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KBS는 부사장이 참여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단독중계하려는 SBS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KBS가 중계권 갈등을 법정으로 끌고 가면서 SBS의 단독중계로 일단락될 듯 보였던 중계권 갈등이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 KBS는 12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KBS신관 국제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월드컵 중계권 관련 KBS입장'을 발표했다. ⓒKBS

KBS는 같은 날 저녁 메인뉴스와 스포츠뉴스를 통해 자사의 입장을 쏟아냈다. KBS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SBS의 독점 중계권 획득은 지상파 3사 간 합의의 파기라는 불법적, 비도적적 행위로 이뤄졌다.

둘째, KBS는 공동중계를 위한 협상에 최선을 다했지만 SBS는 비합리적 요구를 내세우며 의도적으로 협상을 지연시켰다.

셋째, SBS의 독점중계로 인해 시청자는 채널 선택권을 잃게 되었고, 국부유출의 부담까지 떠안게 되었다.

넷째, SBS의 부당행위로 KBS는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지키기 못하게 되었다.

하나씩 따져보자. SBS가 지상파 3사간 합의를 깨고 반칙을 저질렀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얘기로 새로울 것이 없다. 이것이 비도덕적 행위라는 점에 대해서도 이견이 없다. 욕먹어도 싸다. 다만, 이것이 불법행위인지는 법원이 가려줄 문제다.

두 번째 주장. SBS의 의도적 협상 지연 행위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양 사 모두 협상에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법 상 판단의 주체는 방송통신위원회다. 방통위의 판단을 받아보면 된다. 법적 소송으로 간 것으로 보아 승산이 없다고 본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법 76조3과 시행령 60조3을 보라.)

세 번째 주장. SBS 단독중계로 시청자들이 채널 선택권을 잃었다는 주장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채널 선택권 상실이란 4년 전 KBS를 포함한 지상파 3사가 하루 10시간 넘게 월드컵 싹쓸이 편성을 했을 때 시청자의 볼 권리가 침해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채널 선택권 침해는 단독중계가 아니라 동시중계의 폐해다. ‘해설자 선택권’을 ‘채널 선택권’으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네 번째 주장은 사뭇 거창하다. SBS가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KBS가 월드컵 중계를 하지 못하면 ‘보편적 시청권’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 글에서는 SBS의 단독중계가 시청자의 ‘보편적 시청권’을 침해했다는 이 주장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려고 한다.

해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과연 ‘보편적 시청권’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한다. 우선, ‘보편적 시청권’논의가 촉발된 계기부터 살펴보자. 2005년 스포츠마케팅 회사인 IB스포츠가 2012년까지 7년간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모든 경기의 국내 중계권을 독점 계약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이어 2006년 2월 축구 국가대표팀의 시리아전이 스포츠채널에서만 방송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다.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를 유료 방송에서 독점 중계하면서 유료 방송에 가입하지 않은 일반 시청자들이 이를 시청할 수 없게 되자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었다. 유료방송의 독점중계가 ‘보편적 시청권’ 논의의 출발점인 셈이다.

‘보편적 시청권’은 유료방송의 독점중계에 대한 안티테제로 나왔다. ‘보편적 시청권’은 일반 시청자들이 국민적 관심 행사나 스포츠이벤트를 추가적인 부담 없이 무료 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쉽게 얘기해 월드컵 같은 대형 이벤트는 무료 지상파 채널에서 우선적으로 중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개념을 먼저 제도화한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보편적 시청권의 개념과 획정기준을 구체적으로 확인해보자. 영국은 인구의 95% 이상에 도달하는 무료 지상파 방송에 이른바 ‘특별 지정 이벤트’에 대한 중계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한다. (특별 지정 이벤트란 올림픽, 월드컵 등 우선적 중계 대상 이벤트를 말한다.) 독일은 전체 가구의 3분의 2 이상이 수신 가능한 방송을 통해 중계가 이뤄지도록 한다. 프랑스의 경우 성문화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나, ‘공중의 상당 부분이 특정 행사를 무료TV에서 생방송 또는 재방송으로 지켜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하게 되는 방식으로 독점 중계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유료방송이 독점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 <해외 각국의 보편적 서비스 행태 비교> * 출처: 방송통신위원회, <보편적 시청권의 국민관심행사 연구>, 2008, 송해룡 외, 56p

이들 사례를 보면 ‘보편적 시청권’ 개념을 도입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무료 지상파 방송을 우선 방송사로 지정하고, 그 기준은 시청 도달 범위(커버리지)를 중심으로 정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료방송’과 ‘전국적인 도달범위’, 이 두 가지가 ‘보편적 시청권’을 결정하는 핵심 키워드인 셈이다.

