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없는 용돈을 아껴가며 연극이나 영화를 한 달에 한편 이상은 보자고 생각한 이후 즐겨 다니던 영화제들이 있었다. 여성영화제, 인권영화제, 장애인권영화제 등을 찾아다니면서 좋았던 점은, 물론 영화 관람료가 무료이거나 매우 저렴해 하루 종일 여러 편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일반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는 독립영화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그중에는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코드와 영상미로 점철되어 있던 난해한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보고나면 그 오묘한 느낌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이주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예전처럼 영화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매년 꼭 챙겨보는 영화제가 올해로 11년째 열린 <이주민 영화제>이다. 올해는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총 17편의 단편, 장편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그중 직접 본 7편에서 2편 정도를 골라서 나름의 소감을 나누고자 한다.

제11회 이주민 영화제 (2017) 공식 포스터

2016년 <이주민 영화제> 사전제작지원 작품으로 선정된 강혜연 감독의 <백일몽>은 탈북자 여성 대학원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다. 북한에서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나갈 정도로 수재였던 주인공은 탈북 이후 한국에 있는 대학원 연구생으로 있으면서, 교수채용과 연구비 비리 등을 끊임없이 마주치게 된다. 목숨을 걸고 태어난 곳을 떠나야 했던 주인공이 남한에서조차 경쟁에 쫓기면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보는 내내 숨이 막혔다. 결국 탈북자 역시 이곳에서는 또 하나의 이주노동자이며,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실제 통일 이후에 단순히 같은 한국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쉽사리 동화되기 어려울 것을 짐작케 했다.

둘째 날 상영된 섹 알마문 감독의 <하루 또 하루>는 무척이나 친근한 작품이다. 섹알마문 감독이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이기도 하고, 이 다큐에 나오는 주인공이 실제 이주노조 조합원이기 때문이다. <하루 또 하루>는 말 그대로 헬조선에서 가장 밑바닥노동을 책임지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살아가는 하루 또 하루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작품 속 샤힌 씨는 출입국으로부터 테러리스트라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단속추방이 될 위험에 처한다. 갑자기 공장에 들이닥친 출입국직원에 놀란 샤힌 씨는 그만 2층 건물 밖으로 떨어져 하반신에 큰 부상을 입게 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샤힌 씨가 테러리스트라는 것을 입증할 증거자료가 있는지를 물어보아도 좀처럼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단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런 증언을 들었다 정도의 카더라 통신 때문에 한 명의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가 성실히 일하던 그런 ‘하루’ 아침에 제대로 걷기도 힘든 <하루 또 하루>를 살게 된 것이다.

작품에서는 샤힌 씨가 다시 성실하게 일하고 돈을 벌 수 있었던 그 평범한 ‘하루’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여러 번 보면서 가슴이 아렸던 부분이 있었다. 휠체어에 탄 샤힌 씨가 감독에게 되묻는 장면이다.

샤힌: (다치지 않았다면) 이 순간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일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었는데, 큰 고민 없었는데, 이런 고민들로 머리까지 희어졌어요.
감독: 그러면 한국에 와서 손해를 본거네요.
샤힌: 지금 생각해보면 손해 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잖아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 당신은 건강히 돌아다니고 있는데 몇 십 억 주면서 두 다리 모두 못 쓰게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겠어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스크린을 넘어 마치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가슴 아픈 눈빛으로 되물어보는 샤힌 씨의 질문에 그 누가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정부는,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단속반 직원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신체의 자유를 하루아침에 박탈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영화에 나오지 않았지만 샤힌 씨는 이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대한 기나긴 소송에서 승소를 거두고 근로복지공단에도 산재승인이 되어 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하지만 정말 억만금의 손해배상액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샤힌 씨가 평범하게 일하던 그 ‘하루’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그 ‘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루 또 하루>는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신가요?”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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