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관심과 호응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언니가 시청률 20% 진입에 실패했다. 오히려 소폭 하락현상을 보였다. 천안함 실종 장병들의 시신이 인양됨에 따른 애도 분위기가 외부적인 요인으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시청자 중 일부는 한가하게 드라마에 몰입할 심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긴 애도의 분위기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 회복될 것이고 마땅한 견제세력이 되기에는 역부족인 개인의 취향과 검사 프린세스에 위협받지 않는 신데렐라 언니의 독주는 이어질 것이다.

문근영과 서우 두 자매에 대한 압도적인 관심이 신데렐라 언니의 인기를 끌고 가고 있는데, 국민여동생 문근영의 연기변신이 특히 눈부신 결과이다. 반면 드라마 방영 전에 예기치 않게 비난의 표적이 되었던 서우 역시 호연에 힘입어 초반과 달리 호감을 얻고 있다. 그뿐 아니라 탄탄한 연출과 담백하고 심도 깊은 영상은 드라마 몰입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신데렐라 언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일은 없을 것이다.

한편 청소년기에서 시작해서 성인역을 소화해내고 있는 문근영이 드라마 속에서 유일하게 웃지 않는 케릭터인데, 동화적 전제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 드라마 속이니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지만 막상 현실에서 그런 성격이라면 본인도 그렇거니와 주변 모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신데렐라 언니 속 등장인물 모두가 단지 문근영보다 덜할 뿐 만만치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암울한 공기가 무겁게 짓누르고 있어 요즘 코믹한 트렌드와는 많이 다르다. 코믹터치를 근간으로 하는 개인의 취향과 검사 프린세스 사이에서 분위기마저 신데렐라 언니는 튀고 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신데렐라 언니는 수목드라마 경쟁 속에서 여러 면에서 특별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다. 그런데 너무 무겁기만 하다. 청소년기에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한 천정명이 8년의 세월을 통해 잠재되었던 갈등을 사건화하게 될 것이어서 신데렐라 언니는 여전히 짙은 회색의 배경 속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신데렐라 언니의 결말에 대해서 벌써부터 궁금해 하고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새드엔딩에 대해서 가히 엔딩신드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파장이 일었던 것처럼 한국의 요즘 시청자는 행복한 결말에 목말라 있다.

그런데 지금의 신데렐라 언니가 그 기대에 부응할 거라 보기에 어렵다. 물론 그 결말의 포커스는 문근영에게 맞춰져 있다. 극중 은조의 굳게 닫힌 문을 일식처럼 아주 가끔씩 열리게 하는 존재가 있기는 하지만 홍주가의 은밀한 음모를 위해 돌아온 기훈과 은조가 그 결말의 행복한 커플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에는 신데렐라 언니의 문학적 얼개가 단단하다. 시쳇말로 폼나는 문학성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천안함 사고라는 외부요인 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신데렐라 언니의 빼어난 작품성이다. 단막극이라면 몰라도 20부작 즉 10주의 결코 짧지 않은 레이스를 견디기에는 신데렐라 언니가 취하고 있는 자세가 대단히 순수하다는 점이다. 생존형 꽃뱀이라고 해도 좋을 이미숙의 지극히 속물적 케릭터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근영과 서우는 현실의 문제보다는 실존적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아주 순수한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다.

삶에 찌들어 사는 우리들은 실존적 화두에 시달릴 짬이 없다. 본능을 채우기에도 하루 24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그런 우리들에게 은조와 효선은 그야말로 동화 속 공주님들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이질감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언니가 지금까지 선전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예상이 틀리기를 진정 바라지만 신데렐라 언니가 이후 30%를 훌쩍 넘기는 대박드라마는 되지 못할 것 같다.

신데렐라 언니에는 대중의 욕망을 대리할 요소가 적고 그런 것들을 찾기에는 너무 깨끗하다. 게다가 신데렐라 언니는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청자를 현혹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영화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이 화제가 되기는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이는 요깃거리가 없다. 때문에 뛰어난 작품성만은 절대로 배신당할 일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신데렐라 언니의 흥행보다는 오랫동안 막장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질곡을 벗어난 당당함의 근거가 된 점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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