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놀라고 또 부러워했던 지난해 겨울의 촛불 시민혁명. 사실은 우리 스스로를 놀라게 했고, 자랑스럽게 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무기가 되어 9년 적폐를 무너뜨렸다. 헌정사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인 작은 촛불 하나, 하나의 힘. 또한 물러설 수 없었던 간절함의 위력.

그리고 그 일주년이 다가오는 때 들려온 기쁜 소식 하나가 있었다. 그 촛불시민들에게,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독일의 에버트 재단이 2017년 인권상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우리 국민들 누구도 직접 이 상을 수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모두가 받는 상이 된 것이다. 촛불시민 모두가 받는 작은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월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상징적 숫자로 1000만 촛불시민이 위대한 것은 그 위력에 있다기보다는 그 실체에서 찾을 수 있다. 조직되지 않았으나 자발적이었으며, 분노하였으나 평화적이었고, 무엇보다 민주적이었다. 많은 경우 군중심리라는 것이 자주 폭력성을 수반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수십 차례 집회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촛불시민들은 완벽한 평화와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집회 초기 평소(?)의 시위처럼 과격한 모습을 보이려는 소수를 시민들은 만류했다. 거기서도 강제하거나 혹은 야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반복구호와 박수로 시민들의 평화를 관철했다. 그 자체가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도 보여준 것이었다. 이런 모습은 점점 발전해 집단지성이라는 시위 군중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또 다른 명예도 얻게 되었다.

많은 경우 목적이 민주주의라고 해서, 목적이 적폐와 싸우는 것이라 해서 수단이 민주적이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것은 100만, 200만이 모여서도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그 모든 집회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세월호 참사를 그대로 덮을 수 없다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었다는 사실이다.

탄핵선고 후 첫 주말인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추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연합뉴스

촛불집회의 시작은 분노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는 절망과 분노에 일어선 것이었다. 당시 권력층이 곧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촛불집회가 가을에 시작해서 겨울을 지나 봄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지구력은 세월호에 대한 슬픔에서 비롯됐다. 내가 못 견뎌서 뛰쳐나왔지만 점점 더 남을 위한 헌신으로 승화한 것이다.

독일 에버트 재단의 선정 이유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촛불시민들에게 인권상이 주어진 것은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을 거라 짐작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촛불시민이 받을 이 상이 인권상이라는 데 주목하고 싶은 이유인 것이다. 지난 9년간의 권력에 없는 것이 바로 인권이었다. 다른 수많은 국정농단과 부정들도 역시 그렇지만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인권유린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며, 세월호 참사 역시 그런 이유로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3월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로 '19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이런 촛불시민을 향해 ‘광장의 광기’라고 폄훼하기도 했다. 물론 부정하고 싶고 원망스럽기도 하겠지만, 수를 한정할 수 없는 그 많은 시민들의 명예를 훼손한 매우 불경스런 발언이었다. 그런 차에 전해진 인권상 수상은 그 발언에 기분이 무척 상했을 촛불시민들이 마음을 어느 정도는 달래줄 희소식이 분명하다.

독일 에버트 재단의 인권상은 촛불시민을 대신해서 받기로 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16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힐 예정이며, 인권상 시상식은 12월 5일 독일 베를린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퇴진행동은 시상식에 참여해 대한민국 촛불국민을 대신해 상을 받는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