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로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정상적인 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갔을지 모르지만, 그와 동시에 휴식이나 재충전, 혹은 재조정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잘나가는 이들은 그들대로, 분발이 필요한 이들은 또 나름의 부족한 점들을 되돌아보고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한달의 공백기였죠. 여전히 파업 때문에 결방을 이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MBC를 제외한 두 방송사의 예능이 지난 주말부터 다시 시작되었고, 일제히 인터넷과 각종 보도 자료를 통해 각각의 프로그램과 관련된 언론 홍보기사들이 선전포고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또 다시 주말 저녁의 치열한 전쟁이 시작된 것이죠.

그런데 이 중요한, 그들에게는 더 더욱이나 절실했을 중간 점검 시간동안에도 여전히 헛발질을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패떴 시즌2의 이야기이죠. 남자의 자격은 이미 멀찌감치 달아나면서 1박2일과 함께 KBS의 복덩이가 되어 버렸고, 단비 역시 아쉬운 시청률이기는 하지만 나름의 꾸준한 전략을 가지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패떴2는 도대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을 보아도 한숨밖엔 나오질 않아요.

이번 주 방송 내용은 합동 운동회 형식의, 실상은 홈 커밍 데이를 빙자한 게스트 대거 초대하기였습니다. 서로의 절친이라며 한 사람씩의 스타들을 불러 모았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짝만 바꾸어 부른 각각의 그룹 친구들, 혹은 같은 소속사 동료들이 대부분이었죠. 어떻게든 잘나가는 아이돌의 고정 팬층만이라도 확보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아무나 좀 터져달라는 심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가뜩이나 정리가 안 되는 이들의 집단 버라이어티는 산만하기만 했습니다. 왜 이들이 등장했는지, 도통 뭘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중구난방의 왁자지껄함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모양입니다. 기존의 7명 외에 제8의 멤버로 이날 초대된 슈퍼주니어의 희철이 가세하기로 되었다죠? 오랜만에 한국에서 활동을 재개할 원더걸스도 특별 게스트로 패떴2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하구요. 뭐 좋습니다. 희철의 예능감은 최근 청춘불패에서 증명했던 것처럼 특출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원더걸스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환영할 만한 일이죠. 각각의 재능만 본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보강 멤버이고 최고의 게스트들입니다. 문제는 패떴2에는 새로운 멤버가 딱히 할 만한 일도, 게스트를 챙겨줄 수 있는 역량의 MC도 전혀 없다는 것이죠.

희철이 가세하면 어떻게 될까요? 제작진은 올드보이 대 영보이, 아이돌과 장년층의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확실히 불완전한 홀수인 7보다야 8이 팀을 나누기도 수월하고 균형감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가뜩이나 각자의 활약이 매번 불균등하고 분량이 제각각인 균형상실의 패떴에서 한 명이나 더 늘어난 8명을 통제할 만한 사람은 어디에 있는거죠? 설마 그 역할을 희철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JYP의 지원사격인 것이 뻔한 원더걸스 5명은 또 누가 다 챙겨준답니까? 설마 이번에도 윤상현이 뻘쭘하게 네버엔딩스토리를 부르며 미국에서도 태봉이를 아냐고 외치는 게 다인 것은 아니겠죠?

정작 중요한,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도, 보강하지도 못하고 쓸데없는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패떴2의 멤버들은 각자 괜찮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어딜 가도 환영받는, 활용도가 높은 패널이자 게스트들이고 화제를 몰고 다니는 괜찮은 예능인, 아이돌입니다. 문제는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시켜주고 각자의 개성을 폭발시켜줄 수 있는 지휘자, 확고한 1인자가 없다는 것이죠. 아무리 예능감 좋은 멤버를 투입시키고 화제의 게스트를 불러봐야 이 치명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어요. 시작 전부터도 수많은 이들이 지적했고, 결국 실망해서 시청을 포기한 이유가 무엇인지 제작진들은 여전히 모르고 있나봅니다. 아마 이전 패떴 시즌1과 제일 닮은 점이 있다면 여론 수렴에 어둡다는 것이겠군요.

이러니 폐지니, 조기 종영이니, 유재석의 복귀니 하는 루머와 추측들이 난무할 수밖에요.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게스트들보다도 우왕좌왕하는 멤버들도 문제지만, 이들이 의지할 수 있고 편안하게 자신의 끼를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제작진에게 그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떴의 제작진들이 생각하는 재미란 어설픈 개인기 대결, 어줍지 않은 러브라인 만들기, 그도 아니면 출연자들에게 의미 없는 고생시키기만 하면 끝나는 것인가 봐요. 이미 추락할 곳도 남아있지 않지만, 이젠 그냥 출연자들이 불쌍하기만 합니다. 그간 쌓아놓은 명성들, 유망한 재능들을 왜 이런 프로그램에서 썩히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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