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희화화 되는 매일 매일이다. 국회 부의장에 5선 의원씩 되는 사람이 갑자기 문재인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부터가 그렇다. 20대 국회 상반기 부의장을 맡고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은 28일 문재인 정부가 각 부처 등에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등을 설치한 것에 대해 “적법절차를 명백하게 위배한 잘못된 행위”라면서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서훈 국정원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내란죄와 국가기밀누설죄 등으로 형사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고 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저 정신 건강의 문제로 폄하하고 말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정치인의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쉽게 평가하지만 세치 혀로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행태를 면밀히 봐야 한다.

심재철 의원 주장의 정치적 핵심은 뒷부분에 있다. 자유한국당에 “법치 파괴적인 문재인 정부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뜻있는 변호사를 모아 당 법률대응 기구를 즉각 출범시켜야 한다”, “불법적인 수사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변창훈 검사와 국정원 정 모 변호사를 위해 국정원과 검찰을 상대로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적폐청산TF의 예산 불법전용을 비롯한 각종 불법행위에 대해 국정조사에 나서야 한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자행되고 있는 불법적인 인권 유린 행태를 UN자유권위원회와 고문방지위원회에 제소해야 한다”고 한 대목이다.

이런 주장은 국회 부의장으로서 할 말이라기 보다는 당 지도부로서 내놓을 수 있는 주장에 더 가깝다. 자유한국당의 가장 가까운 당직 선거 일정은 12월 12일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다. 심재철 의원은 나경원 의원 등과 함께 비박계 후보군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렇게 보면 이 날의 행위는 자신만의 어떤 출사표를 충격요법과 함께 내놓은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적 구분으로 보면 심재철 의원의 주장은 친박계를 만족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않나 한다. 홍준표 지도부가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연상할 수 있는 “불법적인 인권 유린 행태”, “UN자유권위원회와 고문방지위원회” 등의 단어를 꺼내든 게 그렇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국회부의장 (연합뉴스)

그동안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는 홍준표-김무성 연합군의 김성태 의원과 친박계 홍문종 의원의 대결구도가 될 거라는 전망이 다수였다. 그러나 국정원 특수활동비 문제로 최경환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되고 ‘진박 감별 여론조사’에 관여한 혐의로 김재원 의원 역시 수사선상에 오르자 이 시점에서 친박계가 목소리를 키워 봐야 좋을 게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친박 핵심에 가까운 홍문종 의원으로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거다.

가장 먼저 대안으로 거론된 것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이주영 의원이다. 이주영 의원은 ‘범친박’으로 분류되면서 온건 중도적인 성향을 가져 상대적으로 과격한 편인 김성태 의원과 대비를 이룰 수 있는 카드로 여겨지고 있다. 비박계 의원 일부와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유민봉 의원과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의원 등 ‘진박’들이 함께하는 ‘새벽’이란 모임이 이주영 의원 출마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28일 페이스북에 자신의 이름 이야기를 쓴 게 대표적이다. 홍준표 대표의 원래 이름은 ‘홍판표’였는데, 정치권의 정설은 이주영 의원이 판사 시절 개명을 권유해 이름이 ‘홍준표’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홍준표 대표는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서 이주영 의원과 개명은 별 관계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27일에도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거나 “구체제의 잘못을 안고 가는 것은 통합이나 화합이 아니라 그냥 비빔밥이다”와 같은 말을 했는데, 이주영 의원이 친박계의 지지를 업고 원내대표가 되면 과연 서청원 최경환 의원 제명과 같은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반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60여명에 가까운 중도파들의 표심이 절대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홍준표 대표 식의 주장이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을 걸로 보인다. 심재철 의원도 그렇지만 바른정당으로 가려다 자유한국당에 주저앉고 만 나경원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원내대표 선거 초반부터 홍 대표는 겁박과 막말로 줄 세우기에 여념 없다”, “보수의 혁신,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홍 대표의 막말”이라는 등의 발언을 내놓는 걸 보면 그렇다. 과거 비박계로 분류됐던 인사들마저도 ‘선거모드’에선 홍준표 체제 비판과 친박계에 대한 구애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당 밖에서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사이를 더 좁히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28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희망도 변화도 없는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은 고려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은 이 맥락이다. 유승민 대표는 취임 직후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을 상대로 ‘중도보수통합’을 추진해 12월 중순까지 성과를 내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의 입장은 자유한국당보다는 국민의당과의 통합 논의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유승민 대표의 미묘한 입장 변화는 국민의당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27일 국민의당 내 친 안철수계 인사들은 일제히 유승민 대표를 향해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안철수 대표도 “안 될 시도는 안 하는 게 낫다”면서 자유한국당을 포괄하는 통합 논의에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였다.

이들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국민의당 내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신3당합당’으로 귀결될 거라는 주장이 일정 부분 먹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으니 ‘신3당합당’의 가장 중요한 키 플레이어 중 한 사람인 유승민 대표가 논란을 정리해주길 바란 것이고, 유승민 대표는 이에 호응한 것이다.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바른정당 당사에서 열린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유승민 의원,남경필 경기지사가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다시 바른정당 내에서 유승민 대표의 태도 변화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먼저 총대를 멨다. 남경필 지사는 28일 자신의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에 올린 글을 통해 통합에도 순서가 있다면서 “보수를 먼저 통합한 후 중도라는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 그 흐름으로 국민 전체의 통합을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만을 대상으로 하는 통합 논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남경필 지사는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 이후 2차 탈당을 촉발할 수 있는 인사 중 한 명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정책연대협의체 첫 회의를 29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관련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세력은 국민의당이다. 예산안을 부결시키기 보다는 협상을 통해 영향력 확대 시도를 할 가능성이 더 높다. 바른정당은 이에 끌려가거나 아니면 예산안에 한해 행보를 따로 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든 유승민 대표의 정치력은 일부나마 유실된다. 양쪽에서의 원심력은 계속 커져갈 것이다. 명분 없는 정계개편 논의가 그나마도 진척되지 않는 지리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국민이 언제까지 이런 시트콤 같은 정치를 보아야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