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숙종은 더 이상 판관 나리 행세를 하지 못하게 됐다. 묘화관에서 청국 군사들에게 쫓기다 대면한 상황이기에 숙종으로서도 숨길 방법이 없었다. 동숙 커플의 몰래 데이트는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동이를 구해낼 사람은 왕 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했기에 동숙커플에 기대감이 만발한 것을 뻔히 알고 있을 작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동이의 위기일발은 그렇게 동숙커플의 흥미로운 만남을 그만 두는 희생을 치르고 해결되었다. 그렇지만 그 낙담도 잠시 동이와의 평범한 남자 놀이에 흠뻑 빠진 숙종의 파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동이가 빼내온 암호 덕분에 김윤달의 밀수 계획을 밝혀낼 수 있게 되어 숙종으로서는 마음이 가벼워진 것도 머뭇거리지 않고 동이와의 관계를 이어나갈 계기를 주었다.

숙종은 동이를 대전으로 부른다. 그 과정에서 마치 동숙커플의 총정리라도 해주듯이 동이의 회상을 통해 그동안 숙종의 코믹씬을 망라해주어 보통 회상이 시간 때우기라는 의심을 받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하이라이트를 대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 상황에서 황주식과 영달은 사약을 받는 꿈을 꾸게 해서 회상의 완결을 보여주었다.

한편 대전에 불려온 동이는 딱 죽을 줄만 알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어찌할 줄을 모르는 동이를 보는 숙종도 사실 동이만큼이나 걱정이 가득하다. 그런 분위기를 한순간에 깨준 것은 천방지축 동이의 첫마디였다. "주상마마" 시청자는 좀 그랬지만 숙종은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동이를 여자로 보지 않는 숙종의 아빠미소는 동숙커플의 미래를 알고도 애달아하는 시청자를 은근히 약 올릴 정도로 흐뭇했다.

몸 둘 바를 모르는 동이에게 숙종전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녀석.. 얼어 있기는..! 그러지 말고 고개를 들거라. 미안하다 용서를 구해야할 사람은 난데.. 니가 그러고 있으니 내가 더 무안하지 않느냐"고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들은 또 여전히 파격적이고 또한 대단히 훈훈한 것들이다. 하도 재미있어서 그 중요한 대목만 조금 따와본다.

숙종 : 내, 사실 전부터 사실을 고백하려 했는데.. 그게 어쩌다보니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되었구나!!허니, 혹 기분이 상했다면 마음을 풀거라..
동이 : 다.. 당치않으시옵니다 전하..... 기분이 상하다니요. 소인이 감히 어찌........
숙종 : 정말이냐? 난 니가... 어디서 그따위 풍을 친거냐며 날 한 대 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동이 : 저..전하..!! 치.. 치다니요.. 마..망극하옵니다...!
숙종 : 아, 임금의 등도 밟는 너인데 뭔들 못하겠느냐?
동이 : 전하.....그것은.. 소인이.... 전하께서 임금님인 줄 모르고....
숙종 : 허면, 여전히 모른 채로, 그렇게 해다오. 그래줄 수 있겠느냐? (중략)

숙종 : 물론...... 내가 임금인 걸 알아버렸으니 이제 쉽지는 않겠지......하지만 어쩐지 난, 너하고 있을 때는 한 나라의 왕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고 싶구나! 허니, 내가 앞으로도 널 풍산이라고 부를 것 이듯 너도 날 처음에 알고 지내던 그 판관나리처럼 대해줄 순 없겠느냐?
동이 : 하... 하오나 전하 소인이 어찌..감히...
숙종 : 감히 그리해도 된다... 아니, 꼭 그리하거라. 이건, 어명이다. 알겠느냐...?

마침내 숙종의 사심 가득한 어명이 동이에게 내려진 것이다. 자신을 왕으로 대하는 조선의 모든 인물들 속에 동이마저 합류하는 것은 저자의 평범한 남자로 행세하면 행복했던 숙종에게 너무 안타까운 일인 까닭이다. 어명마저도 참 허당스러운 숙종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물론 당장에 동이를 승은을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닌 정말 친구가 필요한 숙종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동이로 인해 즐거워하는 숙종의 모습에 장옥정은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두 여인의 모진 악연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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