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변호사 위장계열분리 폭로: 홍석현 주권 둘러싼 소문 확인한 셈

다시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이건희 회장 일가는 자산 중 상당 부분을 그룹 계열사 사장단의 명의를 빌려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고, “중앙일보 주주 명의자는 홍석현 회장으로 하되, 의결권은 이건희 회장이 행사한다는 ‘주식 명의신탁 계약서’를 김인주 사장의 지시로 1999년 내가 직접 작성했다”고 김 변호사는 밝혔다. (한겨레신문 2007년 11월 27일자)

중앙일보는 1999년 3월2일자 3면을 통해 “중앙일보, 삼성과 분리 새롭게 태어납니다,” “당당히 새길 가는 ‘自立언론’” 등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이 기사들을 보면,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중앙일보 지분 20.3% 가운데 20%를 처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집안의 ㈜보광에 무상증여하고 0.3%를 홍 회장에게 직접 매각한다.

또 홍 회장은 제일모직·삼성물산·삼성전기가 보유한 중앙일보 지분 14.9%를 1주당 3만5,500원(안진회계법인의 평가 가격)에 매입함으로써 모두 36.8%(의결권 있는 보통주 기준으로 43.79%)의 지분을 확보하게 돼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99년 김인주 사장(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의 부탁으로 이건희 회장의 중앙일보 지분을 홍석현 회장 앞으로 하되 (이 부분에 대해) 홍 회장은 의결권이 없으며, 이건희 회장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의 ‘주식 명의 신탁 계약서’를 비밀리에 써줬다”고 주장했다.

홍 회장이 중앙일보 지분을 추가 매입할 자금이 부족해 이 회장의 돈을 빌려 지분을 36.8%로 늘렸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김 변호사 주장이 사실이라면 홍 회장이 갖고 있는 지분 중 상당수의 주권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에서 갖고 있다는, 그동안의 중앙일보사 안팎의 얘기가 단순한 소문이 아닌 셈이다.

한겨레신문은 김 변호사가 이건희 회장의 소유라고 지목한 중앙일보 지분은 제일모직 등 세 계열사들이 홍 회장에게 매각한 14.9%의 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회장이 ㈜보광에 준 20%의 지분은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이 지분은 홍 회장의 아버지인 고 홍진기 회장을 기리는 유민문화재단에 곧 재증여됐는데, 공익재단은 다른 회사의 의결권 주식을 5% 넘게 소유할 수 없다는 상속세법상 규정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의 주장대로라면 제일모직 등 세 회사의 중앙일보 지분도 애초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명의신탁했을 가능성이 있다.

▲ <중앙일보의 주식지분 변동표>

위 도표만 놓고 볼 때 1999년 계열분리 이후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보유 지분을 제외한 구체적인 변동 내역을 알 수 없다. 1998 회계연도 중앙일보사의 감사보고서에는 ‘합계 20.3%를 가진 기타 개인주주’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주주 분포의 대강이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계열분리가 이뤄진 1999 회계연도 이후부터 2006 회계연도 중앙일보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지분(변동) 내역이 일절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2003년도 감사보고서에서 홍석현 회장의 지분이 43.8%로 나타나 있을 뿐이다.

2005년도 기준으로 중앙일보사가 신문법에 따라 신문발전위원회에 제출해 신문발전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유민문화재단이 19.99%의 지분을 가진 것으로 되어있고,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CJ주식회사와 CJ개발 등 두 회사가 22.02%의 지분을 가진 것으로 돼있고, 역시 나머지 지분 21.19%의 보유자는 베일에 가려있다.

‘중앙일보, 수시로 삼성그룹에 돈 요구해 재무팀에서도 불만’

둘째, 김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앙일보가 계열 분리 뒤에도 수해로 입은 지하주차장 파손 수리 비용을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에 요구하는 등 수시로 돈을 받아다 써 삼성 재무팀 내부에서도 불만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삼성측은 이에 대한 반박자료를 통해 “2003년 중앙일보 빌딩은 삼성생명이 소유하고 에버랜드가 관리하고 있었으며, 중앙일보는 건물주인 삼성생명과 관리회사인 에버랜드를 상대로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계와 재계에선 계열 분리 이후에도 삼성이 광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중앙일보를 지원한다는 얘기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특히 삼성 계열사가 발행부수가 비슷한 다른 신문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중앙일보에 광고를 제공한다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중앙일보가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한 이후에도 처남매부지간인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회장의 인척관계 이상의 역할이 중앙일보사 보도나 중앙일보 기자들을 비롯한 회사 고위 간부들의 행태 등을 통해 나타났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한겨레신문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나흘 앞둔 5월 25일 1면 기사에서, 삼성그룹의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옛 구조조정본부장)이 이 사건에 대해 “형사적으로 문제될 줄 알았다면, 일 처리를 그렇게 허술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실상 그룹 차원의 개입을 시인하는 발언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 기자 간부, 김 변호사 소속 법무법인에 협박 전화도

