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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 유화 애니메이션과 스릴러의 영리한 조합으로 살려낸 인간 고흐[블로그와]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7.11.30 13:39

고흐와 박수근, 19세기와 20세기, 그들이 머물던 시대와 화풍은 달라도 두 사람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인물들이다. 두 사람의 작품은 여전히 가장 높은 가격으로 팔렸다 전해지며, 두 사람과 관련된 전시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두 사람은 생존하던 시절 동시대인들에게 조명 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궁핍의 극한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또한 공통점을 이룬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생전의 불우한 삶은 그들의 작품의 예술적 경지를 고고하게 만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두 사람을 사랑하고 추앙하지만, 그들은 몰 모른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궁핍으로 죽음에 이른 두 예술가의 생애와 화려한 부활은 매번 그래서 두 예술가에 대한 상념을 더하게 한다. 그리고 그 상념은 이제는 먼 과거의 고인이 된 인물에 대한 경의의 현재성을 부추기는데, 박수근에게는, 이제는 박수근만큼이나 우리의 기억에 남을 사람이 된 고 박완서 작가가 길어올린 <나목>이 있다. 그저 푸근한 그림을 그렸던 잘 팔리는 화가였던 박수근은 박완서를 통해 6.25라는 상흔을 온몸으로 겪어낸 예술가이자 가장의 모습으로 재탄생되었다. 

고흐라고 다를까.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른 그의 기행부터 권총 자살로 마무리된 굴곡지고 극적인 인생사는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그의 삶이 소재가 됨은 물론 그와 그의 동생이 나눈 편지글은 회자되었고, 그의 작품과 인생에 대한 동서양의 숱한 해설서들이 등장했다. 거기에 또 무엇을 보탤 게 있을까 싶었는데, 그 장고한 고흐에 대한 경의의 행렬에 화룡점정이 등장했다. 무려 10년의 기간, 전 세계에서 선발된 107명의 화가들이 스크린에 재현한 제목 그대로 <러빙 빈센트>가 그 주인공이다. 

107명의 예술가가 재현해낸 예술가 고흐

영화 <러빙 빈센트> 스틸 이미지

고흐가 잠시 머물렀던 아를, 그곳의 젊은 청년 아르망. 그는 우체국장이었던 아버지의 번거로운 부탁을 받고 고흐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가족을 찾아 떠난다. 청년 아르망에게 고흐나 아버지는 그저 인생에서 저만치 밀려난 사람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부탁으로 길을 떠난 아르망. 그 원치 않았던 행보에서 그는 의도치 않게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밝히는 추적자가 되고 만다. 

영화는 고흐에게, 아니 고흐의 가족에게 전할 편지를 가지고 한참을 주저하는 아를의 아르망을 그린다. 하지만 전혀 갈증이 나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아를의 별의 빛나는 밤>을 비롯하여 고흐가 그린 명화들이 화면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당대의 예술가들과 전혀 다른 붓터치로 오늘날 현대 미술의 단초가 되었지만, 동시대인들에겐 인정받을 수 없었던 고흐의 그 생동감 넘치는 화면은 그대로 유화 애니메이션이 되어 살아난다. 정확하게 '살아난다'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듯, 고흐가 그려낸 그 터치 그대로 당시의 아를이 재현된 화면은 고흐의 화풍이 왜 '모던'한가를 증명해낸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그 색색이 결을 이루어 채워진 스크린은 그대로 고흐의 전시회가 되고, 그가 그려놓은 풍경은 고스란히 당시의 아를과 오베르를 생동감 있게 재현한다. 

유화 애니메이션과 미스터리 스릴러의 조합으로 살려낸 인간 고흐 

영화 <러빙 빈센트> 스틸 이미지

하지만 <러빙 빈센트>의 가치를 그저 화면에 채워 넣은 고흐의 작품이라고만 하면 일면적이다. 오히려 그렇게 펄펄 살아 움직이는 고흐의 그림을 바탕으로 영화가 그려내고자 하는 건, 광인이거나 기인이거나 천재이거나 등등 '위인'으로 기억된 한 예술가의 진솔한 생애다. 

그 생애의 결을 살려내기 위해 독특하게도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태를 취한다. 유화 애니메이션과 고흐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스릴러의 이 어색한 조합은 오히려 '전시회'가 될 뻔한 영화를 역동적으로 살려낸다. 우체국장인 아버지가 마땅치 않지만 사실은 그 자신이 아직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청년 아르망이, 타의에 의해 그리고 결국은 자의로 죽은 고흐를 살려내는 그 행보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서사를 이루며 영화의 맛을 살려낸다.

영화 <러빙 빈센트> 스틸 이미지

동생 테오를 찾아가 편지를 전하려던 애초의 의도가 테오의 죽음으로 인해 좌절되고, 그의 마지막 정착지였던 오베르로 행보를 옮긴 아르망. 그곳에서 그는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봉착한다. 심신이 미약한 소년을 괴롭히는 동네 부호 청년들과 거침없이 맞짱을 뜨는 청년 아르망은 석연치 않은 고흐의 죽음에 파고들며 오베르에서 고흐 주변인물인 폴 가세 박사와 그의 딸, 여관집 딸 아들린, 뱃사공들을 추적해 들어간다. 

그러나 고흐의 죽음,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미스터리 형식을 취했던 영화의 종착점에서 만나게 되는 건, 목사였던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데 실패한 선교사도, 자신의 귀를 자른 광인도 아닌, 오히려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지만 8년의 시간 동안 약 8000점이라는 숫자로 남겨진 한 예술가의 열정이다. 또한 세상과 불의한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어떻게든 세상과 화합하고 소통하고자 애썼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이 팔린, 가난해서 어쩌면 죽음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불우한 예술가의 생애이다. 죽음을 통해 길어낸 고흐의 삶. 그 어떤 연대기나 위인전보다 그의 작품이 배경이 되어 그려진 이 작품은 인간 고흐, 예술가 고흐를 생생하게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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