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임명됐다.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이 없는 상태에서 임명이 강행된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당과 보수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홍종학 장관의 문제로 지적됐던 사안이 최소한 위법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특히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반발 자체가 직접적인 정국 경색의 장기화를 만들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늘 그렇듯 가랑비에도 옷이 실제 젖는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홍종학 장관 임명 직후 문재인 정권이 협치를 포기했다며 예산안 처리와 이 문제를 연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인사, 계류 중인 법안, 예산을 모두 거론하며 “청와대의 오만과 독선에 강력하게 맞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부인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 문제와도 연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국회가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두 번 연속 낙마시키는 것은 부담이 지나치게 큰 행위다. 그래서 당장 여야 대치의 최전선은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전선도 장기간 유지될 수는 없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예산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다음달 2일이면 본회의에 자동부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 장소인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예산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고 해서 무조건 통과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 대목에선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마련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 여당은 국민의당이 동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예산부수법안 지정과 그 외 민감한 쟁점 사항이 포함된 법안 처리, 지역구 관련 예산 증액 등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관련 논의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클 것으로 판단되는 재료 중 하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관련 문제다. 현재 국회 내에서 형성된 최대 쟁점은 공수처장 선출 방식이다. 국회 법사위의 여당 의원들은 야당이 공수처장 후보 두 명을 추천하면 국회에서 표결하는 방식으로 양보할 의사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여당의 이런 제안도 외면하며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법사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진태 의원은 21일 “적폐청산만 좋아하는 현 정권에 또 다른 칼을 쥐어줄 수 없다”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부터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정우택 원내대표 역시 “공수처 설치는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에서 옥상옥이 될 수 있고, 우리나라 정치 행태상 또 하나의 정치보복 및 정치적 악용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검찰을 충견에, 공수처를 맹견에 비유하며 “충견도 모자라서 맹견까지 풀려고 하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자유한국당 내에도 공수처장 선출과 관련한 권한이 보장되면 공수처 설치에 원론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존재한다고 한다. 문제는 공수처장 선출권을 야당에 준다는 여당의 제안은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국민의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야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두 명 추천하게 될 경우 의석 수 기준으로 볼 때 한 명은 자유한국당, 한 명은 국민의당이 선호하는 인사가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면 국회 표결은 자연스럽게 국민의당이 추천한 후보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국민의당은 여당의 제안에 사실상 동의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보면 이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상황을 이렇게 종합하면 정부 여당이 야3당 전선에서 국민의당을 ‘분리 견인’하는 전략이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문제는 이보다 높은 수준의 정치 환경이 이러한 전략 추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둘러싼 국민의당의 내홍이다.

국민의당은 21일 의원총회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끝장토론’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후 행보에 대한 양측의 명확한 합의안은 도출하지 못했고 당이 쪼개지는 것만은 막자는 내용의 ‘대외용’ 결론을 발표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언론을 통해 파악된 여론 분포는 통합 찬성, 반대,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부터 시작하자는 중립이 사실상 동수이다. 그러나 여전히 안철수 대표 측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할테니 반대하는 사람은 나갈테면 나가라는 식이다. 통합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평화개혁연대’를 만든다며 반대파 조직을 계속할 기세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민의당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 박지원 의원을 지나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이 이날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서 바른정당도 흔들리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유승민 대표가 2차 탈당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중도보수통합’을 제시한 바 있지만 자유한국당과의 통합 논의가 유승민 체제를 배경으로 실제 진행될 것으로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당과의 통합 논의도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복당하는 길을 택한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21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을 논의하는 행사에서 바른정당 2차 탈당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모셔올 분은 모셔 와야 한다”고 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유승민 대표의 중도보수통합이 사실상 좌초하면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전당대회를 주장한 바 있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은 탈당 명분을 쌓기에 좋은 상황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홍준표 대표는 “문을 닫았다”고 했으나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바른정당 2차 탈당이 가시화될 경우 조건 없는 복당은 받아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을 반대편에서 흔드는 정도가 강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중도의 영역이 문재인 정권과 각을 세우는데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는 자유한국당 쪽으로 쏠려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철수 대표는 현역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어쨌든 국민의당의 정치적 오너 지위를 상실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의 행보는 2022년 대선에서 ‘보수 후보’로 나서겠다는 취지로들 본다. 그렇다면 캐스팅보트 행사의 결말이 문재인 정권에 들러리를 서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염려를 갖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야3당 공동전선의 형성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 정치공학을 놓고 말하자면 국민의당을 쪼개서 일부를 흡수하는 것이 답이겠지만 권력을 가진 쪽에서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결국 남는 답은 국민 여론을 바탕으로 개혁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국민의 체감할 수 있는 개혁적 조치들이 이어져야 한다. 개혁의 과제를 눈 앞에 놓고 좌고우면하거나 ‘자리’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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