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활동비란 쉽게 말하자면 증빙이 필요 없는 돈이다. 증빙이 필요 없다는 것은 국민의 대표로부터 통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돈이라는 뜻이다. 이런 예산이 필요한 것은 어쨌든 나랏일을 하다 보면 정부가 비밀리에 돈을 써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국가정보원 예산에 특수활동비가 많이 배정돼 있고 그 중 일부는 심지어 다른 부처 예산으로 ‘숨겨져’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다수 사람들은 국가정보원이 이 특수활동비를 대외 정보수집이나 대북공작 등에 투입하길 기대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전 정권의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 받았다는 혐의로 긴급체포된 것을 보니 그렇다.

검찰이 언론을 통해 공개한 내용만 보면 사건의 실체를 아직 전부 알 수는 없으나 결국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정권의 통치자금화 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보도에 의하면 이재만 안봉근 전 비서관이 국정원에 먼저 특수활동비 상납을 요구했고, 국정원은 매달 1억원에 달하는 돈을 5만원권 지폐로 이른바 ‘007가방’에 담아 전달했다는데 이는 어떻게 봐도 이례적인 것이다. 일부 언론은 이 돈을 이재만 안봉근 전 비서관이 개인 차원에서 착복했을 수도 있지만 결국 ‘화이트리스트’로 분류된 우파 시민단체 등으로 흘러 들어갔거나 당시 여당의 선거자금 등으로 활용됐을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정권의 ‘돈세탁’ 창구가 된 셈이다. 특수활동비도 어쨌든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돈이다. 그런 예산이 생겨난 것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름의 의도와 취지가 있다. 여기에 정권의 사실상 비자금으로 활용하라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청와대에 상납을 한 탓에 원래 써야 할 곳에는 상대적으로 특수활동비가 적게 투입됐을 테니 대북공작과 해외정보수집이라는 국정원 고유 업무역량의 유실도 불가피했을 것이다. 과연 국정원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고, 최소한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체계를 대폭 손질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 의혹과 관련해 체포된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오른쪽)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런데 보수언론은 마법의 주문 ‘내로남불’만 외우고 있다. 조선일보는 1일자 지면에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정치권이나 국정원 주변에선 특수활동비를 정부 부처 등에 지원하는 일은 과거 정권 때도 있었는데, 이를 뇌물죄로 처벌한다면 어느 정권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며 “검찰이 전(前) 정권 ‘적폐 청산’ 수사에 올인하면서 무리한 법 적용을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라는 지적을 함께 전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2001년 김대중 정권에서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씨가 국정원장들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있고 2004년 참여정부 대선자금 수사 때 당시 여당 실세였던 권노갑 씨에게 국정원 돈이 일부 흘러들어간 사실이 드러났다고도 보도했다. 두 사안 모두 국정원 특수활동비의 성격을 감안해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지만 이번 정권에선 그렇지 않고, 이는 결국 ‘정치보복’ 아니냐는 게 조선일보가 하고 싶은 말일 거다.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청와대로 흘러 들어가는 ‘관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조윤선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월 500만원씩 받았다는 것은 이 ‘관행’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는 결국 잘못된 일이며 불법이고 개혁의 대상이다. “김대중 정부나 참여정부의 사례는 문제 삼지 않고 왜 전임 정부의 사례만 침소봉대 하느냐”, “정치보복을 그만두라”는 것은 결국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두자는 것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재만 안봉근 전 비서관의 사례는 이런 ‘관행’으로 봐도 이례적인 게 분명하다. 조선일보 보도에서도 전직 국정원 간부가 “옛날엔 실장이나 수석들에게 갔는데 비서관에 불과한 안봉근·이재만 씨에게 준 것은 좀 의아하다”고 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검찰의 수사는 1차적으론 이 ‘의아함’에 맞춰져 있고 그게 결국 지난 정권의 ‘특수성’을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 사건의 핵심이다.

이런 막무가내식 ‘내로남불’ 논리는 최근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한 보수세력의 일반적 태도로 굳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보도 역시도 그렇다. 보수언론의 논리는 홍종학 후보자가 평소 부의 대물림을 비롯한 여러 비판을 해왔으면서 정작 자신은 그 비판대로 삶을 살지 않고 오히려 사적 이득을 추구했다는 이중적 면모가 드러났다는 식이다. 이는 표면적으로 장관 인사에 대한 의견으로 보이지만 결국 행간에는 현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이 경제민주화 등 분배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선전 논리가 숨어있다.

홍종학 후보자의 문제는 세 가지 차원으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 첫째는 청와대와 후보자 본인이 말하는 대로 위법의 문제가 있었느냐에 대한 것이다. 둘째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더라도 미성년자인 자녀에게 부동산을 증여해 사실상 임대사업을 하도록 만든 걸 어떻게 볼 것이며 홍종학 후보자 본인은 이 과정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셋째는 이런 문제를 통해 홍종학 후보자의 정책 철학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느냐이다. 홍종학 후보자가 장관 적임자인지의 판단은 각각의 쟁점을 종합한 결과여야 한다. 그런데 보수언론은 이 모든 걸 뭉뚱그려서 ‘내로남불’로 만들고 부의 대물림을 비판하고 재분배 정책을 주장하는 모든 경우를 ‘거짓말’로 만들고 있다.

보수언론의 이런 태도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두고도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현재 KBS와 MBC 등을 두고 벌어지는 여러 사태는 문재인 정권의 방송장악이 아니라 이전 정권의 방송장악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이란 게 분명하다. 그러나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하루가 멀다하고 문재인 정권의 방송장악이 문제이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정권의 방송장악은 문제였다는 식의 주장을 거리낌없이 내놓고 있다.

우리가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이유는 기득권의 그런 행태가 역사를 진보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세력은 이 논리의 형태만을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오히려 개혁의 칼날을 피하고 현상유지의 상황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언제나 핵심은 어떻게 상황을 더 낫게 만들 것인가이고 언론이 공론을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파적 이득을 위해 ‘내로남불’만 외울게 아니라 생산적 결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때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