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사람들이 3명 전부 구속될 위기다. 검찰은 14일 남재준,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 대해 뇌물공여와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15일 새벽 이미 긴급체포 돼 있던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의 혐의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박근혜 정권 청와대에 상납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검찰은 이외에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및 정치관여 금지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특히 검찰이 이병기 전 실장을 긴급체포 한 대목이 심상찮다. 언론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고 있다. 첫째는 이병기 전 실장이 국정원장을 맡았던 시절에 월 5천만원이던 상납 액수가 1억원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보고 있다. 이병기 전 실장은 국정원장을 지내다 바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갔으므로 이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는 이병기 전 실장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심리적 동요를 심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검찰로서는 얼마 전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관련 의혹 수사 과정에서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병기 전 실장이 혹시라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결과가 긴급체포라는 이야기다.

이병기 전 실장이 검찰에 소환되면서 다른 두 명의 전직 국정원장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취한 것은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된다. 남재준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검찰 조사에 출석하면서 나라 걱정, 국정원 걱정을 하며 검찰 수사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이병기 전 실장은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를 상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신분으로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병기 전 실장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당시 ‘불통’과 온갖 공작적 정치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상황이었다. 이병기 전 실장은 기왕 김기춘 전 실장이 물러난 김에 청와대의 이러한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한 걸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병기 전 실장의 ‘노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 직전 장관과 차를 마시는 모습을 연출하는 성과를 내는 정도에 그쳤다. 오히려 이병기 전 실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같은 문제와 관련해서는 김기춘 전 실장 못지않은 태도로 임했다. 언론은 당시 이병기 전 실장이 한 일에 대해 “김기춘 뺨 친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이병기 전 실장은 ‘청와대 왕따론’에 시달리는 등 업무 현안에서 배제됐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일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당시 이병기 전 실장은 당시 여당 관계자에게 청와대 비서실장인 자신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가 어렵다며 ‘무기력’을 호소한 바 있다고 한다. 국정원 조사에 임하는 이병기 전 실장의 태도는 당시의 이런 상황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느끼게 한다.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상식적 태도를 취한 이병기 전 실장 정도의 정치적 감수성도 용인할 수 없는 성격의 권력이었던 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출생 100주년 관련 행사의 모습을 보면 박근혜 정권이 이런 성격을 갖게 된 근원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14일 경북 구미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선 ‘탄생 100돌 숭모제’가 열렸는데, 아침 시간에 진행된 행사임에도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운집했다고 한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반인반신’으로 지칭했고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사실상의 박정희 우상화 사업을 밀어 붙이고 있는 남유진 구미시장이 여느 때처럼 ‘찬양’으로 일관하는 내용의 기념사를 했다. 종교 행사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청중들은 연설 내용을 귀 기울여 듣다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 화해를 이뤄내야 한다”는 대목에선 야유를 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따로 모여 “문재인 타도, 박근혜 석방”을 외치기도 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논쟁을 하자는 걸 말릴 생각은 없다. 중요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평가가 ‘숭모제’ 등의 전근대적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에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반인반신’이란 표현이나 ‘숭모제’라는 행사의 형태에서 알 수 있듯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지 못하는 것은 권력과 통치에 대한 전근대적 인식의 발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근대성은 한국 보수정치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의 하나였다. 박근혜 정권은 이를 중요한 정치적 기반으로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1917년 11월 14일생)을 기념하는 숭모제가 14일 오전 구미 박정희 생가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보수정치를 이루는 또 하나의 축은 이른바 ‘중도실용’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자신들을 ‘합리적 보수’라거나 ‘중도층’으로 지칭하며 주로 수도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앞서의 이념적 우파가 전근대적 인식을 통해 대의민주주의의 체제적 내면화를 거부하였다면 이들은 정치적 냉소주의를 내면화해 이념과 제도를 우회했다.

‘실용’이란 ‘쓸모가 있는 것’에 판단의 기준을 두겠다는 것인데, 다시 말하자면 정치와 권력에 ‘쓸데가 없는 것’이 있다는 얘기다. 이념과 제도의 이상은 쓸데가 없고 오로지 실질적 이해관계만이 진리라는 게 이들 세계관의 근본이다. 이러한 세계관이 집약돼 권력의 형태로 나타난 게 이명박 정권이다. 검찰이 ‘극단적 선택’을 걱정하게 만든 이병기 전 실장의 태도는 그가 이념적 우파와 중도실용의 중간 어디쯤에 정체성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념적 우파와 중도실용의 동맹은 오랫동안 보수정권의 통치를 지탱해왔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입장차로 분열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이 주장하는 보수의 대통합은 이 동맹을 다시 복구하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 유승민 대표의 바른정당이 버티는 것은 이 모델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유승민 대표는 ‘중도보수대통합’을 말하면서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개별 정치인들의 선택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떠나 한국 정치 전체를 위한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보수정치가 자유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이상을 인식의 근본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공론 조성에 이바지해야 할 보수언론이 이 사태를 두고 취하는 태도를 보면 더 그렇다.

조선일보는 15일 <국정원장 3명 안보실장 2명 전원 구속 추진, 지금 혁명 중인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 정도 혐의를 갖고 국정원장들과 안보실장들을 싹쓸이하듯이 감옥에 넣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라면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구속은 북한과 중국을 이롭게 하는 일인 듯 표현했다. 이런 논조는 이 날 동아일보 사설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드러난다. 잘못을 바로잡아 법치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보다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의 문제가 더 중하다고 본 것이다. 이념적 우파와 중도실용이 만나는 대목이 바로 이런 식의 현실 인식이다. 갈 길은 아직도 멀고 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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