이제 “SBS의 단독중계가 시청자의 ‘보편적 시청권’을 침해했다”는 KBS의 주장으로 돌아가 보자. 앞서 살펴본 기준을 SBS에 적용해보자. SBS는 KBS와 마찬가지로 무료방송이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방송법이 정한 시청 도달 범위(전체 가구수의 90%이상)를 충족하고 있다. (SBS의 네트워크 커버리지 문제는 논란이 있다. 일단, 방통위는 이를 인정하였다. 현행 방송법은 ‘보편적 시청권’에 해당하는 방송개념을 ‘무료’로 규정하지 않았고, 커버리지 문제도 범위만 지정했을 뿐 확보수단에 대해서는 ‘유/무료’의 구분 등 구체적인 방법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이냐에 따라 SBS뿐 아니라 KBS, 케이블 기본형 채널 등도 논란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SBS는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하고 있으며, SBS의 단독중계가 ’보편적 시청권‘을 훼손한다는 KBS의 주장은 맞지 않다. 앞서 본 해외 사례를 보아도 무료 (지상파) 방송을 우선 방송사의 범위로 정하고 있지 공영방송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규정은 없다. (현재 보편적 시청권을 제도화하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공영방송만을 지정하고 있는 나라는 인도가 유일하다. 인도의 경우 전국적인 규모의 상업 지상파 방송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대현 KBS 부사장이 언급한 ’공영방송제 국가들이 채택한 국가기간방송의 의무중계제도‘가 어느 국가의 사례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앞서 강조했듯이 ’보편적 시청권‘ 논의가 촉발된 것은 유료방송의 독점중계 때문이지 특정 지상파 채널의 독점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KBS는 과연 무엇을 근거로 ‘보편적 시청권’ 운운하고 있는 것일까?

그 근거를 현행 방송법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방송법의 ‘보편적 시청권’은 일반적인 사례와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현행 방송법 제 2조 25호는 ‘보편적 시청권’의 개념을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 그 밖의 주요행사 등에 관한 방송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일단 ‘보편적 시청권’의 정의에서 ‘무료방송’ 중계의 원칙부터 빠져 있다.

‘보편적 시청권’의 구체적인 내용이 규정된 것은 76조이다. 이 조항은 “방송사업자는 다른 방송사업자에게 방송프로그램을 공급할 때에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가격으로 차별 없이 제공하여야 한다”라고 시작하여 “중계방송권자 또는 그 대리인은 일반국민이 이를 시청할 수 있도록 중계방송권을 다른 방송사업자에게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별 없이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시행령 60조의 3은 “중계방송권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중계방송권의 판매 또는 구매를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종합해보면 현행 방송법이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어떤 (방송)사업자든지 특정 사업자가 국민적 관심 이벤트의 중계권을 확보한 경우 단독으로 중계권을 계약했다 하더라도 다른 방송사업자들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계권을 제공해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판매 또는 구매를 거부할 수 없게 함으로써 ‘보편적 시청권’을 달성하도록 한다. 즉, 현행 방송법은 특정 사업자의 중계권 독점을 막는 방식으로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셈이다.

이는 무료 지상파 방송이란 구체적인 수단을 통해 추가적 비용 없이 국민 대다수가 국민적 관심 이벤트를 시청할 수 있도록 한다는 각국의 ‘보편적 시청권’ 구현방식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현행 방송법은 오히려 과도한 중계권 경쟁을 막아 중계권료 상승을 억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접근방식은 ‘과도한 경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계방송권의 공동계약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한 76조 4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방송사업자 간의 중계권 접근에 관한 정책적 수단이 ‘보편적 시청권’이란 법적 외투를 입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KBS는 이런 맹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국민 대다수가 국민적 관심 이벤트를 무료 (지상파) 채널을 통해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본래적 의미의 ‘보편적 시청권’ 개념에 비춰볼 때, SBS의 단독중계는 이를 충족하고 있다. KBS의 주장은 중계권을 나눠 갖자는 것이고, 이는 ‘보편적 시청권’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또한 공동중계를 할 것인지, 단독중계를 할 것인지, 중복편성을 할 것인지, 순차편성을 할 것인지도 ‘보편적 시청권’ 개념과는 관계가 없다고 하겠다. KBS는 지금 ‘중계권’ 분쟁을 ‘시청권’의 문제로 호도하는 것이다.

무조건 KBS를 탓하고 SBS를 편들 마음은 없다. 단독중계가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다툼을 하더라도 정당한 방법으로 싸워야 승산이 있다. KBS는 정공법으로 나가야 한다. KBS는 왜 반드시 공영방송이 월드컵을 중계해야 하는지 시청자들이 납득할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들리는 얘기로 KBS는 이번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보편적 시청권 TF’를 구성했다고 한다. 여기서 상업방송인 SBS의 중계권 독점과 그로 인해 발생할 중계권료 상승이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재원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조사하여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면 어떨까? 방송법상의 ‘보편적 시청권’이 시청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도입되었는지 살펴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TF의 주요업무가 고작 경쟁사 사주의 뒤나 캐는 일이라고 하니 한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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