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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꿈으로 시작된 운명, 기괴하고도 미치도록 아름답고 설레는[블로그와]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너돌양 | 승인 2017.11.29 14:15

왼쪽 팔에 장애가 있는 중년의 남자 엔드레(게자 모르산이 분)는 모든 것이 권태롭다. 도축장의 재무이사로 일하며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유지하고 살아가는 엔드레에게 어느 날 품질검사원으로 들어온 여자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 분)가 눈에 띈다. 마리어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엔드레는 마리어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마리어의 퉁명스러운 말과 태도다. 마리어도 엔드레가 싫지 않다. 다만,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를 뿐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는 꿈을 매개로 두 남녀의 독특한 러브스토리를 이어나간다.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엔드레와 마리어는 급격히 가까워지지만, 사랑이 권태로운 남자와 사랑이 서툰 여자의 만남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틸 이미지

꿈속에서 사슴이 되어 눈으로 뒤덮인 숲속을 거니는 엔드레와 마리어가 주로 만나는 장소는 그들의 일터인 도살장이다. 영화는 도살장에서 죽은 날만 기다리다가 인간에 의해 도살되는 소의 운명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사슴과 소. 엔드레와 마리어의 꿈속의 사슴들은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고 그들만의 공간에서 평온하게 일상을 영위한다. 하지만 도살장들의 소들은 피를 흘리며 인간을 위한 고기로 죽어간다.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는 남녀의 서툰 로맨스 외에도 영화에서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은 꿈속의 사슴과 현실(도살장)의 소가 처한 운명의 강렬한 대비에 있다. 

같을 꿈을 꾸며 교감을 나누는 남녀의 로맨스를 그리는 영화인데, 왜 구태여 도살장의 소들이 피를 흘러가며 죽어가는 장면을 보여줄까. 몸만 어른이지 정신은 여전히 어린아이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마리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한없이 서툰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마리어는 누가 자신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 때문에 방어적인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틸 이미지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 마리어의 유아적인 세계관을 느슨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꿈이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은 인간의 의식 아래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무의식의 발현이다. 얼마 전, 직장동료로 만나기 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남녀가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 정신분석학적, 아니 운명론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고 기막힌 운명은 없다. 그래서 같은 도살장에서 일하는 것 외에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것 같은 엔드레와 마리어도 같은 꿈을 꾼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흥미를 느낀다.

그러나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는 것만으로 단순한 인연을 넘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껍데기를 내던져야 가능한 희생이다. 같은 꿈을 꾸는 특별한 인연이긴 하지만, 서로를 사랑할 준비가 덜 되어있는 엔드레와 마리어는 관계 개선에 있어서 무수한 애를 먹는다.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벽 때문에 엔드레와 쉽게 가까워지지 못하는 마리어는 스스로를 조금씩 바꿔보기로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탱해온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바꾸지 못하는 현실과 스스로에게 낙담한 마리어는 절망에 빠지고 피를 흘린다. 그런데 마리어가 흘린 체념의 피가 오히려 그녀 스스로를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오게 한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틸 이미지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를 지탱하는 세계관은 죽음이다. 엔드레와 마리어가 매일 만나는 도살장은 많은 소들이 피를 흘러가며 죽어가는 곳이고, 영화는 소들이 흘린 피를 연이어 조명한다. 그리고 마리어 또한 피를 흘리고, 엔드레는 아예 왼쪽 팔을 쓰지 못하는 불구의 남자다. 절망과 체념으로 가득한 현실을 그나마 살게 만드는 힘은 사랑이라는 꿈이다. 그러나 사랑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만으로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상처와 시련, 아픔을 겪어야 비로소 상대를 온전히 보듬어 안아줄 수 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한없이 달콤하고 예쁜 드리밍 러브스토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남녀가 비로소 희망의 한 줄기를 잡은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온전한 해피엔딩이 되지 못한다.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는 엔드레와 마리어는 앞으로도 서로 때문에 상처를 받을 거고 더 많은 피를 흘릴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자신을 내던져서 해볼 가치가 충분한 소중하고 아름다운 감정이라고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 사랑에 서툴거나 권태로운 사람들 모두를 위한 사랑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다. 참으로 기괴하면서도 미치도록 아름답고 설레는 영화다. 11월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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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돌양  knud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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