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인 블로거 '디제'님은 프로야구 LG트윈스 팬임을 밝혀둡니다.

선발 박명환은 2008년 이래 3년 간 가장 훌륭한 투구를 했습니다. 단 최희섭에게 홈런을 허용한 실투를 던지기 직전까지 말입니다.

2회초의 1실점은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이었고, 이후 박명환은 5회초까지 실점하지 않으며 역투했습니다. 6회초 1사 후 이종범에게 풀카운트 접전 끝에 볼넷을 내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에 앞서 5회말 2사 만루의 기회에서 득점에 실패했고, 6회초 선두 타자 이용규의 2루타성 타구를 최동수의 다이빙 캐치로 아웃시켰으며, 이종범의 좌익선상 타구가 파울 판정으로 번복되는 등 묘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2루타로 출루할 수 있었던 이종범을 파울 판정 이후 범타 처리했다면, 아마도 최희섭에게 타순이 돌아가지 않고 6회초를 무실점으로 종료하며 분위기를 다시 LG쪽으로 가져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종범이 볼넷으로 출루하고 김원섭의 2루 땅볼로 2사 2루가 된 후, 최희섭의 타석에서 2-0의 유리한 볼카운트가 2-3가 되고, 그 와중에 폭투로 2사 3루가 된 것은 분위기가 여러모로 LG에 불길했습니다. 결국 박명환은 2-3에서 몸쪽 직구를 붙인다는 것이 한가운데 높은 실투가 되면서 2점 홈런을 허용했고, 3:0으로 벌어지며 승부가 완전히 갈렸습니다.

2-0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2-3가 되었으니, 박명환으로서는 소위 ‘본전’ 생각이 나지 않았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희섭이 볼넷으로 출루할 경우, 한계 투구수에 육박했으니 나지완을 상대로 자신이 강판되고 김기표가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이닝을 종료시키지 못하고 이닝 중간에 강판되면 설령 6회말에 LG 타선이 역전을 시켜도 승리 투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풀카운트에서 최희섭과 정면 승부한 것이 최악의 결과를 자초했습니다. 박명환은 내내 호투하고도 공 하나에 무너진 것입니다. 최근의 LG 타선의 페이스와 상대 선발 양현종의 구위를 감안하면 최희섭의 홈런은 쐐기포였습니다.

하지만 박명환을 탓하기에는 오늘도 야수들이 부진이 너무나 두드러졌습니다. 우선 2회초 선취 득점을 내주는 과정에서 작은 이병규의 실책이 겹쳤는데, 2사 1루에서 안치홍의 안타를 포구하지 못했고, 뒤로 흘린 다음 송구 동작에서 넘어지면서 1루 주자 김상훈이 홈을 밟았습니다. 기록상으로는 하나의 실책이지만 사실은 두 개의 실책을 홀로 연달아 범한 것입니다. 1루 주자 김상훈의 주력을 감안하면 이병규가 실책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실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주부터 LG의 야수진은 거의 매 경기 클러치 에러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것이 패배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박경수는 두 번의 기회에서 모두 범타로 물러나며 흐름을 끊었습니다. 박경수는 왜 자신이 모처럼 2번 타순에 배치되었는지에 대한 인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1회말 1번 타자 이대형이 안타로 출루한 후, 희생 번트 사인이 나오지 않은 것은, 박경수가 최소한 우측으로 밀어치며 이대형을 2루에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경수는 파울 타구도 좌측으로 보냈고, 결국 3루수 플라이로 물러났는데, 밀어치는 타격이 아닌 잡아당기는 타격으로 일관하다 이대형을 진루도 시키지 못한 채 아웃된 것입니다. 결국 이대형은 정성훈의 타석에서 초구에 도루를 감행하다 아웃되었고, 1회말 기회를 무산시킨 LG는 2회초 곧바로 실책으로 선취점을 내줬습니다.

5회말에는 오늘 경기에서 가장 좋은 2사 만루의 기회가 박경수에게 돌아왔습니다. 기아 선발 양현종이 세 타자 연속 풀카운트 끝에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는데, 박경수는 풀카운트에서 어정쩡한 스윙으로 3루 땅볼로 물러나며 다시 기회를 무산시켰습니다. 만일 박경수가 안타 혹은 밀어내기 볼넷을 얻었다면 양현종이 급격히 무너지며 강판당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5회말 LG가 득점에 실패한 직후 다시 6회초에 실점했는데, 두 번의 기회에서 모두 박경수가 범타로 물러난 후, 흐름이 기아로 넘어가며 실점한 것입니다.

작년까지 박경수는 비록 입단 당시의 엄청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타율은 높지 않지만 진루타와 희생 번트, 선구안만큼은 뛰어나 공격에서 팀 공헌도가 상당한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올 시즌의 박경수는 번트 실패로 인한 병살타가 나오고, 삼진이 늘어나며 볼넷을 얻지 못하며, 진루타조차 제대로 쳐주지 못하는 모습으로 퇴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생각하는 야구’조차 실종된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박경수에게 수비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1군과 2군 어디에도 2루수 요원으로, 부진한 박경수를 능가하는 선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LG의 오늘 완봉패는 시즌 6번째이며 홈에서 5번째 완봉패입니다. 오늘로 LG는 30경기를 치뤘는데, 그 중 1/5이 완봉패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홈에서 완봉패를 연발하는 것은 선수단이 LG팬들에게 야구장을 찾지 말라고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차라리 화끈한 타격을 선보인 작년에 비해 더 재미없고 따분한 경기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에만 완봉패의 의미를 국한시키면, 양현종과 손영민 2명의 투수가 합작 완봉을 이끌며, 남은 2연전에서 기아는 불펜에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경기를 내주더라도 상대 계투진을 많이 끌어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주말 3연전의 첫 경기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일개 팬조차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을 선수들은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패했더라도 곽정철과 유동훈을 끌어냈다면 내일 이후의 전망이 다소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로페즈와 윤석민을 상대로 할 두 경기를 앞두고 상대 계투진까지 온존시켜준 꼴이니 더욱 힘겨워졌습니다.

LG는 최근 8경기에서 1승 7패의 극도의 부진에 빠졌는데, 중위권의 기아, 롯데, 넥센이 연승하고 있는 흐름이라 더욱 뼈아픕니다. 이번 주 네 경기에서 LG는 35이닝 동안 득점에 성공한 이닝이 단 6이닝에 불과하며, 경기 당 평균 득점도 3점에 불과합니다. 현재 에이스 봉중근의 방어율이 3.75이니, 매 경기 봉중근이 나와 완투를 해도 LG는 이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은 타선을 대폭 바꿨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뭔가 특별한 전환점을 만들지 않는 한, LG는 자칫 5월 초순에 시즌을 접을 지도 모르는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그렇다면 5월초 연승을 이어갔지만 5월 중순에 무너지며 결국 7위로 마감한 작년보다 더욱 빨리 시즌을 접게 되는 것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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