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낙태죄 폐지를 청원하는 글이 올라와 한 달만에 23만 명 동의를 얻는 등 '낙태 합법화'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처벌 위주의 정책이 아닌 원치 않는 출산을 피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법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과 낙태죄가 실제 기능할 수 있는 법 질서를 세우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임신중절 합법화에 찬성하는 김진성 여성민우회 여성건강 팀장은 31일 CBS<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통화에서 낙태와 관련해 처벌위주의 정책이 아닌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성 팀장은 "누구나 아이를 기를만한 사회적 인프라가 조성돼 있지도 않고 피임 실천율도 지극히 낮은 상황에서 임신중절을 범죄화 하는 것은 모든 문제를 여성의 헌신과 희생에 기대어 푸는 것에 다름없다"며 "2011년 연구조사 추정치로 한 해 약40만 건 정도 낙태가 발생하고 실제 이것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30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청원글은 한 달 만에 20만건이 넘는 추천을 얻었다. 청와대는 한 달 안에 20만 건의 추천을 얻은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변하겠다고 약속해 현재 답변을 준비중이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김진성 팀장은 "합법적인 임신중절, 예를 들어 강간에 의한 임신중절이라고 하더라도 현재 불법이기 때문에 의사들이 몸을 사릴 수 있다"면서 "때문에 (여성들이) 시일이 늦어져 수술을 더 위험하게 잡거나 못받거나, 고비용의 불법적인 수술을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성 팀장은 낙태가 합법화되면 낙태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임신중절을 무책임이나 성적인 문란함에 연결시키는 것은 현실에 동떨어져 있는 고정관념"이라고 일축했다. 김 팀장은 "낙태죄가 폐지된다고 임신중절을 더 편하게 생각할 여성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임신중절을 범죄화하고 있는 국가가 임신중절률이 더 낮거나 하지 않다. 금지여부와 임신중절률의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이미 통계가 나와있다"고 설명했다.

9월 2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현행 낙태 처벌 제도를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같은 방송에서 오히려 낙태가 합법화되면 낙태가 강요당할 것이라고 봤다. 최안나 센터장은 "낙태죄가 성문란하고 상관이 없다는데 동의한다"면서도 "남성이 문제다. 지금도 콘돔을 안 쓰는데 낙태에 대한 어떤 법적 처벌규정마저도 없애주면 더 피임에 소홀히 할 것은 당연하고 부양의 책임을 지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안나 센터장은 "남성들의 성행태가 지금보다 훨씬 책임감을 져야 되는 법적 제도적 개선이 낙태죄 폐지보다 우선돼야 한다"며 "(남성들이)낙태가 불법인데도 책임을 안 지고 나몰라라 하는데 합법화되면 낙태하면 되는 걸 왜 내 발목잡냐고 안그러겠나"라고 우려했다.

최안나 센터장은 임신중절 합법화와 임신중절률 간 상관관계가 없다는 통계에 대해 "낙태율이 낮은 선진국의 경우 법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 임신했어도 임신한 여성과 아이를 중심으로 지원을 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최 센터장은 "어떠한 상황에서 임신했어도 애를 낳는 게 득이 되면 누가 지금처럼 낙태를 더 많이 하겠나"라며 "그런 사회를 개선하지 않고 사방에 덫을 만들어 놓고 걸리면 알아서 다리 끊고 도망가라는 방식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낙태죄 폐지 청원글을 올린 A씨는 청원글에서 낙태죄 폐지와 더불어 미프진(자연 유산 유도약) 합법화를 주장했다. A씨는 "미프진은 12주 안에만 복용하면 생리통 수준과 약간의 출혈로 안전하게 낙태가 된다"며 "그러나 현행법으로 의한 불법 낙태수술을 받을 경우 자칫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한 달 안에 20만건 이상의 추천을 얻은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하겠다고 약속해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답변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만건 이상의 추천을 받은 청원글은 청소년 보호법 폐지청원 이후 두 번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