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 정권이 압승을 거두었다. 정확한 선거 결과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나오지 않았으나 출구조사 결과 등으로 볼 때 자민-공명 연립정권이 과반 의석 이상을 점하고 개헌선을 넘길 가능성도 큰 걸로 생각된다. 이런 결과가 된 이번 선거는 한국의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을 특히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이 선거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유례없는 비판 여론 속에서 치러졌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른바 아키에 스캔들과 가케 학원 문제 등 연이은 비리 관련 사건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는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다. 여기에 최장기간 집권 갱신을 노리는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더해져 중의원 해산 선언 당시에만 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오히려 아베 신조 정권은 승리했다. 이유는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북풍’의 위력이다. 중의원 해산은 아베 신조 총리의 ‘노림수’였다. 북한이 핵실험과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안보 위기를 조장해 난국을 뚫어 보자는 의도가 시작부터 분명했다. 북한이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긴장 정도를 한 단계 끌어 올린 이후 실제 20% 선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던 아베 신조 총리의 국정수행지지도는 40% 선으로 다시 회복됐다.

일본 총선, 아베-고이케(연합뉴스 자료사진)

물론 이는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전혀 아니다. 그렇기에 아베 신조 정권이 승리하게 된 두 번째 이유가 중요하다. 그것은 아베 신조 총리의 일방독주식 정치에 반대해왔던 야권이 스스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다. 그는 도쿄도지사 당선 이후 ‘포스트 아베’의 주역이 될 것으로 기대를 받아왔다. 고이케 유리코 지사 역시 아베 신조 총리와 비슷한 극우적 역사관의 소유자임에도 정권교체의 주인공으로 조명된 것은 그만큼 현 정권에 대한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고이케 유리코 지사가 ‘반 아베 전선’의 확대라는 사업에 매진하고 성공을 거두었다면 자민-공명 연립정권이 유지되더라도 선거 패배라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었을 거다. 그랬다면 아베 신조 총리의 ‘거취’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북풍’이 거세지는 국면에서 성과를 스스로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선거전의 성격을 소극적인 것으로 바꾸었고 스스로 출마를 포기했다. 세를 잠시 뒤로 물리고 현 정권이 갖고 있는 이념적 지향의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마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번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포스트 아베’의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었을 테다. 즉,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아베 신조 정권과의 전면 대결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당내 야당’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한 것이다.

고이케 유리코 지사가 선거전의 방향을 이렇게 설정하면서 필연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개헌에 대한 태도가 쟁점화되는 것이었다. 고이케 유리코는 상술했듯 현 정권과 이념적 지향을 함께하며 이는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이케 유리코 지사가 ‘희망의 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제1야당인 민진당이 스스로 공중분해를 결정하는 ‘정치적 자살’을 선택했음에도 개헌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이들을 ‘선별 공천’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정치적 패착이었다. 이 선택은 평화헌법 유지에 동조하는 세력이 ‘입헌민주당’으로 부상하면서 ‘아베 대 반-아베 전선’의 쟁점을 부패스캔들이나 장기집권에 대한 경계심에서 개헌이냐 호헌이냐로 바뀌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반-아베’ 쪽이 아니라 ‘아베’ 쪽에 설 수밖에 없게 된다. 전선의 반대쪽에 있는 세력이 희망의 당과 입헌민주당으로 양분된 것이다. 더군다나 입헌민주당을 이끄는 것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당시 관방장관으로서 성실하게 자기 책임을 다해 신뢰를 얻었던 에다노 유키오이다. 소선거구제에서 3자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단결돼있는 여당과 분열된 야권이 맞붙는 형태로 나타날 경우 야권이 이긴 사례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고이케 유리코 지사의 실패로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 하면 되는 것일까?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 너머의 것을 보아야 한다. 아베 신조 총리의 지론이 평화헌법 개정인 상황에선 개헌이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이렇게 되면 고이케 유리코 지사 카드가 빛이 잃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때문에 고이케 유리코 지사 이전에 야권, 특히 ‘리버럴’로 자신들을 지칭하는 세력이 개헌을 둘러싼 정치적 조건을 스스로 불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간 아베 신조 총리가 추진하는 일련의 ‘보통국가화’에 대해 일본의 ‘리버럴’들은 정면대응을 거부해왔다. 개헌으로 가는 준비단계로 볼 수 있는 아베 신조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이라거나 안보 법제 추진 같은 사례에서도 그랬다. 야권이 문제삼은 것은 보통국가화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아베 신조 정권이 밀실에서 투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태도는 개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반-아베’의 편에 선 세력의 공통된 주장은 평화헌법 개정이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아베 신조 총리 본인 만을 위한 ‘패밀리 비지니스’이기 때문에 잘못됐다는 것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아베 신조 총리가 아닌, 고이케 유리코 지사가 정권을 교체해 개헌을 추진한다면 여기엔 찬성할 수 있다는 것인가?

구 민진당 소속 인사들 상당수가 희망의 당 공천을 받아 선거에 출마한 것은 이 질문에 이들이 “그렇다”는 대답을 할 준비가 돼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들은 왜 핵심 정견에서 차이도 없는 아베 신조 정권을 반대하는 것인가? 결국 권력 나눠먹기라는 냉소적 규정을 피해갈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희망의 당은 그저 ‘정치꾼’들이 모인 당이고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그 대표에 불과하다. 이들을 어떻게 믿고 정권을 맡길 수 있겠는가.

평화헌법을 지킨다는 것의 논리적 귀결은 ‘보통국가’를 포기함으로서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를 펼친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본의 자칭 ‘리버럴’들은 이런 이상을 반쯤 포기했거나 이를 추구하는 것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은 아베 신조 정권이 붕괴되더라도 2015년 12월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일 간 합의의 무효화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는 일본 국민이 야권의 이러한 정치적 비겁함을 심판한 것으로도 받아들여야 한다.

갈등의 핵심을 직면하지 못하고 수사를 동원한 겉치레로 이득을 추구하는 정치는 ‘신념의 정치인’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아베 신조는 어쨌든 ‘신념의 정치인’이다. 아베 신조에 있는 게 일본의 ‘리버럴’ 정치인 다수에겐 없었다. 정치적 냉소주의가 정치 일반을 장악한 상황에서 이런 현상은 세계적이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 열풍이나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와 같은 사례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을 한국의 정치로 가져와보면 어떨까?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절연을 시도하고는 있으나 이런 선택이 정치적 유불리를 떠난 어떤 신념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바른정당은 유승민 의원과 같은 사람들이 합리적 보수라는 노선에 대한 신념을 추구하고 있다고는 하나 분당의 위기를 겪고 있다. 국민의당은 아예 노골적으로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얼마든지 신념과 노선을 바꿀 수 있는 정치세력이라는 걸 스스로 점점 더 분명히 하고 있다.

‘적폐청산’이라는 개혁적 과제를 안고 등장한 문재인 정권은 결코 완벽하지 않고 또 영원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언제나 현실정치에는 ‘대안’을 모색하고 이를 현실로 만들 역량을 가진 정권과 분리된 정치세력이 따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당분간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유력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이 등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현실은 문재인 정권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와는 별개로 결국 한국 정치의 후퇴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결말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 정치의 파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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