을 빼앗는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끄는 건, 주인공 케네스 브래너를 비롯하여 조니 뎁, 주디 덴치, 페넬로페 크루즈, 윌렘 데포, 미셜 파이퍼 등 쟁쟁한 출연진이다. 이런 쟁쟁한 출연진은 1974년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비교된다. 1974년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역시 잉그리드 버그만을 비롯하여 숀 코너리, 바네사 레드그리에브 등 그 출연진의 면면만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그렇게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포진시킨 영화는, 원작처럼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주요 인물이라 여겨지던 한 배우 아니 등장인물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거의 그와 동시에 눈사태로 인해 기차 역시 아슬아슬한 철교 위에 멈춰 서게 되고.

셜록 홈즈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추리물 마니아라고 하면 셜록 홈즈보다 더 한 수 위로 치는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탐정과 함께 등장인물의 대화나 행적 등을 살펴보며 뇌세포를 풀가동하여 '추리'를 해나가는 묘미에 있다. 대부분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에는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을 배경으로 유력한 용의자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드러내 보이는 바, 그리고 드러내 보이는 면 이면의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비밀들이 하나씩 벗겨지며, 심리전의 양상을 띠며 추리의 과정이 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전혀 뜻밖의 인물이 범인이듯,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면, 도덕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것이 아가사 크리티 작품의 매력이다.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 이미지

그렇듯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에서도 포와로를 제외한 열차에 탑승한 11명의 승객이 용의자로 등장한다. 평범한 승객인 줄 알았지만, 모두들 한 겹을 벗겨내고 나면 수상한 면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상황, 거기에 피해자의 상흔조차 의심스러운데. 특히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은 피해자의 서로 다른 찔린 상처와 용의자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가 막판 극적 반전을 통해, 그리고 결과에 따른 도덕적 혹은 법적 판단의 잣대를 놓고 끝까지 독자 혹은 관객들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작품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자평하듯 이런 신선한 플롯의 전개에 대해, 데이빗 서쳇 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열차를 타기 전 포와로가 사건은 해결하지만 그 사건의 범인이 자살을 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왜곡될 수 없다'는 포와로의 신념에 물음표를 던지고, 그 물음표를 12명의 배심원에 의한 직접 심판이라는 본 사건의 결론과 맞물려 수미상관으로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 이미지

그렇게 영드 특유의 깊이를 더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까지는 아니지만, 케네스 브래너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조니뎁의 등장도 흥미진진하고, 미셸 파이퍼의 카리스마는 여전했으며, 페넬로페 크루즈의 반전이나 월렘 데포의 건재 또한 반가웠다. 하지만, 11명의 승객과 1인의 승무원이 서로 엇물리며 벌이는 심리전의 긴장감이 반전 추리의 결말로 순조롭게 이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남는다. 그래도 셜록 홈즈가 액션 스릴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버전의 셜록 홈즈 시리즈 정도의 무리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베네딕트 컴버배치 버전만큼 신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는 '아는 만큼' 달라진다. 아마도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말 그대로 신선한 결말 자체만으로도 쟁쟁한 배우진, 화려한 풍광과 함께 볼만한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에 반해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혹은 원작과 함께 다른 배우가 연기한 포와로를 맛본 사람이라면, 그 정도에 따라 아쉬움의 농도는 짙어질지도 모르는 것이 2017년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층위가 다른 감상평이다. 하지만 아쉬워도 나일 살인 사건이 또 다시 영화화된다면 보러 갈 것 같으니, 아쉽다 하면서도 <해리 포터> 시리즈의 관객이 되듯 아마도 이는 아가사 작품이 가진 근원적 매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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