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에 대한 대략적인 분석이 진행되면서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 속에서 오히려 ‘대화’ 국면으로의 반전 계기를 위한 실마리를 찾아보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이 지난 30일 관영매체 등을 공개한 미사일을 형태를 보면 북한의 주장대로 화성-15형은 애초 공개됐던 화성-14형을 개량한 정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로 판명됐다. 이는 지금보다 북한의 미국을 향한 위협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정황을 보여준다.

언론이 분석한 구체적 내용을 보면 화성-15형은 1단로켓에 이른바 ‘백두엔진’을 2개 묶어 장착해 추력을 향상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또 2단로켓의 직경을 늘려 미사일의 전체적인 형태가 ‘통나무’에 가까워졌다는 점도 드러났는데 이는 연료와 산화제 등의 주입량을 늘리기 위한 걸로 추정된다. 요격 방지라는 대목에서 다소 불리해지더라도 속도를 포기하고 안정적 비행을 중요시 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화성 14형과 15형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탄두부에서 드러나는데, 화성-14형이 뾰족한 모양인 반면 15형은 다소 뭉특한 외양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북한이 미사일 요격을 피하기 위해 다탄두 미사일을 염두에 둔 형태를 취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미사일의 전체 중량을 늘리면서 불가피한 변화를 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핵심은 핵탄두 소형화와 대기권 재진입기술 확보 여부이다. 우리 정부는 이 대목에서 북한이 여전히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보는 듯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이뤄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어제 발사된 미사일이 가장 진전된 것임은 분명하나 재진입과 종말 단계유도 분야에서의 기술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고 핵탄두 소형화 기술 확보 여부도 불분명하다”고 평가한 게 그 증거다.

신문 지상에 등장한 일부 전문가들도 유사한 판단을 내놓고 있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사거리를 실제 발사 각도를 전제하고 다시 계산해보면 워싱턴DC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발사 시험 당시 충분한 중량의 미사일 탄두가 실리지 않았다고 하면 얘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부러 가벼운 탄두를 장착해 사거리를 늘리는 시도를 했을 수 있다는 게 이런 주장이 전제하는 가설이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확보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도 북한의 ‘허세’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의 확보 여부는 ‘고각 발사’가 아닌 정상 각도의 발사 시험이 전제돼야 하는데 북한은 지금까지 그러한 방식으로 발사 시험을 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을 종합하면 결국 북한은 ICBM의 실질적 완성보다는 극대화된 사거리를 과시하기 위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청와대 제공ㆍ연합뉴스 자료사진)

만일 이런 시나리오라면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냐가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이번 미사일 시험 발사로 “핵 무력의 완성”을 실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굳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짐작해볼만 하다. 첫째는 비핵화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여전히 고수하고자 하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 등 협상의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있는 입장에서 북한의 핵 능력이 아직 개발 중이라면 이를 중단하기 위한 여러 반대급부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핵 무력이 완성되었다고 한다면 이런 형태의 협상은 불가능하고 ‘상호군축’을 전제한 논의만이 가능할 뿐이다. 여기서 ‘상호군축’에는 주한미군 철수 역시 포함될 수 있다.

둘째는 이제 핵 무력을 완성하였으므로 ‘핵 경제 병진노선’에 따라 경제개발에 치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기 위함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경우라면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당분간 군사적 수단의 과시 등은 미뤄놓고 내년 신년사 등을 통해 ‘대화 공세’를 재개하고 평창올림픽을 기점으로 하는 극적인 태도 변화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미사일 발사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위해서는 미국의 전향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사일 발사 이전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아시아 순방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일정 내내 군사적 도발을 자제했다. 과거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이 약 60일간 핵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면 미국과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 갖춰진 걸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북한이 이번 미사일 시험 직전까지 ‘군사적 도발’을 중단한 기간은 70일이 넘는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미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이라는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대화 틀을 고수하며 중국을 압박하는 기존의 태도를 유지했다. 중국이 중국공산당의 19차 당대회 결과를 설명한다는 취지로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을 특사로 북한에 파견한 것에는 이런 정치적 맥락 역시 실려 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굳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특사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서는 특사의 ‘급’ 문제나 경제제재 해제를 둘러싼 갈등 등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결국 미국의 중국역할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 역시 포함돼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서 현재의 체제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북미직접대화가 필수불가결한데 중국이 중간에 끼는 순간 이는 어렵고, 그럴 경우 설사 합의를 이뤄낸다 해도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그간의 침묵을 깨고 ICBM 발사 시험을 감행한 것은 결국 다시 북미직접대화를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당장 이에 응할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과 ‘대안우파’를 자처하는 그 측근들은 북핵문제를 당장 해소해야 할 중대한 군사적 위협으로 보기 보다는 대중국 압박을 강화하는 지렛대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본 방침에서 ‘관여’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만일 그러면 북한은 7차 핵실험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또는 이미 공언한 태평양 상공에서의 수소탄 폭발 시험 등 또 다른 군사도발을 강행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색해보려던 문재인 정권의 구상은 완전히 붕괴된다. 미국과 북한에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남한의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하는 어려운 외줄타기가 다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문재인 정권이 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고 있으나, 불가능에 도전하는 몸짓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해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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