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동이>가 기존 사극과 많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역시 왕의 위엄과는 거리가 먼 숙종의 변신 때문일 겁니다. 그동안 사극에서 보여 졌던 왕은 근엄하고 말이 별로 없고 무섭기까지 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동이>속 숙종은 그런 기존의 모습을 완벽하게 깨트린 파격적인 왕으로 등장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태어날 때부터 왕이었던 특별한 존재 숙종

1. 희재의 등장은 동이와 옥정 대결의 시작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단단하게 다져진 인물인 동이는 이번에도 옥정의 무고를 해결하는 공과를 거둡니다.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 아버지가 평생 해왔던 오작인의 모습을 보고 자란 동이였기 때문이었죠. 그녀에게 시체 검안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이는 죽어서 말을 한다'는 말을 믿는 동이는 감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감행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고 믿는 일에 대한 그녀의 강한 힘은 시체 검안 소에 몰래 들어가서 사건을 해결하는 기지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옥정의 일이 해결 된지도 모르고 동이를 제거하려던 오태석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죽음의 궁지에 몰린 동이는 우연히 왕과 만나 다시 도움을 받게 됩니다. 모든 사건들은 결과적으로 숙종과 동이가 지속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을 만들고 있었죠.

그렇게 또다시 위기를 모면한 동이는 자신이 밝혀낸 옥정의 무고를 알리게 되지요. 영특함을 넘어서 그 누구도 밝히지 못한 사건으로 인해 옥정은 숙종에게 동이를 좀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길 청하게 됩니다. 옥정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동이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음은 그녀들에게는 아이러니가 될 수밖에는 없었지요.

극 초반부터 운명론으로 그들의 관계를 규정했기에 운명처럼 만나 숙명처럼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관계는 옥정의 오라버니인 장희재의 등장으로 본격화 되어 갑니다. 난봉꾼으로만 알려졌던 장희재는 동생 옥정과 함께 큰 뜻을 품고 자신을 타인에게 속이고 살아온 인물입니다.

확실한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자신의 칼날을 내보이지 않는 장희재에게 옥정은 든든한 후원자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도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난 희재는 자신의 집에 심부름을 와 있는 동이를 보고 심상치 않음을 감지합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오라버니 희재는 옥정에게 무척이나 반가운 인물입니다. 그런 희재에게 자신을 돕는 동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누구보다 사람을 잘 판단하는 그라면 동이를 자신이 도와야 하는 인물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 옥정은 뜻밖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천한 신분에서 영특함으로 이 자리까지 오른 옥정과 비슷한 동이를 왜 그렇게 감싸고 잘해주려고 하느냐고 합니다. 옥정과는 타고난 경쟁자인 동이를 일부러 돕는 것은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니 말이지요.

순수하게 동이를 바라보고 그녀가 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던 옥정은 자신이 가장 믿는 오라버니 희재의 등장과 말 한마디에 동이를 경계할 수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더욱 왠지 모르게 과거 도인이 자신에게 이야기했던 귀한 상을 가진 존재가 등장한다는 말은 그녀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겠지요.

원대한 꿈을 품고 궁으로 들어온 옥정에게 그동안 가장 큰 산은 명성대비였습니다. 더불어 명성대비가 지원하는 서인세력은 그녀가 제어해야할 가장 중요한 적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모든 산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등장한 동이는 그에게 넘을 수 없는 산이 될 수도 있음이 그 어떤 적보다 두렵고 힘겹게 다가옵니다.

2. 엉뚱한 왕 숙종은 당연하다

왕의 특권들이 무척이나 많겠지만 세인들에게 회자되는 것들 중 하나가 자신이 원하는 누구든 자신의 여자로 둘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그로 인해 천민에서 후궁이 되는 경우들도 생겨나고 이런 일을 통해 얻어진 많은 세자들은 서로 왕이 되고자 혹은 왕으로 만들려는 무리들의 암투 속에 희생되기도 합니다.

그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이 되어야 했던 세자는 왕이 되면 당연히 근엄하고 많은 것들을 의심할 수밖에는 없게 됩니다. 그런 왕에게 <동이>에서 보여 지는 숙종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지요. 숙종이 아닌 다른 왕들에게 '깨방정 임금'의 모습이 투영되었다면 이는 시트콤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왕이었던 숙종은 다른 왕들과는 달리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왕으로 대접받아왔던 인물입니다. 그의 아버지인 현종은 다른 왕들과는 달리 후궁을 들이지 않고 오직 한 여자와만 살았던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숙종과 다른 두 공주만을 둔 현종에게 숙종은 당연히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을 왕일 수밖에는 없었지요.

아버지 현종으로 인해 태어나면서부터 왕이 되어 왕으로서의 모든 것들을 배운 그에게는 정치에 대한 감각들을 길렀을지는 모르나, 다른 왕들과는 달리 자신을 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어린 시절을 보낼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토록 천진난만할 수밖에 없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존재였지요.

왕자로 태어나 왕이 되어야 하는 숙명은 행복하지 만은 않습니다. 절대 권력인 왕이 되고자 하는 모든 세자들은 적이 될 수밖에 없고 그 대상이 형제라 해도 다를 게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형제들을 해하고 왕이 되어야만 했던 여타 임금들과는 달리 숙종은 그런 아픈 운명에서 벗어난 하늘이 내린 왕이었습니다. 왕자의 난과 같은 혼란은 그에게 해당 없는 일이었지요. 피 냄새를 맡고 살의를 느끼며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하게 왕으로 키워진 그가 깨방정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었을 듯합니다.

남인과 서인으로 나뉜 당파간의 경쟁을 숙종은 적절하게 활용하며 정치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요. 그 안에 요동치는 정국의 중심에는 후에 희빈이 되는 장희빈이 있었고 그를 감싸며 권력을 가지려는 남인 세력이 있었습니다. <동이>를 재미있게 보려면 숙종 시절 중요한 양난에 주목해야 하겠지요.

희빈장씨 소생의 왕자를 둘러싼 '기사환국'과 인현왕후 복위와 관련된 '갑술옥사'를 통해 옥정과 동이의 운명은 극명하게 나뉠 수밖에는 없게 되지요. 이런 과정 속에서 숙종과 동이 그리고 옥정의 관계들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지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천민에서 내명 궁 궁인으로 입궁이 확정된 동이. 커다란 사건을 해결한 동이가 감찰부 궁녀가 되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과 시련을 앞두고 있습니다. 더욱 자신을 경계하기 시작하는 옥정까지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적인 감찰부에서 동이를 도와 줄 정상궁과 봉상궁은 그동안 이병훈 사극에서 많이 보아왔던 방식으로 위기를 이겨낼 것으로 보여 집니다.

장희재의 등장은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복잡 미묘한 권력 다툼과 새로운 왕으로 만들려는 왕후들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지요. 허허실실 속에 무서운 힘을 숨기고 있는 숙종과 장희재의 지략 싸움도 <동이>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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