이 보도가 나오자 중앙일보의 한 간부 기자가 김용철 변호사가 근무하던 법무법인 ‘서정’에 전화를 걸어 “가볍게 듣지 마라. 다른 기업들에게도 반기업적인 변호사가 근무하는 로펌이라고 알려 영업을 못하게 하겠다”고 얘기했다고 김 변호사는 주간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시사IN 2007년 11월 13일자)

실제 김 변호사는 떠밀려 휴직했고 두 달 뒤 복귀하려고 했지만 로펌에서 삼성 이학수 실장의 각서를 받아오라고 해 좌절했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11월 26일 기자회견과 시사IN과의 인터뷰(11월 6일자) 등을 종합해 보면, 중앙일보가 안기부 도청 테이프인 X파일 제보자로부터 테이프를 10억원에 사기로 협상했다며 10억원을 지원해줄 것을 삼성에 요구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또 1999년 이학수 부회장과 함께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씨와 박인회씨를 만났는데, “박인회씨가 테이프를 사라는 식으로 협박해 응하지 말자고 했다. 복사본은 끝없이 나온다. 정면 대응하라”고 했으며 그래서 복사본을 사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중앙 고위 간부 인사 때, 삼성 수뇌부와 상의 혹은 사전 재가 받은 듯: X파일

MBC 이상호 기자가 보도한 X파일(녹취록)에 나오는 대화내용을 다시 들추어 본다.

1997년 9월 9일 녹취록에 따르면, 중앙일보에 기자로 입사해 92년 편집국장을 지낸 이 모 부사장 얘기가 나온다. 95년 삼성그룹 홍보담당 부사장을 거친 이 모 씨는 97년 당시 삼성그룹 홍보담당 보좌역으로 있던 사람이다. 홍석현 당시 사장과 이학수 실장의 문제의 대화 내용을 보자.

홍석현: 나 오늘 잔잔한 얘깃거리가 많은데, 생각나는대로 (이야기하는데)... 이OO 부사장 어떻게 하실래요? 쓰시겠어요 내년에도?
이학수: 아니, 그냥... 불편했습니까?
<중략>
홍석현: 잔잔한 거(이슈)부터 내가... 이 전 부사장 건은 얘기해서 답을 제게 주실 거고.
이학수: 1년 후에라도 해 줄 수 있다면...
홍석현: 1년 후라도... 나는 (삼성)그룹이 또 안정이 돼야 하는 거니까. 필요 없다고 그러면 내가 데려가고. 이 실장이 필요하시면, 나는 꼭 필요하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1년 뒤에라도 가져다가 쓰시고.

실제 이 대화 내용대로 이 모 씨는 98년 삼성그룹 기업구조조정본부 부사장으로 1년 더 일한 뒤 99년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겨 편집 광고담당 부사장을 거쳐 99년 편집인 겸 부사장이 된 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중앙일보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다.

녹취록의 대화 내용을 좀 더 들어본다.

홍석현: 금OO 인사는 언제쯤 하면 좋을까요? 우리 부장단 정기인사가 시월 초하루거든. 같이 할까? 먼저 할까, 그 다음에 할까? 귀국하신 다음에 하는 게 낫죠? 다시 한번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까?
이학수: 저 22일날... 그 밑에 (인사에 대해) 회장님께 말씀드립니까?
홍석현: 편집국장이나 그런 인사가 아니에요. 그렇게 해주시면 좋고. 그 전에는, 22일 전에는 하지 않겠어요? 나는 10월 1일이니까, 23, 4, 5일쯤 하면 되겠네.
이학수: 오시면 그 다음날 하면 되겠네.
홍석현: ... 그날 느낌은 어땠어요? 금OO 본 느낌이 나쁘진 않았죠?

이학수와 홍석현의 대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 등을 보면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중앙일보 기자들이 수집한 취재와 정보내용이 홍석현을 통해 이건희 회장에 일일이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중앙일보가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위해 사실상의, 비공식 선거운동본부처럼 움직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4년 2월 14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무려 3시간 35분 동안 단독 대담을 가졌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홍 회장에 대해 국빈에 준하는 예우를 했다고 한다.

당시 기자는 중앙일보가 대통령과 홍석현 회장의 3시간 35분 동안의 대담 내용을 보도하면서 1면 머리기사로 어떤 제목을 달 것인지 궁금했다. 중앙일보의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노대통령) 기업인 처벌 원치 않는다”였다. 삼성과 중앙일보, 이건희와 홍석현은 단순한 사돈지간인가? 중앙일보는 여전히 삼성의 사보인가?

* 다음 기사는 <76개 회사 가진 중앙일보(보광)그룹 돈되는 일이면 뭐든지 한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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