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36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매치업이 성사되었다. 양팀은 프로야구 원년부터 각각 해태 타이거즈와 OB 베어스라는 팀명으로 리그에 참가했고, 한국시리즈에서 각각 10회와 5회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명문구단이었다는 사실을 볼 때 양팀이 이제야 한국시리즈에서 만나게 된 것도 아이러니하다.

2017 페넌트레이스에서 양팀은 시즌이 종료되기 직전까지 치열한 1위 다툼을 펼쳤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진검승부를 앞두게 되었다. 양팀의 마스코트인 호랑이(KIA)와 곰(두산)을 빗대어 '단군매치'라 불리는 2017 한국시리즈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KIA 타이거즈가 오히려 경험 면에서 두산 베어스에 비해 열세에 놓여 있는 판세이다. KIA 타이거즈가 선수들의 경험 근육이 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포스트시즌에서 극복해야 할 변수를 살펴본다.

1. 고기를 먹어본 자들의 활약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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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막강전력을 과시한 KIA 타이거즈였지만 시즌 막바지 구원 투수진에서 심각한 불안을 초래하면서 예기치 못한 패배와 슬럼프를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타이거즈가 가장 최근에 치른 한국시리즈는 8년 전인 2009년 한국시리즈였다. 잠시 시계를 2009년으로 되돌려 본다.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 KIA는 2007년, 2008년 한국시리즈를 연거푸 제패하면서 신흥강호로 자리 잡은 SK와 맞붙었다. (올해 KIA의 매치업인 두산도 현재 2015년, 2016년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면서 리그 최강 팀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2009년에도 KIA는 정규시즌 막바지까지 무서운 연승행진을 달리던 SK와 치열한 접전 끝에 1위를 차지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를 앞두고는 1위의 프리미엄보다는 당시 리그 최강 왕조의 지위를 누리던 SK의 경험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섰다.

한국시리즈 1차전 당시 KIA는 SK에 선취점을 내주며 끌려갔다. 그러나 경기 후반 역전에 성공하며 가장 귀중한 1차전을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1997 한국시리즈 이후 12년 만에 맞이한 한국시리즈에서 KIA는 1차전 승리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있었다. 팀 내 야수 중 최고참이자 장성호와 더불어 한국시리즈를 경험한 몇 안 되는 고참이었던 이종범은 마흔의 나이가 무색하게 역전타를 터뜨리며 팀 분위기를 주도한다.

KIA 타이거즈 4번타자 최형우. [연합뉴스 자료사진]

올 시즌 KIA의 상황도 당시와 흡사하다. 팀 내에 한국시리즈를 경험한 선수들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야수진에서는 최형우, 나지완, 안치홍 정도가 한국시리즈를 경험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이번 시리즈에서 KIA가 시리즈 초반 흐름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한국시리즈를 경험한 야수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특히 올 시즌 100억 원에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4번 타자 최형우의 활약이 더욱 요구된다. 2010년대 라이온즈 왕조 시절을 이끈 중심타자의 DNA를 고스란히 타이거즈 타선에 이식해야 한다.

그리고 2009 한국시리즈 당시 고졸 신인으로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활약으로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한 안치홍은 이제 팀의 센터라인 및 하위타선의 핵심역할을 담당하는 자리에 있다. 만약 8년 전처럼 안치홍이 미쳐준다면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는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투수진 또한 마찬가지이다. 올 시즌 40승을 거둔 리그 최강의 원투펀치 양현종, 헥터에 대한 의존율이 상당히 높았다. 2009년 당시에도 로페즈, 구톰슨이라는 당시 최강의 외국인 원투펀치가 있었지만 토종 투수진에도 윤석민(9승)과 양현종(12승)이라는 A급 투수들이 선발진을 이끌었다. 그리고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마무리 유동훈이 안정적으로 뒷문을 책임졌다. 계투진도 확실한 필승조 곽정철을 필두로 손영민, 한기주 등이 제 몫을 해냈다.

기아 타이거즈 선발투수 양현종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올 시즌 타이거즈 투수진은 양현종, 헥터 외에 다른 투수들은 꾸준함 측면에서 불안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특히 불펜은 변수가 늘 존재한다. 김윤동, 임창용, 김세현으로 구성된 필승조가 얼마나 안정감을 보여주는가가 시리즈 향방을 가를 것이다.

리그 최강의 원투펀치를 보유한 타이거즈로서는 역설적으로 홈에서 펼쳐지는 1,2차전이 가장 중요하다. 시리즈 초반 기선제압에 실패한다면 결국 베어스에게 끌려 다니게 될지 모른다. 1,2차전 결과에 따라 이번 시리즈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단기전 양상으로 변할 것이다.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윤석민의 부재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이번 한국시리즈이다. 하지만 8년 전 신참 에이스에서 이젠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서 성장한 양현종이 윤석민 이상의 몫을 해준다면 타이거즈는 8년 전의 영광을 충분히 재현할 가능성이 높다.

2. 벤치의 역량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kt 위즈와 경기에서 승리하며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기아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이 꽃다발을 높이 들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태 감독은 이번 한국시리즈가 자신의 지도자 커리어에서 두 번째로 맞이하는 포스트시즌이다. 3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맞이하게 되는 베어스 김태형 감독에 비하면 경험치에서 많이 밀린다. 김기태 감독의 첫 포스트시즌은 LG감독이던 2013년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였다.

당시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과 5차전 대혈투를 치르고 올라온 베어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베어스의 촘촘한 수비벽에 막혀 3차전을 내준 것이 결정적으로 시리즈 흐름을 내준 계기가 되었다. (역대 포스트시즌 사상 유례가 없는 같은 이닝에서 2차례의 홈에서의 횡사)

당시에도 레다메스 리즈를 제외하곤 믿었던 투수들이 제 몫을 못한 것이 패인 중의 하나였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김기태 감독은 과연 트레이드마크인 '동행야구' 스타일대로 경기를 펼칠 것인지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이다. 그러나 기록보다는 분위기와 당일의 컨디션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는 포스트시즌에서 김기태 감독은 좀 더 냉정하고 세밀해질 필요가 있다. 이는 김기태 감독뿐만 아니라 타이거즈 내 다른 코치진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부분이다.

올 시즌 하위권에 머물던 팀을 8년 만에 정규시즌 1위에 올려놓고도 김기태 감독은 하위권 팀 감독 못지않은 비난 세례에 시달려야 했다. 정규시즌 동안 어이없는 역전패 경기 및 시즌 초반의 압도적인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부진이 결국 김기태 감독의 리딩 스타일과 맞물리면서 김기태 감독은 뭇매를 맞아야 했다. 하지만 야구는 결국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김기태 감독이 해야 할 역할은 선수들이 부담을 떨치고 본인의 야구를 펼치게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신에 냉정한 시각으로 시리즈 전체를 주도하는 리딩(Leading)을 펼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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