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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에드워드 양의 전설의 걸작, 26년 만에 극장에서 만나다[블로그와]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너돌양 | 승인 2017.11.24 15:17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59년 대만(타이완)에서 실제 일어난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분명한 영화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만큼, 이야기의 결말이 분명하다는 소리다. 또, 국내에 정식 개봉은 하지 않았지만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언급 되었던 작품인지라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어떤 영화인지 대강 알고는 있었다. 무엇보다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라는 제목 자체가 엄청난 스포일러 이다. 아주 엄청난 반전이 있지 않고서는 절대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는 제목. 그래서 보기가 참으로 망설여진다.

앞서 말했지만 고 에드워드 양(양덕창)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샤오쓰(장첸 분)의 부모님은 1949년 국민당 대만 이주 당시 고향을 등지고 대만으로 건너온 (중국)대륙인이다.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1세대들은 자식들이 아무 탈 없이 성실히 자라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대만을 둘러싼 정세를 포함 모든 것이 불안한 2세대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분노와 억압을 소년 갱 활동 같은 범죄로 풀고자 한다.

그 시절 대만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던 대부분 사람들이 샤오쓰처럼 심각할 정도로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어디까지나 영화다. 중학생 소년이 거리에서 또래 여학생을 찔러 죽인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에 보여 지는 샤오쓰의 캐릭터와 주변 인물들은 모두 에드워드 양 감독의 머릿속에서 빚어낸 허구다. 1947년 생으로, 영화 속 샤오쓰와 비슷한 시기에 유소년기를 보냈던 소년 양감독 눈에 비춰진 60년대 초 대만은 어떤 모습 이었을까.

영화 후반부 역모에 몰려 고초를 치루는 부모님 이야기를 제외하곤, 철저히 13살 샤오쓰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바라본다. 아직 어린 소년티를 덜 벗은 샤오쓰에게 세상은 학교, 친구, 여자(밍)가 전부다. 우등생인 누나들과 달리 국어에서 낙제해 중학교 주간부 입시에 실패하고 야간부에 들어간 샤오쓰는 집안의 골칫덩어리다. 몇 안 되는 인맥을 동원해 샤오쓰를 주간부로 옮기고자 하는 부모님은 행여나 샤오쓰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차, 아니나 다를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순진한 모범생일 줄 알았던 샤오쓰도 어디로 튈 지 종잡을 수 없는 문제아(?)로 거듭나게 된다.

학교 내 유명한 소년 갱단인 ‘소공원파’와 어울려 다녔지만 갱스터는 아니었던 샤오쓰가 살인자가 되기까지 굉장히 많은 사건과 복선들이 깔려있다. 샤오쓰를 둘러싼 사건들은 대개 필연이 아닌 우연으로 엮인다. 우연히 학교 보건소에서 밍(양정의 분)에게 반한 샤오쓰는 그 후부터 줄곧 그 소녀를 잊지 못하고 밍의 전 남자친구이자 소공원파를 이끌던 허니도 오래전부터 그에게 앙심을 품은 라이벌 217파 보스에 의해 우발적으로 목숨을 잃는다. 사소한 우연에서 시작된 만남은 자신들의 들끓는 마음을 감당할 수 없었던 소년들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다.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은 비단 소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산당 집권을 피해 조그마한 섬으로 탈출한 대만인들은 늘상 갇혀있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대만인들은 중국 공산당과 대척점에 놓여있던 미국의 손을 잡았고, 자신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일본의 문화에 의지한다. 중국인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미국, 일본에 기대어 불안한 일상을 살고 있는 대만인들의 삶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1985년 작 <타이페이 스토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바 있다. 공산당을 피해 대만으로 건너온 국민당은 1당 독재와 대만인들의 사상과 자유를 통제하는 것으로 국가의 역사를 시작했고 불안한 정세 속에서 어린 청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에 열광하거나 소년 갱단에 합류하거나 아니면 어른들이 만든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던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너무나도 좁았다.

대만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소 난해한 영화다. 1960년대 전후 대만을 둘러싼 정치적, 문화적 메타포로 가득한 이 영화를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1980년대 중반 한국 사람이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하지만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다. 설령 샤오쓰처럼 질풍노도의 유년시절을 보내지 않았다고 한들, 어른들에게는 다소 터무니없는 중2병 환자들로 보이는 소년들의 행동도 영화 안에서는 스스럼없이 스쳐 지나가게 만든다. 이것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가진 영화적 힘이다.

필자는 아직도 소년들이 저지른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장면 하나하나를 생각하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영화에 대한 열정의 에너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기분이다. 그래서 부디 많은 사람들이 26년 만에 한국에 정식 개봉하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고 원래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원류적 힘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장첸의 풋풋한 소년시절을 보는 재미도 즐겁다. 다소 힘들게 느껴지는 237분의 러닝타임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전설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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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돌양  knud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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