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권력, 자본 등으로부터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공영방송 이사’에 재계 출신 인사들이 잇달아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2009년 9월, KBS 이사장으로 ‘재계의 대변인’으로 불리는 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된 것에 이어,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보궐 이사에 삼성, 벽산, 아주그룹 등을 거치며 ‘구조조정 전문가’라고 불리는 김재우 기업혁신연구소 소장이 선임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2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쪼인트 파문’으로 사퇴한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를 대신할 여당 추천 몫 보궐 이사로 김재우 소장을 선임했다. 김 소장은 1944년 생으로, 야당 추천 고진 이사와 함께 방문진 이사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조만간 김 소장을 방문진 이사로 임명하게 되면, 방문진은 오는 19일 이사회를 열어 호선으로 이사장을 선출할 계획이다.

김재우, 방문진 이사 선임 배경은?

▲ 김재우 방문진 보궐 이사 내정자
방송문화진흥회법 제6조 4항은 ‘이사는 방송에 관한 전문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송에 대한 경험이 없는 김 소장은 송도균 방송통신위원이 추천했으며, ‘방송에 관한 전문성’이 아닌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에 해당되어 선임됐다.

김 소장은 ‘경영성’을 높게 평가 받아 방문진 이사로 선임됐다.

‘구조조정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그는 고려대학교 출신으로 삼성물산 정보산업 부문장, 아주그룹 부회장, 벽산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쳐 현재 기업혁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08년 9월에는 한국가스공사 사장 공모에 지원, 최종 후보 3인 안에 들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과거 1998년 IMF경제위기 당시 부채비율이 300%에 달해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벽산이 2000년 워크아웃에서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오광혁 방통위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방송의 흐름이 방송에 관한 전문성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방문진은) 방송을 직접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MBC를 관리하고 경영을 평가하기 때문에 방송에 대한 전문성 이외에 사회 각 분야 대표성을 띠는 법률가, 언론인 등으로 구성돼있다”고 말했다. 또 “경영 쪽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며 “방송을 반드시 아는 사람이 이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구조조정 전문가’가 주는 의미는?

구조조정 전문가가 방문진의 이사로 선임됐다는 것은 MBC 경영에 대한 방문진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에 공영방송 MBC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기 보다는 성장, 이익, 경쟁, 혁신 등을 강조하며 MBC를 하나의 일반기업처럼 간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에 대한 속내를 밝힌 그의 저서 <누가 그래? 우리 회사 망한다고!> <거봐 안 망한다고 했지> <CEO 김재우의 30대 성공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경쟁력 강화’ ‘성공’이라는 점에서도 MBC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그는 지난 11일 오전, 휴넷 CEO Insight 월례 조찬회에서 혁신을 통한 창조경영을 강조하며 “연공서열과 구태는 기업 혁신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영방송을 재계 하위부서로 두겠다는 것”

경영인 출신을 공영방송의 이사로 선임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미디어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공영방송을 재계의 하위부서로 두겠다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손병두 KBS이사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출신이고, 김재우씨는 CEO 출신이다. 이는 공영방송 두 곳 이사장 모두 재계 출신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라며 “CEO 출신이 방문진 이사로 되면서 MBC에 대한 중장기적 경영 기획, 관리,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언론계 관계자도 “실질적으로 MBC의 인력 구성은 다른 공영방송에 비해 많지 않고 방만한 경영이 아니기 때문에 MBC에 대한 구조조정 이야기를 꺼낸다면 이는 ‘MBC 죽이기’의 흐름을 타고 있을 것”이라며 “결국 MBC를 사영화로 연결시키기 위한 하나의 포석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김재우씨는 ‘죽어가는 기업’을 살린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인데 지금 MBC 죽어가는 기업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방문진의 기본 역할이 정치 권력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인데, 정치 권력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업인을 방문진 이사로 선임한다는 것은 방문진을 망가트리려는 시도”라며 “이러한 상황이 확대되면 방문진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MBC 사장을 지냈던 최문순 민주당 의원도 우려를 표했다.

최문순 의원은 “방문진 이사로 경제인을 배제시킬 것은 아니지만, 바람직하지는 않다”며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방문진의 기본 정신이자 설립 취지인데 이 분은 방문진법의 정신에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방문진 이사장의 자리는 상징성이 있는 자리로, MBC 인사, 프로그램, 편성 등에 개입하거나 MBC에 대한 구조조정을 주도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행동도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김우룡씨 사태가 이만저만 했다면 MBC 장악에 대한 미련을 거두고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방문진 이사회를 정상화하는 것이 순리지만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오늘 방송 근처에 이력이 전무한 고대 출신 이명박 프랜드를 방문진 보궐이사로 선임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최시중 위원장의 김재우 이사 선임은 위기에 빠진 김재철 사장에게 힘을 싣거나 제2의 포석을 놓음으로써 MBC 장악을 위해 투입하는 마지막 카드로 해석되며, 김재우 이사는 MBC 노조 압살과 사유화 시나리오를 마감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MB와는 어떻게 연결?

김 소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직접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지는 현재로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학교’와 CEO 및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CEO스터디프로그램인 ‘휴넷 CEO포럼’로 연결돼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휴넷의 경우 5~6개월을 꾸준히 수강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골드 클래스 회원 2만명 중 700명이 일선 기업의 CEO들이다. 휴넷은 온라인으로 시작해 오프라인 조찬 모임으로도 확대됐다. 지난 2005년 4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휴넷 골드명사특강에서 ‘신화는 없다’라는 강의 주제로 “‘샐러리맨의 우상’ ‘위기관리의 명인’ ‘컴퓨터 달린 불도저’등으로 불리며 전문경영인 신화를 창조했던 이명박 시장의 성공의 노하우”에 대해 강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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