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당내 호남 중진 의원들의 반발에도 바른정당 통합의 칼을 빼들었다. 안 대표는 합리적 진보, 개혁적 보수가 중심이 되는 합리적 개혁세력 연대·통합의 '빅텐트'를 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안 대표의 이러한 주장은 지난 겨울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어떤 정치인이 했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바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다.

17일 국회에서 안철수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당은 기득권 양당구조를 혁파하기 위해 만든 당"이라면서 "민주당과도 자유한국당과도 손잡을 수 없다"고 밝혔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가능성에 대해 안 대표는 "정책적인 공조를 하고, 그게 마무리되면 선거연대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그 다음 통합 가능성까지 얘기해볼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안철수 대표는 덕성여대에서 진행한 '한국정치와 다당제' 특강에서 '제3지대 빅텐트론'을 들고 나왔다. 안 대표는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대결 프레임으로 기득권 양당체제로의 회귀 양상과 조짐이 보이고 있다"면서 "기득권 양당세력이 양당구도 회귀를 획책하는 한 정치개혁은 없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대표는 정치개혁과 다당제의 제도적 정착을 위해 ▲문제해결 중심의 중도정치 세력 출현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정치패러다임 변화 ▲양당구도 회귀 저지를 위한 연대와 통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3세력이 3, 4당으로 분리돼 있어서는 양당구도 회귀를 저지하기에 역부족"이라면서 "연대와 통합으로 합리적 개혁세력의 빅텐트를 치자"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오른쪽)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연합뉴스)

안철수 대표의 이러한 주장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종인 전 대표다. 김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3지대 빅텐트론을 주장하며 '반문연대' 구성을 주장한 바 있다. 김 전 대표는 현재 정치권에서 은퇴한 상태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지난 2일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라는 제목의 만화책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행사에 현역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는 후문이다. 출판기념회에서 기자들의 정계 복귀 질문에 김종인 전 대표는 "다시는 절대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면서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역할이 없다. 역할이 끝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직접 김종인 전 대표의 출판기념회에 참여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일각에서는 안 대표와 김 전 대표 사이의 어떠한 교감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정황상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을 모색하면서 메신저로 김 전 대표를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있다.

다만 안철수 대표의 '빅텐트론'이 국민의당 호남 중진 의원들과 바른정당 중재파를 설득해낼지는 미지수다. 당장 16일 국민의당 호남계 좌장 박지원 의원은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론에 대해 "명분상으로도 정치적 실리 면에서도 '저능아'들이 하는 것"이라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이렇게 짓밟고 간다고 하면 우리도 나갈 데가 있다"고 경고했다.

바른정당 사정도 녹록치 않다. 바른정당 탈당 사태 당시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전당대회를 주장했던 김세연, 정병국, 하태경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소위 '중재파'들은 명분 부족으로 자유한국당 복당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국민의당과 통합이 현실로 다가오면 이를 명분으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할 가능성이 높다. 즉 빅텐트는커녕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과 바른정당 중재파 의원들의 이탈을 불러올 개연성이 많다. 결국 실리 면에서 봤을 때도 스스로 제3지대의 영역을 좁히는 정치적 자살행위란 얘기다.

명분도 부족하다. 제3지대 통합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위적인 통합논의는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에는 이념, 정책, 지역, 세대 등에서 중심 축이 될 만한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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