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대선시민연대는 12월 11일 '17대 대선, 인터넷 선거 참여를 돌아본다 - 선거법이 인터넷 공간을 어떻게 바꿔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역시 빠르다. 가장 빠르게 인터넷 1등 국가의 신화를 만들어냈던 대한민국은, 역시 가장 빠른 속도로 인터넷 '감시' 강국의 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달까지 네티즌들은 상상도 못했던 경험을 했다. 선거법 93조 1항때문이다. 문구는 이러하다. "선거일전 180일부터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ㆍ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인쇄물이나 녹음ㆍ녹취 테이프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ㆍ첩부ㆍ살포ㆍ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닥쳐보니 이것은 다큐멘터리 <그 때를 아십니까>에나 나올 듯한 상황이었다. 대선시민연대에서 발표한 자료에 나온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례 1. 대학생 김연수 씨는 지난달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관련 기사와 사진, 만평 등을 엮어 '대통령 이명박 괜찮은가'라는 제목의 UCC를 게재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한나라당에 의해 고발됐다. 선관위에 의해 UCC는 삭제됐으며, 경찰 조사가 끝난 김씨는 검찰의 기소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사례 2. 모사이트 운영자는 한 회원이 올린 글 때문에 선관위에 불려가 조서를 작성하고, 교육을 이수를 받고, 그 회원의 개인정보까지 선관위에 공개해야 했다. 문제가 된 게시물은 'I LOVE MB'라고 적힌 티쳐츠 사진이었다. 선관위는 사전선거운동 위반으로 그 회원에게 출두를 요구했다.

한두개가 아니다. 10월 30일 기준으로 선관위가 선거법을 근거로 인터넷의 글 삭제를 요청한 건수는 6만 건에 달하고, 그 중에 수사 대상에 오른 경우는 561건(618명)으로 전체 선거법 위한 사건(827건)의 68%에 달한다.

이제 선거운동이 가능한 기간이 왔다. 막혔던 네이버 댓글도 열렸다. 그래서 이제 속이 후련하냐고? 어디에서나 글을 쓸 수 있냐고?

아니다. 공직선거법 제82조는 여전하다. 선거운동기간 동안 인터넷언론사는 모든 게시판, 대화방에 이용자의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해야한다. 이것을 거부한 <미디어스> 등 일부 매체에는 여전히 글을 쓸 수 없다.

대신 언론사 게시판에 글을 쓸 때는 내가 쓴 게시물이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 등의 의혹을 받았을 때, 개인정보가 선관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쯤은 각오하고 써야 한다.

불복종운동도 가능하다. 돈을 낼 때 내더라도 인터넷에 할말을 하고 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자유롭지 못하다. 단순하게 돈이 없는게 문제가 아니다. 독립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취직할 사람이 벌금형 전과를 굳이 남길 필요가 있겠는가? 자신의 글이 삭제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멍석 깔아준다고 어디 쓸 마음이 나겠는가?

악몽같은 시간이 대통령 선거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내년 봄에 총선이 열린다. 다시 이 상황을 반복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블로그에 수없이 올린 글이 후에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다시 '사전선거 운동'에 걸리게 된다. 본인이 선거운동 의지가 없었다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그것을 판단하는 건 선관위다.

UCC는 간데없고, CCC만 활개

▲ 10일 방송된 <시사기획 쌈>의 조사에 따르면 '캠프 대 이용자 제작비율'에서 캠프에서 제작한 동영상이 95.2%를 차지 하고 있다. 사진은 방송의 한장면이다.
도대체 인터넷에는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걸까? 왕년에 대통령도 뽑았던 네티즌들은 왜 이렇게 조용해졌는가? 먼저 KBS <시사기획 쌈>이 그 해답을 제시했다.

12월 10일 KBS <시사기획 쌈> '2002년의 추억, 넷(NET)을 점령하라!'편은 지난 2002년과 2007년 선거에서 인터넷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보수의 변화가 가장 크다. 보수정치인도 변했고, 보수성향의 유권자들도 변했다. 요즘 보수정치인들은 네티즌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뭐든 한다.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갈곳도 많아졌다. 2002년 당시 진보세력을 결집시켰던 <오마이뉴스>와 대적할 만한 보수 인터넷언론도 늘어났고, 각자의 블로그에 보수정치인에 관한 글을 쓰는 논객도 많아졌다.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한나라당이 지난 5년전 대선에서 패배한 원인을 굉장히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터넷 공간을 등한시 하면서 저것은 젊은 애들의 놀이터라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결국은 패인이었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결국 인터넷이 갖고 있는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효용성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5년동안 한나라당을 비롯한 범보수권이 온라인 공간상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볼 수 있겠죠."

반가운 변화다. 인터넷으로 세대간의 격차가 줄고, 진보와 보수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인터넷 민주주의가 한걸음 나아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진보도, 보수도 재미가 없다. 그 이유는 국가와 정치권이 그것을 주도하려고 들었기 때문이다. UCC를 예로 들어보자.

