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그랬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경규의 시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예능 프로그램의 1인자란 유재석과 강호동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OX게임인 두 사람의 자존심 싸움일 뿐이죠. 연말 연예대상의 주인공은 이 두 사람 사이에서 결정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버린지도 벌써 오래전이고, 현재 예능의 경향을 움직이는 대표 프로그램들에는 유재석, 강호동의 이름이 확고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누가 2010년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광대인가라는 질문에 이경규는 더 이상 정답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단순히 살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게, 수많은 후배들을 이끌며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확장하고 있죠. 같은 시대에 출발했던 그의 동기들, 심지어 그의 전성기를 이어받았던 예전의 일인자들이 그 존재조차 미미해지고 있는 지금에도 이 50줄의 나이든 광대는 지칠 줄을 모릅니다. 오히려 더욱 맹렬하게, 그리고 거침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면서 수시로 명운이 갈리고 흥망이 공존하는 그 잔혹한 전쟁터에서 스스로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움켜잡고 있습니다. 그는 이경규니까요.
그런데 막상 그의 강의가 시작되자 그런 무게감은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그가 제일 웃기는 코미디언의 모습으로, 그야말로 순수한 광대가 되어 자식뻘 되는 이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며 무대를 누비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고, 여러 교훈들을 전달하기는 했지만 그의 강연에서 제가 가장 감동 깊었던 부분은 그저 이경규라는 사람 자체. 여전히 사람을 웃기는 것에 갈망하고 어느 자리에서건 웃음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주력하는 순수한 광대, 이경규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웃음에 목마른 남자였어요.
그러니 역시 이경규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더군요. 참는 자가 강하다는 그의 결론은 결국 그 반복되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를 만들어내는 자신을 증명하면서 나는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떻게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명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그에게 최고의 자리란 이제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남은 평생을 끝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계속 시청자들 옆에 남아 있는 것. 그래서 그 마지막에 홀가분하게 자신이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는 것이 그의 목표인 것이죠.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여태껏 아무도 할 수 없었던,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길고 긴 여행길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시청자들에게 같이 늙어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하는 남자. 그것만으로도 이경규는 이미 위대한 광대입니다. 그가 선물하는 웃음에 취할 수 있기에 전 정말 행복한 관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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