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과 겨울, 극장가에서는 무엇보다도 음악영화의 약진이 눈에 띈다. 개봉 13주차를 맞아 이례적으로 전국 20개관으로 확대 개봉을 하며 전국 20만 고지를 눈앞에 둔 <원스>의 성공 신화를 필두로, 현재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어거스트 러쉬>까지 다양한 층위의 음악영화들이 관객들을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영화에서 음악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뮤지컬영화 혹은 음악가의 생을 다룬 전기영화로 대변되던 음악영화의 테두리는 음악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로 확대되었으며, 2005년에는 국내 최초의 음악영화제인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선을 보이기도 했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음악을 만나며, 음악을 통해 영화를 음미한다. 특히 <원스>는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국내에 첫 선을 보였던 영화다.

▲ 영화 <원스>
지난 9월 20일, 10개관에서 개봉한 <원스>는 개봉 2주차에 12개로 상영관을 확대하더니 개봉 4주차에는 17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며 개봉 6주차에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뮤지컬영화라 부르기 망설여질 정도로 뮤지컬영화의 관습과 멀찌감치 거리를 둔 이 아일랜드산 독립영화는 뮤지컬영화의 역사에 새로운 족적을 남기며 <후회하지 않아>의 흥행 기록에 들뜬 국내 독립영화계에도 경종을 울렸다.

존 카니 감독은 15만 달러의 제작비로 <원스>를 완성했다. 음악을 업으로 하는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하여 그 흔한 세트도 없이 거리에서 17일 동안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한 <원스>는 배급사에 100만 달러에 팔려 1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한국에서도 소박하지만 묵직한 독립영화의 힘, 그리고 음악의 힘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평단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적은 수의 스크린에서 좀처럼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던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원스>는 음악의 힘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원스>의 음악은 화려한 무대도, 춤도 없이 오직 기타 하나를 벗 삼아 관객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독립영화의 빈곤함이 빚어낸 이 혁명적 결과는 할리우드의 잔재를 넘어선 낯선 감동을 선사하며, 그 단순한 이야기와 거칠고 투박한 화면 위에는 고민의 흔적이 정교하게 투영되어 있다. <원스>는 영화의 만듦새는 물론이고, 영화를 만듦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준 소중한 영화이기도 하다.

▲ 영화 <어거스트 러쉬>
반면, <어거스트 러쉬>는 <원스>와 여러 면에서 대척에 위치한 영화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워너브라더스가 3천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어거스트 러쉬>는 국내 메이저 투자,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150만 달러를 투자한 상업영화다. 한국보다 1주 앞선 지난 11월 21일 미국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추수감사절 연휴에 2310개의 스크린에서 와이드 릴리즈로 개봉했고, 국내에서도 332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했으니 규모면에서 <원스>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음악의 사용에 있어서도 <어거스트 러쉬>와 <원스>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원스>에서 음악은 인물의 감정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주체라면, <어거스트 러쉬>에서는 인물의 행위를 신비화시키기 위한 소재다. 따라서 같은 기타를 연주해도 관객들이 느끼는 감동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어거스트 러쉬>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로맨스 혹은 신파가 주는 익숙한 감동에 음악을 직접적으로 개입시킬 뿐이다. 핑거 스타일 기타 연주부터 하모니카와 첼로의 선율, 파이프 오르간과 가스펠 송, 웅장한 오케스트라 심포니까지, 음악은 어린 천재 소년의 감동 스토리를 최대한 화려하게 포장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렇듯 기능은 다르지만, 제한된 환경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독립영화는 물론이고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전형적인 감동을 자극하려는 상업영화에서도 음악은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훌륭한 소재이자 매개체다. 비싼 관람료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이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요즘, 7000~8000원으로 좋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 영화전문포털 '조이씨네' 서정환 편집장
<포미니츠> <카핑 베토벤> <라비앙 로즈> <헤어스프레이> <칼라스포에버> 등 많은 음악영화들이 올 가을과 겨울을 맞아 관객들과 만났고, 만날 예정이다. 아직까지 관객들에게 정통 뮤지컬영화 혹은 음악가의 생을 다룬 전기영화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원스>와 <어거스트 러쉬>의 흥행 성공으로 인해 더욱 많은 음악영화들이 극장가를 두드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음악의 힘이다. 영화의 전부여도 좋고, 혹은 관객을 자극하기 위한 촉매로 사용돼도 상관없다. 음악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음악은 관객의 정서를 자극할 테고, 그 기분 좋은 자극은 은은하게 영화에 스며들어 극에 의미를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의 힘이 스크린에 제대로 구현되는, 그런 음악영화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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