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한국 축구는 건국대와 고려대 출신인 두 대학생 선수의 활약에 주목했습니다. 이후 10년 넘게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우뚝 선 황선홍과 홍명보가 그들이었습니다. 또 1994년 미국월드컵에는 경희대 3학년생이었던 이운재가 당대 최고의 골키퍼였던 최인영의 부진으로 교체 투입돼 독일 전 무실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이어 2002년에는 차두리가 고려대 재학 시절, 월드컵 무대에 데뷔해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강력한 공격력으로 '조커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 축구에 대학생 선수들의 존재는 한동안 대단했습니다. 한국 축구의 다양성을 높인 것은 물론 경쟁력 면에서도 대학생 선수들은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한국 축구에서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지난 1991년에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경험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의 대학 축구였습니다.

그랬던 대학 축구가 많은 유망주들의 조기 프로 진출, 해외 유학 등으로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가더니 결국 월드컵 두 대회 연속 국가대표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아쉬움을 맛봐야 했습니다. 물론 얼마 전까지 김보경이 홍익대학교 선수로 활약해 '유일한 대학 국가대표 선수'로 남을 수 있었지만 김보경 역시 일본 J2리그 오이타로 이적하면서 결국 대학을 소속팀으로 둔 국가대표 선수는 지난 독일월드컵에 이어 또 한 번 나오지 않게 됐습니다. U리그 확대 운영 등 체질 개선을 위한 내부적인 노력이 있기는 하지만 더 나은 미래, 그리고 실력에 걸맞는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서 대학 축구는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갔습니다.

대학 축구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은 23세 이하 대표 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박성화 감독이 이끌던 베이징올림픽 본선에 출전했던 선수 가운데 대학생 선수는 18명 가운데 경희대에 재학중이었던 김근환이 유일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끈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7명이었던 대학생 선수는 김호곤 감독이 이끈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전원 프로 선수들로 구성되며 급격한 변화를 이뤘습니다. 일찍이 프로에 진출한 기량 좋은 선수들이 늘면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그런 변화에 맞게 대학 축구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 씁쓸하기만 합니다.

한일월드컵 이후 유망한 선수들을 일찍이 해외로 유학보내거나 프로팀이 운영하는 유소년 팀 창단이 많아지면서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곧바로 프로 무대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은 대학 축구에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동년배의 선수가 같은 기량을 갖고 있음에도 프로에 뛰어 많은 연봉을 받고, 나은 환경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 대학 선수들에게는 자극이 돼 조기에 프로에 진출하려는 사례도 늘어났습니다. 그 때문에 대학과 선수 간의 소모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결국 '개인의 선택'이 앞서 선수가 팀을 떠나면서 대학 축구는 우수한 선수들을 모두 프로나 해외 팀에 뺏기는 신세로 전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실력만 잘 쌓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대학팀에 가지 않으려는 선수들도 늘고 있고, 결과적으로 대학 축구의 경쟁력만 위축시킨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10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대학의 내부적인 환경도 한 몫 했습니다. 대학 축구 대회 내에 만연했던 승부 조작, 심판 매수 같은 문제들이 그들 스스로 발목을 잡았고, 일부 팀에서 대학 진학과 관련한 비리, 선수단 내 폭행 등의 문제가 1-2년 전까지 큰 문제로 자리하는 등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돌이켜보려는 노력이 진정으로 비춰지지 않다보니 대학 축구를 외면하는 시선은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야말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대학 축구. 그런 가운데서 최근 주목할 만 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사람은 바로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입니다. U-20 월드컵을 통해 대학생 선수들의 가치를 높이 산 바 있는 홍 감독은 23세 이하 대표 팀 감독의 주축 선수들을 대학생 선수로 만들기 위해 유망한 1-2학년 대학 선수를 보려 대회를 참관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지난 달 15일 발표한 네덜란드 친선대회 27명 명단 가운데 무려 17명의 대학생 선수를 차출해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본인이 대학생 선수로 처음 월드컵 무대를 내디뎠기에 대학생 선수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이런 국제 대회를 통해 자주 큰 경기를 경험하고, 그러면서 대학 선수들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향후 홍 감독의 올림픽 팀 운영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U리그를 통해 발전을 모색하고, 대학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하지만 선수들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실질적인 발전이 이뤄지려면 내부적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대학생 선수가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하는 그 모습, 그리고 아주대 출신의 안정환이나 광운대 출신의 설기현같이 예전처럼 경쟁력있는 선수들이 다수 나오는 대학 축구의 모습을 언제쯤에나 다시 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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