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군 기무사령부가 문민정부 시절에도 사찰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1996년 기무사가 검찰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 구성원들에 대해 전방위적 사찰을 자행한 내용을 담은 3건의 문건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들은 1995~1996년 사이 기무사 요원들의 '득문(주변 지인에게 정보획득)'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문건에는 1996년 당시 5·18 특별조사본부에 참여하고 있던 문무일 검사(현 검찰총장)와 5·18 관련 헌법소원을 심리하던 조승형 헌법재판관과 헌재 연구관들의 성향 및 동향파악과 분석의견이 들어있었다.

▲1996년 1월 작성된 군 기무사의 문무일 검사(현 검찰총장) 사찰 문건. (자료=이철희 의원실 제공)

'5·18 특수부 문무일 검사, 동생이 희생된 피해자 가족'이란 문건에는 서울지검이 5·18 특별수사본부를 편성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96년 1월에 작성됐다. '103부대 중사 이OO이 문 검사 주변 지인들로부터 득문'이라는 꼬리표를 단 해당 문건에서 "서울지검의 5·18 특수본 소속 문 검사는 5·18 당시 동생이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 가족으로 알려져 피의자 측의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어 문무일 검사의 출생과 학력, 이력을 기재한 후 "5·18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이 계엄군 발포로 사망해 현재 피해자 가족 신분으로 5·18 수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특히 분석의견에서 "수사검사가 고소·고발인과 특별한 관계에 있으면 다른 검사로 교체하는 것이 관행"이라면서 문 검사의 5·18 수사 배제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언론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사람은 문무일 검사의 동생이 아닌 고교 동기생이었다고 보도하는 등 문건과 차이를 보였다.

'헌재연구관, 5·18 검찰 결정에 부정적 인식'이라는 문건에는 기무사 3급 박OO이 헌재 비서실로부터 득문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1995년 당시 헌재는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5·18 관련자들을 '불기소' 처분한 검찰 결정에 대한 헌법소원 심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해당 문건에는 성공한 쿠데타의 처벌여부에 대해 국내외 서적과 판례를 분석 중인 재판연구관들이 "검찰이 인용했다는 법이론 논지가 다르게 이해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내밀한 동향을 적고 있다. 또 "연령이 비교적 젊은 계층의 연구관 상당수가 검찰의 결정 처분과 5·18 사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고도 했다.

'5·18 관련 헌재결정내용 사전 누설자로 조승형 지목' 문건도 헌재 직원으로부터 들은 첩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누설자로 지목된 조승형 재판관은 야당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돼 5·18 헌법소원에서 소수의견을 주도하던 인물이다.

SBS 보도화면 캡처

당시 헌재 결정 내용이 유출되자 기무사는 "조승형 재판관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을 지낸 후 평화민주당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됐다"면서 "헌재 결정내용이 야권에서 먼저 흘러나온 점 등 여러 정황을 비춰볼 때 누설자는 조승형 재판관으로 추측된다"고 봤다. 이어 "이번 사전 유출 사건으로 헌재 권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면서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며 조치의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이철희 의원은 "문민정부에서 수사검사나 헌법재판관 같은 법 집행관들마저도 기무사의 사찰대상이었다는 점은 충격"이라면서 "전두환의 보위부대로서 5·18을 기획해 정권을 열었던 기무사(당시 보안사)는 민주화 이후에도 오랫동안 진실은폐라는 '뒤처리'를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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