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애초의 영접장소인 청와대를 떠나 평택기지로 직접 나가는 파격으로 시작되었다. 품위는 지키면서 상대에게 더 대접받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가성비 높은 환영 전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전통 수문장 복장을 한 국군의장대와 군악대의 모습은 트럼프를 감탄케 했던 것으로 보였다. 한국 시민의 눈에도 멋져 보였으니 생전 처음 봤을 트럼프에게는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는 장관이었을 것은 분명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직접 전통의장대의 영상까지 첨부하며 “아름다운 환영식”이라는 말과 함께 “어딜 가도 볼 수 없는 환영식”이라고 만족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조선시대에 왕의 행차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취타대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형태라고 보면 될 것이다. 영조 화성행차를 재연하는 행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관이기도 한데, 재연과 달리 한미 양국의 대통령을 인도하는 실제를 담아서 그런지 티비 생중계로 전해진 국방부 취타대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장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였다.

7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아름다운 환영식을 열어준 문재인 대통령에 감사하다(Thank you to President Moon of South Korea for the beautiful welcoming ceremony.)"고 적고 환영식 동영상을 함께 게시했다. [트럼프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청와대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성과를 거저 얻기도 했다. 그것은 트럼프도 대단히 큰 만족을 표한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열렬히 흔들며 환영했던 인파였다. 우리는 몇 달째 골칫거리인 태극기 집회가 속사정을 모르는 트럼프에게는 낯선 나라에서 받는 뜨거운 환영으로만 비쳤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도 트럼프를 진심(?)으로 환영했으니 어디에도 거짓은 없는 것이다.

물론 당시 광화문에는 이들 외에도 트럼프의 방한을 반대하는 집회도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경찰은 이들은 차벽으로 가리고, 태극기 집회는 경찰들로 통제만 하는 차별적 전술을 사용했다. 그 결과 태극기집회는 그토록 싫어하는 문재인 정부에 가장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결과가 된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본 많은 시민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광장의 아이러니를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7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 차량행렬이 서울 세종로를 지나자 보수성향 시민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이런 결과를 놓고 ‘이이제이’라는 말들도 오갔는데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이는 ‘이이제이’보다 한 수 위 전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가장 반대하는 세력의 존재를 역으로 이용한 셈이니 말이다. 미국 대통령 환영의 공식적인 준비는 아니었지만 그만한 성과를 거둔, 판을 다룰 줄 아는 지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이 반미시위대를 상대로 폭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마무리는 매우 아쉬웠다.

그러나 청와대의 진정한 이이제이 지략은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청와대 국빈만찬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초대했고, 트럼프와 포용하는 장면까지 연출한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최근 개봉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이다. 이에 일본은 즉각 반응했다. 트럼프의 식탁에 독도 새우가 올라간 것까지도 트집을 잡는 모습이었으나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하며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그렇지만 일본이 발끈해주는 바람에 우리 정부는 딱히 별다른 노력 없이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국제사회에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다. 특히 최근 유네스코를 돈으로 압박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등재에 실패한 사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어 직접적인 거론 없이도 국제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을 한 트럼프가 유네스코를 탈퇴한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것도 유네스코를 향한 무언의 꾸짖음이 담긴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이번 방한은 모든 국가의 대통령이라면 당연한 세일즈를 위한 행보로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양국의 참모들은 수면 아래서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하고 있겠지만 그런 외교의 성과는 어찌 보면 힘의 논리에 의해 결과가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외교의 복잡한 논리를 벗어나 어차피 해야 될 형식에 전통의 미와 장엄을 살린 국군 취타대, 이용수 할머니를 초청한 세심한 만찬의 구성 등은 작은 노력으로 얻은 결코 작지 않은 성과들이었다. 일본과 경쟁적으로 비교할 필요는 없겠지만 노예외교라는 굴욕적 평가를 받았던 일본과는 차별된 환영행사로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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