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바레인으로 떠나기 위해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고, 최근 불거진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등의 정치개입 혐의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은 검찰수사를 직접 겪지 않은 탓인지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려 애를 썼고, 늘 그렇듯이 적폐청산을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미 국정원과 군의 댓글 공작은 국정원장 및 국방장관 등의 사실 인정이 있었고, 또한 문건도 확보된 상황이다. 정보기관과 군이 안보와 국토수호의 본분을 잊고 정치에 개입하도록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정황 또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보복 주장을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바레인 방문을 위해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며 여권의 적폐청산 활동과 관련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를 향한 권력형 비리 의혹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군의 댓글 공작’ ‘BBK 주가조작’ ‘문화·방송계 블랙리스트’ ‘공영방송 장악’ 그리고 결정적으로 ‘4대강과 자원외교비리’ 등이다. 그 숱한 의혹 중에서 이제 겨우 하나의 실마리를 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치보복이다, 국론분열이다, 국가 쇠퇴다 등의 협박 뒤에 숨기는 너무 이르고, 또 섣부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MB와 주변의 반격이 귀를 기울이기에는 너무도 근거가 없는 공허한 주장이라는 사실이다.

정치보복이라고 하기에는 적폐청산에 힘을 싣는 국민의 민심이 너무도 단호하고, 국론분열을 염려하기에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단단하다. 심지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 여론이 70%를 넘는 상황이라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가하게 국론분열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 외에는 달리 방어논리가 없다는 옹색한 처지를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 마치 자기고백처럼 들린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MB는 공항에서 “한 국가를 건설하고 번영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파괴하고 쇠퇴시키는 것은 쉽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바로 국민들이 적폐청산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스스로 말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하는 대목인 것이다. 그래서 MB의 입장표명에 다양한 반박의 수사를 동원했지만 사실은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닌 ‘자백’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이런 모순의 논리는 공항에서 MB의 생각을 부연한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주장으로 다시 이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바레인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 의전실 현관 앞으로 걸어오고 있다. 뒤쪽에 이 전 대통령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대가 보인다. Ⓒ연합뉴스

이동관 전 수석은 “국정원 심리전단장 이태하 씨 공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거기서 밝혀진 일이지만 지금 문제가 된 댓글은 전체의 0.9%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당시 조사는 검찰수사에서 엉터리로 드러난 바 있다. 그렇지만 백번양보해서 그 사실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0.9%가 불법이 아닐 수는 없는 것이다.

프레임 전환 전략은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또한 섣부른 여론조작에 흔들릴 민심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재 뜨겁게 달궈지는 국정원 및 사이버 사령부 댓글공작 사건을 필두로 모든 의혹에 단지 정치보복이라는 낡고 단순한 반격으로는 어떤 효과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보복을 주장할 정도로 모든 의혹으로부터 진정 떳떳하다면 검찰 수사를 당당히 받는 모습만이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일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