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와 곽윤기, 벤쿠버의 영웅들이 나락으로 쳐 박힌 한 주였다. 아니, 쳐 박힌 정도가 아니라 현재로선 아예 꺼졌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지난 주 내내 네티즌들은 '짬짜미'([명사]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라는 평소 잘 안 쓰던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검색하느라 바빴다.(짬짜미는 5월 5일 일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쇼트트랙 파문의 당사자 이정수와 곽윤기가 자격정지 3년의 중징계를 받아 선수생명이 끝날 위기에 놓였다.

스포츠는 모든 문화 형태 중에서도 가장 단순하고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스포츠를 읽는 일은 때때로 결코 단순하지 않을 수 있다. 종종 스포츠는 한 사회를 옭아매어 작동시키고 있는 복잡한 원리를 생생하게 노출하기도 한다. 쇼트트랙의 짬짜미 논란처럼 사회의 모순이라도 해도 좋을 것들이 압축되어 극적으로 노출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이전부터 쇼트트랙에서는 악취가 진동해 왔다.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따기보다 국내 선발전 통과가 어렵다는 선수들의 푸념은 실력으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경기 외적인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강한 암시이기도 했다.

수차례 있었던 선수폭행은 이미 오래 전부터 누적되어온, 익히 알려진 것이고, 서로 패거리를 만들어 상대 패거리에게는 온갖 해코지를 한다는 것 역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 때 쇼트트랙을 학원 스포츠에서 영구 퇴출시켜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있었을 정도이니 그 심각성을 알 만하다.

2006년 이후 지난 4년간 쇼트트랙은 실로 절망스런 작태를 그야말로 ‘시리즈’로 보여줬다. 청소년이었던 선수들을 코치가 손바닥과 주먹 뿐 아니라 스케이트 날집, 축구화, 하키 스틱 등 사실상의 흉기까지 사용해 구타했던 적이 있었다.

또 언젠가는 선수들의 선수촌 입촌 거부도 있었다. 코치를 자기가 고르겠다는 선수들과 학부모들의 시위였다. 벤쿠버 이전의 토리노올림픽 직전에는 “중국 애들에게는 져도‘ 되지만 상대 패거리 선수가 뒤에서 치고 나오면 처박고 넘어져도 좋다”는 코치의 지시가 폭로되어 엄청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때에도 그들은 파벌 간 '따로 훈련’을 감행했었다.

곽윤기-이정수 선수의 자격정지 3년 중징계로 결론 난 이번 '짬짜미' 파문 역시 이러한 절망스런 시리즈의 완결판일 뿐이다. 이번 파문에는 지난 몇 년간 쇼트트랙이 노출해왔던 문제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압축되어 있다. 선수 간의 파벌, 파벌로 인한 대표 선발의 잡음, 선발 과정에서의 부적절한 결탁, 코치의 개입 등 스포츠 정신이라고 밥풀데기 만큼도 찾기 어려울 만큼 쇼트트랙은 총체적으로 썩었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이 들끓는 것은 쇼트트랙이 총체적으로 썩었다는 새삼스런 사실 때문이 아니다. 이 새삼스런 사실을 잠재우기 위해 택한 진부한 방법 때문이다. 애초 대한체육회-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구성한 공동조사위원회가 권고했던 징계는 해당 선수에 대한 ‘자격 정지 1년 이상’, 쇼트트랙 부문 최고 책임자인 유태욱 부회장을 비롯한 빙상 연맹 집행부의 자진 사퇴 등이었다.

그런데 빙상연맹 상벌위는 선수들에 대한 징계 부분을 '자격 정지 3년'으로 상향시켰다. 사실상 선수 생명을 끊은 것이다. 이러한 조치가 상식적이고 합당한 것인지 네티즌들은 묻고 있는 것이다. 수년간 갖은 불상사들이 있어 왔지만 빙상연맹은 그 동안 미봉책으로 일관해왔었다. 파벌간의 싸움과 그 폐해를 알면서도 다분히 고의적으로 방치해왔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오직 금메달이기 때문이었다.

쇼트트랙 파문은 빙상연맹이 선수와 성적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통솔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감시와 조정의 역할을 방기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단순히 이정수-곽윤기 선수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대표팀 내부, 연맹에 이르기까지 구조적인 문제이고, 많은 공범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파벌끼리 치고 박더라도 성적만 내면 된다는 연맹의 왜곡된 사고방식과 시끄럽더라도 결국 금메달만 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쇼트트랙 대표팀 스태프들의 기회주의적 처신이 이번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앞으로 이정수, 곽윤기 선수가 다시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빙상연맹의 결정대로라면 2013년 대표선발전에도 나설 수 없어 2014년 소치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 조차 박탈당하게 된다. 사실상 은퇴이다. 특히나, 이정수 선수의 경우 내부 고발자가 되어 '괘씸죄' 성격의 가중처벌을 받은 셈이다.

현재, 이정수 선수의 팬카페 회원들을 중심으로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부, 국회에 구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빙상연맹은 앞으로 도마뱀을 상징으로 쓰면 좋겠다. 선수들의 생명을 끊음으로서 연맹의 안위를 도모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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