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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라그나로크’, 신화적 종말에 대한 히어로물의 현대적 해석[블로그와]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7.11.07 16:29

<토르> 시리즈가 첫 선을 보였을 때 미국 등지에서의 인기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반응이 저조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신에 대한 낯섦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필독도서처럼 우리나라 신화보다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섭렵하며 자란 세대에서 북유럽의 망치를 휘두르는 신은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의 탐구열기로 북유럽 신화가 소개되기 시작하고, <반지의 제왕> 등의 붐과 함께 북유럽 정서에 대한 전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유럽의 신은 생소했다. 

오히려 '토르'가 익숙해진 건,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아이언맨'을 필두로 한 슈퍼히어로 군단의 활약을 그린 <어벤져스(2012)>부터라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 흔하디흔한 출생의 비밀을 알고, 태생적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주신으로서의 자질을 증명하기 위해 지구를 침공하려는 로키(톰 히들스턴 분). 그리고 그런 동생, 사실은 의붓동생이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기 위해 어벤져스 군단에 합류한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분)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일견 코믹하면서도 좌충우돌 끊임없이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그 캐릭터에 관객들은 매력을 느꼈을 터이다. 그리고 이제 토르 시리즈는 2편 <다크 월드>에 이어, 3편 <라그나로크>로 아이언맨 못지않은 인기 캐릭터가 되어 극장가를 섭렵한다. 

히어로물에 등장한 신들의 종말: 라그나로크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스틸 이미지

그런데 이번 3편 <토르: 라그나로크(이하 토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1편에서부터 차용되어온 토르와 로키를 탄생시킨 북유럽 신화를 절묘하게 버무려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아예 부제를 '라그나로크'라고 한 3편은 북유럽 신화의 종결, 세계의 종말 전쟁을 다루고 있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북부 독일 등지에 살던 노르드인들을 비롯한 북게르만 민족들의 신화를 통칭하는 북유럽 신화는, 영생으로 신들의 세상이 이어지는 다른 지역의 신화와 달리 '라그나로크'라 불리는 신들의 멸망을 다룬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이는 겨울이 1년의 절반을 넘는 척박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리적 환경에 힘입은 바, 신조차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비극적 운명의 서사를 신화의 내용으로 수용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다양한 신들이 저마다의 '능력'을 활용하는 다신론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제우스라는 확고한 가부장적 권위 체계의 규율에 의해 그 질서가 유지되는 것과 달리, 북유럽 신화는 신화의 역사 속에 부상했던 다양한 민족이 섬기는 신을 북유럽 신화의 근간 속에 수용해내면서 '티르', '토르', '오딘' 등의 여러 우두머리 신의 집단중심 체제를 골격으로 삼는다. 그래서 오딘이 신들의 제왕이라 칭해지면서도 정작 천둥의 신 토르가 대중적으로나 그 힘에 있어서 압도적인 등 북유럽 신화에서는 그 권력이 일원적이지 않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오딘과 토르, 로키의 부자 관계 역시 다르다. 오딘과 토르가 부자 사이나 때로는 형제 사이로 전해지는 것과 달리, 로키는 오딘이 데려온 아들이라는 영화적 설정과 달리 거인족 출신으로 오딘과 의형제를 맺은 것으로 신화에서는 그려진다. 하지만 아들이건 형제건 오딘과 토르가 제휴관계인 것과 달리, 신들의 종말 그 시작이 된 로키는 애초부터 신들과는 다른 종족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존재였다는 것이다. 

영화 속 로키가 적자가 아니라는 자신의 열등감을 사건 사고를 통해 끊임없이 극복하고자 하다 토르를 어둠의 세계에 가두고, 오딘을 무력하게 만들며 지하세계의 헬라가 그 힘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듯, 신화에서 역시 아내와 딸을 잃은 로키의 복수로부터 종말, ‘라그나로크’는 시작된다. 

신화적 종말에 대한 현대적 해석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스틸 이미지

영화에서 신들의 제국 아스가르드와 그 주변에서 오딘이 점령한 9개의 왕국은 신화 속 큰 물푸레나무 위드그라실을 중심으로 제일 윗부분에 존재하고, 그 가운데 부분에 인간들의 미드가르드, 그리고 반지의 제왕 등에 등장한 거인과 난쟁이들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나무의 아랫부분은 죽은 자의 세계, 바로 헬라가 돌아온 그곳 저승의 세계가 있는 것으로 북유럽 신화는 그려낸다. 사실 신화 속 헬라는 말썽의 근원인 로키의 딸로 그려지지만, 영화는 오딘의 숨겨진 첫째 딸, 그리고 선한 군주였던 오딘의 지난날 잔혹했던 정복욕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오딘이 사랑했던 아들 발데르의 죽음으로 초래된 신들 간의 갈등. 그것이 극대화하며 라그나로크는 시작되고 결국 저승에 가두어졌던 늑대 펜리르와 뱀 요르문간드가 나타나 신들과 서로 죽고 죽이는 대멸망이 시작된다. 영화는 그 신들의 전쟁을 저승에서 돌아와 다시금 정복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헬라 여신과 그 수하 늑대로 표현해낸다. 오딘의 첫 번째 자식으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여신, 그에 대항해야 하는 역부족의 토르. 그를 돕는 문지기 신 헤임달과 오딘의 전사 발키리와 결국 합류한 로키까지. 선과 악이라 구분할 수도 없이 각자 신들의 욕망이 뒤엉켜 싸우다 모든 것이 불태워져 세상이 끝나 버리는 ‘라그나로크’를 영화는 히어로물의 전형적인 선과 악의 싸움으로 치환해냄과 동시에, 제국의 권력욕과 그에 대항하는 선의 영웅 세력으로 대립시킨다.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스틸 이미지

그 과정에서 오딘으로부터 토르로 이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세대교체도, 그리고 <글래디에이터>의 우주버전 형식을 통한 아들의 성장사도 통과의례로서 더해진다. 역시나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에 모호했던 중간자 로키의 절묘한 선택 역시 빠질 수 없는 관람 포인트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전쟁 이후 아스가르드는 불타고, 인간 세상 역시 종말의 전쟁과 이어진 혹한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겨우 살아남은 인간들로 신들의 세상에 이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인간의 역사를 막강한 힘의 헬라 앞에 아스가르드를 포기한 토르의 결정, 즉 아스가르드의 존재론에 대한 의미심장한 결론으로 이끈다. 즉 헬라에 의해 지배되더라도 아스가르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민들 즉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진정한 아스가르드라는, 북유럽 신화의 '민주주의적 해석'을 통해 신화적 의미를 오늘에 되살려내며 장대한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스틸 이미지

신화에서 신들의 종말이 인간의 역사로 대체되는 서사. 영웅들의 활약상에 힘입은 정복 군주의 국가가 아닌, 국가를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인간들이 존재하는 그곳, 설사 그곳이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선이라 하더라도,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국가라고 <토르: 라그나로크>는 주장하며 시즌 3를 마친다. 그 흔한 쇠망치 휘두르는 토르를 차용했던 히어로물은, 그저 신화적 인물의 차용을 넘어 세계관의 재해석을 통해 시리즈물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해낸다.

이렇게 어벤져스로 규합된 히어로들은 각자 <아이언맨>의 자본주의적 세계관, <캡틴 아메리카>의 국가주의적 세계관에 이어, <토르>의 민주주의적 세계관까지 다양한 세계관에 대한 질문을 통해 시리즈를 풍성하게 만들어, 보는 재미와 함께 생각할 재미를 던져주며 이 시대의 담론을 형성해 간다. 아마도 이 지점이 마블 군단의 독보적인 선점의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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