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자유한국당이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 선임을 빌미로 '국정감사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국감 보이콧은 명분도 없을 뿐더러 그 과정이 '꼼수'와 '생떼'로 점철돼 있다.

2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회법을 악용한 자유한국당의 꼼수를 목격했다. 이날 오전 7시 50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단과 신상진 과방위원장을 포함한 과방위원들은 경기 과천에 위치한 방통위를 찾았다. 방통위의 방문진 보궐이사 인선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26일 방송통신위원회를 항의 방문한 정우택 원내대표(오른쪽)가 이효성 방통위원장(왼쪽)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성을 지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날은 오전 10시 공영방송 KBS·EBS에 대한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었다. 특히 이날 국정감사는 최근 국정원으로부터 200만 원의 현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고대영 사장이 피감기관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돼 있어,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은 방문진 이사 선임 거부를 선택했다.

자유한국당은 방통위에서 이사 선임을 안건으로 하는 전체회의를 공개하라고 생떼를 썼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효성 방통위원장을 향해 저마다 한 마디씩 압박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방문진) 후임 이사 선정 계획이 잘못된 것"이라면서 "말씀드리고 비판했는데도 강행하면 당으로썬 공영방송 장악 실행 시도로 보고 강력하게 저항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 과정에서 정 원내대표가 이 위원장에게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김태흠 최고위원은 "염치 없고 뻔뻔하다"면서 "청와대와 민주당이 좌파 보조 일체가 돼서 진행하는데 (방문진 유의선, 김원배 이사가) 자기들이 사임한 거라고 보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 앞에 교회에 포스터 붙이고 인신공격하고 민주당 추천 인사들이 막말을 하고 이런 과정에서 모욕주고 사임시킨 거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이밖에도 박대출, 김선동, 민경욱, 김재경 의원 등이 나서 한 마디씩 거들며 이효성 위원장을 압박했다.

같은 시각 국회에서는 고대영 사장이 기자들의 취재경쟁과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의 항의 속에 국회 과방위 국감장에 출석했다. 하지만 국감은 진행될 수 없었다. 자유한국당 과방위원들이 모두 방통위로 몰려갔고 회의를 진행해야 할 신상진 위원장이 부재중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전 국회 국정감사는 자유한국당의 불참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과방위원들은 오후 2시 국회법 50조 5항에 따라 신경민 간사의 사회 하에 국감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민중당 의원들의 합의는 지켜질 수 없었다. 자유한국당이 사회권을 이용한 꼼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오전 방통위를 찾아 이효성 위원장에게 강력한 항의 의사를 밝혔던 신상진 위원장은 무슨 일에서인지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박대출 간사에게 사회권을 이양했다.

▲26일 오후 국정감사 정회를 선포하고 과방위 회의장을 나서는 박대출 의원. (연합뉴스)

오후 2시 속개된 회의에서 박대출 간사는 민주당 등 과방위원들의 반대 속에도 자신들의 '긴급 의원총회'를 이유로 국감을 '정회'시켰다. 민주당 등 과방위원들이 항의했지만, 자유한국당 과방위원들은 도망치듯 국감장을 빠져나갔다. 의원총회를 이유로 나갔기 때문에 국회법상으로 자유한국당의 '정회 꼼수'를 되돌릴 방법도 없었다. 결국 이날 KBS·EBS 국감은 무산됐다.

사실 자유한국당이 방통위의 방문진 이사 선임을 막아설 명분도 없다. 원래 방문진 이사는 방통위법에 따라 정당이 아닌 방통위가 임명한다. 또한 공석이 된 보궐이사를 방통위가 임명한 것은 MB정부 시절 KBS 정연주 사장을 쫓아낼 당시 자유한국당이 스스로 만든 선례다. 자신들이 만든 선례를 자신들이 불법적 행태라고 거부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박홍근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의뢰한 '방문진 보궐이사 임명 권한 관련 법조항 검토' 입법조사회답서에서, 입법조사처 의뢰를 받은 전문가는 방문진 보궐이사의 임명 권한은 법적으로 방통위에 있으며 기존 정당이 보궐이사를 추천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유한국당은 막무가내다. 당장 27일부터 모든 국감 일정을 보이콧한다고 한다. 결국 자유한국당의 국감 보이콧은 명분은 커녕 꼼수와 생떼로 점철된 셈이다. 자유한국당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자행했던 공영방송 장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