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통영=양문석 통영정책연구원 이사장] 2011년 9월. 낡은 건물과 시설을 고친다며 통영적십자병원은 응급실을 폐쇄한다. 어느 시민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서민들의 병원 통영적십자병원에 응급실이 없다는 걸 알고 있나요?' 당연히 필자의 반응은 '설마요? 우리나라 최초로 응급실을 운영한 곳이 서울적십자병원인데 설마 통영적십자병원이 응급실을~'하고 말을 흐렸다.

응급실 운영 재개한다 해 놓고서

통영적십자병원 홈페이지를 뒤적거린다. <진료안내>를 클릭한다. 내과, 신경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정형외과, 인공신장실, 진단검사의학과, 신경외과가 나열돼 있다. 응급 관련 진료과목은 없다. 병원 진료시간 안내를 본다. 평일 08:30~17:30, 토요일 08:30~12:30이다. 야간진료 자체가 없다. 급히 서울적십자병원 홈페이지를 찾는다. <진료안내>란에 응급의학과가 있다. 병원 진료시간 안내를 본다. 평일 09:~17:00(응급실 24)가 있다. 혹시 해서 대한적십자사에서 운영하는 인천 상주 거창 적십자병원의 홈페이지를 다 훑었다. 빨간색으로 전부 '응급실 24시'가 있다. 유일하게 통영만 없다.

이번엔 기사를 검색한다. '통영적십자병원', '응급실' 두 글자를 넣고 검색한다. 지난 2011년 11월 8일 자 <한산신문>의 보도가 뜬다. <한산신문>에 따르면, '건물 및 시설의 노후화로 인해 병원 건물의 전면 리모델링 공사를 실시하게 됨으로 인해 신속하고 고도의 집중적 치료가 요구되는 응급환자 진료에 어려움이 예상되어 응급실을 폐쇄'했단다. 또한 당시 병원관계자는 '내년 9월경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되면 지역응급의료기관 재신청으로 응급실 운영을 재개할 것으로 밝혔다'고 <한산신문>은 전한다.

<한산신문>의 보도대로라면, 지금부터 5년 전인 2012년 9월에 낡은 건물과 시설을 고친 응급실이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병상 96개로 내부공사를 마무리한 게 2013년 10월로 애초 계획보다 1년 연장되었다. 그리고 2015년에는 14병상을 확충, 110병상을 갖춘 현대식 병원으로 거듭났다. 그런데 아직도 통영적십자병원 응급실 운영재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없는 응급실이 있는 듯?

왜? 자꾸 의문이 든다. 응급실은 말 그대로 긴급재난 상황에서 긴급의료를 위해 필요한 곳이다. 응급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른 말로 설명하지 않겠다. 통영적십자병원의 홈페이지 <병원소개>란을 보면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1905년 10월 대한적십자사가 창설되면서 동시에 적십자병원이 설립...8·15해방 후 경성적십자병원은 서울에 진주한 미군에 의해 접수되고 다시 서울적십자병원으로 개칭되었으며 국내 처음으로 응급실을 설치하는 등 활발한 의료사업을 전개했다...현재 대한적십자사에서는 서울병원 외에 인천·상주·거창·통영 적십자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반 병원업무 외에 재해시 긴급의료활동, 전시 상병자(傷病者)의 구휼사업·순회진료 등을 부대사업으로 하고 있다.~~~

'국내 처음으로 응급실 설치'는 적십자병원의 큰 자랑거리이다. '일반 병원 업무 외에 재해시 긴급의료활동...등을 부대사업으로 하고 있다'도 자랑거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전국의 적십자병원 홈페이지 <병원소개>란에 씌어 있는 병원소개 내용은 같다. 하지만 통영적십자병원은 '응급실'과 '긴급의료활동'을 말할 자격을 이미 5년 전에 상실했는데 이를 어쩌랴.

그런데도 버젓이 응급실을 운영하는 것처럼 되어있다. 2013년 10월 7일 <대한적십자사 공식블로그>에 통영적십자병원은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통영적십자병원은 내과(소화기 내과), 내과2(신장 내과, 초음파 진료), 외과(복강경 수술), 정형외과(관절수술 특화), 신경외과(척추 질환), 응급실(24시간 응급진료), 마취통증의학(통증클리닉, 수술 마취), 영상의학과(초음파 진단), 건강관리과(공공의료 강화), 96병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존하지 않는 '응급실(24시간 응급진료)'라는 단어를 보며, 거짓말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응급실을 없애야 했던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서 더 가슴 쓰리게 다가온다.

통영적십자병원은 통영시민에게 어떤 곳?

그렇다면 과연 통영적십자병원은 통영시민들에게 어떤 곳일까?

~~~무엇보다 통영적십자병원은 경남권에서 몇 안 되는 공공의료기관입니다. 지금 병원의 위치는 통영항여객선터미널이 가까이 있어서 나이가 많으신 섬 주민들이 이용하고, 대표적인 전통시장인 서호시장이 주변에 있어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쉽게 찾아오실 수 있지요. 구 도심에 위치한 만큼 생활이 어려운 분들도 병원 문을 쉽게 들어오실 수 있고요.~~~

<통영인뉴스>가 2013년 9월 17일, 당시 통영적십자병원 김인호 병원장과 인터뷰하면서 나온 말이다. 전형적인 공공의료기관이다. 통영을 둘러싼 섬사람들을 위한 병원이다. 노인들을 위한 병원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이다. 이런 병원에서 전국의 적십자병원이 다 운영하는 응급실이 없을까. 검색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진다.

<한남일보>에 따르면, 이번 추석 다음 날인 지난 5일, 김동진 통영시장이 통영적십자병원을 방문해 병원장과 지역의 공공 의료서비스에 관해 환담 후, 입원 치료 중인 환자들을 위로하고 추석 연휴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을 돌보는 직원들을 격려했단다.

도대체 어떤 환담을 했을까? 지역의 공공의료서비스에 관해 환담했다는데, 그중에 응급실 문제는 있었을까? 아니 김동진 시장은 통영적십자병원에 응급실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으면 어떤 지원 했을까? 지금까지 지원하지 않았다면 어떤 지원을 모색하고 있을까?

지원대책 마련해야

응급실 공간이 없으면 응급실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시유지나 시 소유의 건물을 저렴하게 임대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응급실의 의료기기가 없거나 부족하면 이를 어떻게 보완 확충할 것인지에 대해 같이 연구해야 한다. 응급의학과 출신 의사가 필요하면 어떻게 영입할 것이고,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시청과 병원의 경영진이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섬사람들, 노인들, 가난한 자들은 통영시민이 아닌가? 왜 하지 않는가?

통영의 유일한 지역거점 공공병원인 통영적십자병원에 대해서 근본적인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병원의 경영진, 시청과 시의회, 경남도청과 도의회, 그리고 대한적십자사 보건복지부 등 중층적으로 얽혀 있는 의사결정단위에서 이 병원을 어떻게 운영할 것이며, 어떻게 응급실을 재개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를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할 주체는 병원의 경영진과 통영시청이다.

<병원소개>란에서 통영적십자병원의 미션이 필자의 눈을 찌른다.

경제적 빈곤이 의료적 빈곤이 되지 않게
의료적 빈곤이 인도적 빈곤이 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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