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 심각하기만 한 신데렐라 언니지만 적어도 12화 어떤 장면에서는 모두들 실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효선에게 갑자기 태도가 바뀐 송강숙이 아주 살갑게 구는 장면인데, 그 이유는 은조가 강숙에게 효선이 뜯어먹을 것이 아주 많으니 잘 구슬러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근거는 있지만 그 근거가 너무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하고 빈약하다. 송강숙은 뜯어먹을 것을 찾아 숱한 남자를 전전한 한마디로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다.

그런 송강숙이 은조의 말 몇 마디에 그만 혹해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은 그동안 은조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로 질긴 잡초 역할을 해온 송강숙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물론 송강숙이 대단히 똑똑한 여자는 아니다. 똑똑했다면 절대로 많은 남자들을 만났다 도망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구대성을 찾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지금까지 두 번 정도 보여준 은조의 협박에 넘어가는 강숙의 모습으로 그리는 편이 차라리 개연성을 담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유산에 대해서 알아보기까지 한 강숙이 밑도 끝도 없이 뜯어먹을 것 많다는 은조의 말만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보여준 밀도 짙은 작가의 모습이 아니다. 아직 쪽대본이 아주 심할 시기는 아니라고 보여 지는데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무리수를 썼는지 의아한 일이다.

게다가 은조는 이미 강숙에게 여러번 돈을 달라고 떼를 썼고, 강숙을 속이는 과정에서 도가 재산이 문중 어른들에게 분배됐다는 사실 역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갑자기 뜯어먹을 것 많은 효선으로 둔갑시킨다고 순순히 속고말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땅을 효선의 동의 없이는 못판다고는 했지만 누구보다 재산에 대한 집착이 강한 강숙이 그런 은조의 말만 믿고 아무런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강숙의 자연스러운 태도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설혹 은조에게 속았다고 하더라도 콧소리 내가면서 달려오게 한 것은 작가의 실수에 감독마저도 자기 위치를 지키지 못한 지금까지 중에 가장 실망스러운 연출이었다. 변해도 어지간하게 변해야 효선도 속을 수 있고 시청자 역시 납득할 수 있을 텐데 강숙의 오버로 인해서 은조의 거짓말이 더 가벼워지고 우스워졌다. 차라리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은조가 더 강한 협박으로 강숙의 태도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가 좀 지쳤는지 12화는 그동안 보여 왔던 신데렐라 언니의 전개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효선의 변화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것을 강숙의 변화처럼 대사로 밝혀주진 않았지만 11화 초반에 보여준 더 이상 어리광이나 부리는 공주가 아닌 효선의 의미심장한 태도 후의 변화라는 점에서 복선이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낚시가 아니라면 효선은 무엇인가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니 그럴 것이란 기대라도 할 수 있다.

물론 부전여전이라고 사랑받지 못해도 내가 사랑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은조와 강숙을 대하고 나와서는 가슴을 치는 반복적인 모습에서 효선이 정말로 괜찮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중에 그것이 효선의 불치병으로 발전하지는 않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그것이 효선의 지병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자극해 통증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효선이 참아야 할 무엇을 감지하게 된다.

현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은 강숙이 뒤늦게 재산에 대해서 상세히 알아보고 다시 태도를 정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껏 신데렐라 언니에서 가장 분명한 악의 축을 지탱한 강숙의 이미지 붕괴는 전체 흐름을 깨뜨릴 수밖에 없다. 또한 기훈과 기훈 아버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수출과 관련해서 기훈의 비밀을 밝히겠다는 아버지나 그럴 바에는 먼저 밝혀버리고 말겠다는 기훈이나 막장 대결을 벌이고 있다.

맥주도 소주도 아닌 막걸리로 큰 기업을 일으켰다면 그에 따르는 고단수의 논리가 있었을 것이다. 비록 아들 농사 잘못 지은 탓에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함정을 파는 일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유치하기까지 하다. 신데렐라 언니 12화는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운 전개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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