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바른정당 분당에 이어 국민의당도 친안계와 호남계 사이에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한국 정치지형이 다시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양당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정계개편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비밀 여론조사'가 나비효과를 발생시켰다는 분석이다. 도끼로 제 발등 찍은 셈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분열로 치닫는 국민의당

8일 국민의당 호남 중진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이 안철수 대표를 '대놓고' 비토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상돈 의원은 안 대표에 대해 "리더십이 와해됐다. 안철수 대표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산이 고갈됐다"면서 "무엇보다 본인이나 주변의 측근들의 정치적 판단력이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분들(바른정당 자강파)이 안철수 대표를 어떻게 보는지 잘 안다"면서 "아마추어고 이미 정치적으로 다 종친사람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친안계도 곧장 반박에 나섰다. 8일 오전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주원 최고위원은 "이렇게 어려운 시점에 국민의당의 이름으로 휴일을 반납하고 자원봉사에 땀을 흘리고, 어떤 이는 한 사람이라도 더 당원을 가입시키려고 모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사기를 떨어뜨리지 말라. 더 이상 25만 당원을 모독하지 말라"고 반발했다. 최명길 의원도 "분란을 어떻게든 키우고 싶어하는 적대적인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 당을 부수는 일에 몰두하는 분들은 정말 자제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안철수 대표와 호남중진 유성엽 의원 간의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6일 자신에게 쏟아지는 '책임론'과 관련해 SNS에 "한 중진의원께서 대놓고 저를 공격했다"면서 "저의 (당대표) 당선이 비정상이면 선출한 당원이 비정상이라고 보고 계신 건데, 그 정도면 그런 정당에 계신 것이 무척 불편할 거란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당시 유 의원이 자신을 작심비판하자, '당을 나가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대표의 반응에 유성엽 의원은 "하는 꼴이 딱 초딩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유 의원은 "지도부가 고작 한다는 것이, 당내 중진의원에게 '나가라'고 막말을 해대고 있을 뿐"이라면서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의원이 다수"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민의당 내홍이 격화되면서 결국 국민의당도 바른정당처럼 분당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특히 지방선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지율 침체를 겪고 있는 국민의당의 세가 더욱 작아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국민의당 비밀 여론조사의 '나비효과'

이러한 국민의당의 내홍이 결국 안철수 대표의 '판단 미스'로 시작된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안 대표의 '비밀 여론조사'가 제3지대 정당들의 분열을 불러왔다는 얘기다. 지난달 18일 조선일보는 <국민의당, 어느 당과 합치는게 좋은지 비밀 여론조사>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국민의당이 각 당과 통합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조사한 내용이었다. 결과인 즉 민주당, 자유한국당보다 바른정당과 통합했을 경우에 가장 시너지 효과가 높다는 것이다.

▲10월 18일자 조선일보 6면.

이러한 결과를 두고 며칠 동안 국민의당, 바른정당 통합 가능성에 언론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당시만 해도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반응이 좋자 안철수 대표가 '열심히 홍보하라'는 취지로 독려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3일 천하'였다.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바른정당 대선후보였던 유승민 의원이 "보수의 가치에 동의하는 분들"을 거론하며, 국민의당 모든 구성원과 함께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결국 안 대표도 '연대 가능성' 정도로 후퇴하는 머쓱한 상황이 발생했다.

오히려 바른정당 탈당파의 자유한국당 복당에만 불을 지폈다. 국민의당의 비밀 여론조사 결과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당일 당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즉흥적으로 '친박 청산'을 결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고, 친박 핵심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해서는 출당을 권고했다.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에게 '박근혜 출당'은 복당명분이 됐고, 9명의 바른정당 의원이 집단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즉, 안철수 대표가 '비밀 여론조사'로 홍준표 대표를 자극했다가,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의 자유한국당 복당 명분만 만들어준 셈이다.

게다가 당시 비밀여론조사를 최초 보도한 매체가 '조선일보'라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친안계에서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선일보를 통해 이슈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보도공표 기준을 당시 17일 오후 5시로 등록했다. 기자들이 중앙여심위 홈페이지를 확인하려면 다음날 5시에나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즉 국민의당이 조선일보에 결과를 '준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도를 표방한다던 국민의당이 '조선일보'를 선택하면서, 호남-진보로 대표되는 층의 불만을 샀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안철수 대표가 비밀 여론조사라는 걸 하고 보름을 전후로 바른정당이 분화되고, 국민의당도 내홍을 겪게 됐다"면서 "결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양당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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