UCC(이용자 제작 콘텐츠)는 2007 대선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했다. 2002년 대선에는 활성화되지 못했던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동영상들은 대부분 선거캠프가 직접 제작한 CCC(Camp Created Contents)다. 전문가들이 만든 작품이다보니 일반 UCC와 확실한 수준차이를 보인다. UCC만드는 사람들은 맥이 빠질 수 밖에 없었다.

CCC는 홍보목적으로 제작됐으니 당연히 후보들의 자화자찬 얘기가 대부분이다. 반대의 생각을 하는 UCC들이 다양하게 등장해야 네티즌들이 진짜 재미를 느끼고 정치에 참여한다. 이것을 그동안 선거법 93조가 발목을 잡았다. <시사기획 쌈>의 조사에 따르면 '캠프 대 이용자 제작비율'에서 캠프에서 제작한 동영상이 95.2%를 차지 하고 있다.

"입을 닫으라는 소리다"

2007 대선시민연대는 12월 11일 '17대 대선, 인터넷 선거 참여를 돌아본다 - 선거법이 인터넷 공간을 어떻게 바꿔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자로 참여한 블로거 한글로(media.hangulo.net)의 2007 대선 참여 소감은 현재 네티즌들의 상황을 대변했다.

그는 "지금 대선은 온통 네티즌 때려잡기, 네티즌 공안 정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니, 괜히 대선 이야기 하다가 잡혀가서 경찰 조사를 받느니, 그냥 입을 닫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다"라고 말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블로거 입장에서는 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선거법이 언론에만 관대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각종 신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줄만한 기사들로 가득차 있었다. 어떨때는 정말 악의에 찬 기사도 많았다. 특정 당 후보에게 유리한 기사만 싣는 신문도 있다. 물론 180일이 되는 시점에서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에 실린 기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낙관하는 것도 있었다. 선거법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규제가 생기면, 그 규제를 넘어서는 매체, 그 규제를 넘어서는 기술을 개발해서 뛰어넘을 것이다. 그때가서 오히려 지금의 규제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현재도 사전선거운동 기간이라고 해도 외국서버에 올라가는 정치관련글에는 선관위가 손을 뻗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래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인터넷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인터넷에서 힘겹게 끌어올린 민주주의의 수준은 바로 추락할 것이다.

다시 선거법 제93조.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까? 이 부분은 박주민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 센터)가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선거법 93조를 과잉금지 원칙 위반여부, 입법목적의 정당성 여부, 수단의 상당성 여부, 침해의 최소성 여부, 법익의 균형성 여부,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등의 기준으로 검토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과잉금지 원칙 위반여부의 기준으로만 선거법 제93조를 살펴봐도 문제가 드러난다. 박변호사는 이런 해석을 내렸다.

"선거운동 제한에 있어서 그 방법이 적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한 기간이 선거일 전 180일부터로서 너무 장기간이고,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지지 유도나 상대 후보 비방이 아닌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단순한 선전활동까지 금지한 것은 목적 달성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서 헌법 제 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결론부분에서 박 변호사는 "이제 선거법은 포괄적 규제에서 선택적 제한으로, 소극적 최소기회 부여에서 적극적 최대 기회부여로, 그리고 행정적 단속 위주에서 사법적 처벌강화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명예훼손법 등 선거법 대신 후보자들을 보호할 법은 이미 존재한다.

이 밖에도 토론회에서는 '사전선거 운동기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제도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 제도라고 한다. 게다가 대선, 총선, 보궐선거 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사전선거운동'이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이 부분은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금품이나 향응제공 등 선거기간를 앞두고 발생하는 문제들을 관리하기에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토론회에 참석한 법률전문가들은 "선거 운동이 방식을 대폭 완화하고 그 대신 정치자금에 대한 통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정무(민중의 소리 편집장), 정태호(경희대 법대 교수), 송경재(경희대 인류사회재건 연구원), 김경진(변호사, 창조한국당 법률특보), 김정엽(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네티즌들에게 가장 모욕적이었던 해

▲ 영화 <브이 포 벤데타> 포스터.
이 상황을 지켜보며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떠올렸다. 영화 속의 국가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평화롭다. 대신 국민들은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고 산다. 모든 행동을 감시받고, 똑같은 TV를 보며 살아야 했다. 여기서 주인공 '브이'는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임을 일깨웠다.

2007년은 대통령을 선출한 해가 아니라 네티즌들에게 가장 모욕적이었던 해로 기억될 듯하다. 국가가 선거법을 이용해 국민들이 발언공간인 인터넷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지금 정치적 의견을 가장 활발하게 펼치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국민들이 일방적으로 듣고 있는 형국이다. 눈과 귀를 가렸다가, 투표할 때가 되니 이제야 잠시 자유를 줬다.

가장 큰 문제는 인터넷을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방법을 익히기도 전해 자신의 생각을 검열하는 법부터 먼저 익히고 있는 상황이다.

네티즌을 어떤 글이 정치적 의사표현인지, 특정 후보 지지 내지 비방을 위해 쓴 글인지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 국가가 내 키보드를 감시하고 있다. 그게 가장 큰 공포다. 분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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